복직한 지 벌써 넉 달이 지났다.
진급에 대한 포기, 회사의 배려로 걱정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다니고 있다.
사실, 진급을 포기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성공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했고 내가 하는 업무에 애정과 열정이 없었기 때문에 진급을 포기하는 게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동기들이 진급에 유리한 자리로 옮기는 것이 눈에 보이고 몇 년 뒤면 진급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서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눈 딱 감고 몇 년 고생해 볼까?'라는 생각도 잠시 아들 둥이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 오늘도 퇴근하면 바로 집에 올 거지?"
"오늘은 일이 있어서 조금 늦어. 할머니가 계실 거니까 할머니랑 저녁 먹고 숙제하고 있어."
혹시라도 퇴근이 늦어지면 내가 집에 갈 때까지 둥이는 심술부리며 울고 짜증 낸다. 작년에 뇌경색 진단을 받은 친정 엄마는 다 큰 손주의 짜증 섞인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 혈압과 체온이 불규칙적인 엄마를 몇 번이나 응급실로 모시고 갔기 때문에 나는 가급적 엄마와 아들을 마주치지 않게 한다. 둥이와 엄마는, 이제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하는 사이가 됐다. 나는 적당한 관계로 생활이 되게 둘을 이어주는 역할을 다리가 된다.
엄마도, 아들도, 나도. 우린 모두 아프다.
5학년이 되자 둥이의 친구들은 부쩍 자랐다. 제법 청년티를 내고 거친 말과 행동을 한다. 피구에서 농구, 축구를 한다. 빠르고 강한 공, 복잡해진 게임을 둥이는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지 친구들과 점점 멀어진다. 둥이는 외로움과 소외됨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어 한다. 엄마니까. 당연한 일이지. 놀 때도, 잘 때도 엄마만 찾는다.
엄마인 내가 예뻐하지 않으면 세상 누구에게서 사랑을 받을까.
불쌍한 내 새끼. 덩치가 산만한 아들이지만 내 품에 파고든 둥이를 보면 작고 하얀 강아지 같다.
열한 살임에도 껌딱지인 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