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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때굴짱 Sep 27. 2023

새우머리에도 배움이 숨어 있다.

요리 에세이





집사람이 오래간만에 꽃게 찌개를 끓이려고 꽃게와 대하를 열심히 손질하고 있는데, 문득 생각난 게 있었다. 대하 머리 버릴 거지?라고 물어본다. 망설이지 않고 당연하지라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은 새우를 미리 까서 몸통의 살만 사용한다. 사실 찌개에 있는 새우를 꺼내어서 껍질을 벗겨 먹으려면 상당히 번거롭기에 먹기 편한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새우를 통째로 넣어야 아무래도 국물맛이 더 풍미해질 것 같다는 의견을 내었지만 오래된 룰을 바꿀 순 없었다. 그렇게 한 번 더 말을 꺼내었다가는 분명히 직접 하라는 대답이 나올 것을 알기에 딱 한 번만 묻는다.



새우 머리를 물었던 이유가 있었다.


일전에 친구들 모임에서 대혁이가 새우 머리 튀김이 엄청 맛있다면서 2차 맥줏집에서 주문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번 해볼까? 생각이 들었고 집사람에게 이런 요리가 있다더라 내가 한 번 해볼까?라고 물었더니 해보라는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어랏? 웬일이래.라는 생각과 얼른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필요한 건 바로 버터와 마늘을 넣어서 프라이팬에 튀기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요리였다.





새우머리 버터구이 재료


1. 새우머리 15개


2. 버터 두 숟가락


3. 마늘은 얇게 썰어서 사용

(다진 마늘은 금방 타버림)


4. 소금과 후추 (개인 기호에 따라)





버터는 생각보다 많이 들어갔는데, 요즘 제빵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는 집사람이 말하길, 당신 빵 만드는 거 보면 아마 못 먹을 수도 있어라고 말한다. 빵에 버터와 설탕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간다고 했는데, 건강한 사람은 괜찮겠지만 지금의 나는 위궤양에서 조금 개선되어서 위염인 상태라 짜고 맵고 단 음식은 가급적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열을 가했다. 금방 버터가 녹기 시작하면서 고소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프라이팬의 표면을 다 적실 정도로 버터를 녹인 후에 새우 머리와 얇게 썬 마늘을 함께 넣어서 볶는다. 밋밋하면 맛이 없을 것 같아서 약간의 소금과 후추를 넣는다. 유럽인들이 육류의 잡내를 없애고 장기간 보존하기 위해서 사용했다는 향신료. 이걸 얻기 위해서 전쟁까지 벌이고 식민지를 둘 정도였는데, 지금의 우리는 마트에서 가볍게 구매해서 사용한다. 새우 머리 볶으면서 별생각을 다한다.



기름 대신에 버터를 넣기에 새우 머리가 살짝 담길 정도의 버터 양이 필요했다. 그래야 타지 않는다고 집사람이 조언했기 때문이다. 또한 생새우가 아니기에 푹 익혀야 했다. 이런 더운 날에 어패류를 덜 익혀 먹으면 큰일 난다. 새우는 익을수록 주황색을 띠기 때문에 익었을 거란 짐작은 할 수 있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더 푹 익혔다.



쨔쟌~~ 때굴짱의 새우머리 버터구이 완성!







그런데 생각만큼이나 비주얼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어두육미라고 엄마께 줄기차게 들어왔고, 엄마는 늘 머리를 드셨다. 나는 식구들을 위해서 양보하는 엄마의 마음을 사랑했다. 그런데 나중에야 알았는데 엄마는 진짜 머리를 좋아하셨다. 몸통을 드셔도 머리를 놓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나는 몸통이 좋았다.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집사람도 나도 머리는 잘 먹지 않는다. 진짜로 몸통이 맛있는 걸 어째.



집사람과 나는 한 개씩 집어먹었다. 집사람은 생각보다 괜찮다면서 칭찬했다. 그리곤 더 이상 먹지 않았다.


13개 남았다. 애들한테 먹어볼래?라고 물었는데 아빠 다 먹으란다. 효자들인가? 아니면 멕이는 건가?


기름에 푹 담가서 튀겼으면 바싹해서 과자 같은 맛이 났을 것 같은데 말이다.



두 개까지는 통째로 씹어 먹고 세 개부터 껍데기를 벗겨서 먹기 시작했다. 먹기 싫다는 의미였지만, 집사람한테는 머릿속이 정말 맛있는 거라면서 둘러댔다. 느끼하고 짠 새우 머리 13개를 혼자 다 먹었다.


술도 끊은 터라, 오로지 새우 머리만 먹었더니 속이 니글거려서 김치를 몇 조각 먹었다. 역시 한국 사람은 김치 없이는 못 살지.



정광철의 '김치 주제가'가 문득 떠오른다. 이 노래 아시나요? 80년대에 나왔던 노래입니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진수성찬 산해진미 날 유혹해도

김치 없으면 왠지 허전해

김치 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 나는 나는 너를 못잊어

(·····)




오늘의 결론은 뭐든 해봐야 알게 된다.

새우 머리가 그냥 버려지는 걸 아까워했는데, 앞으로는 그 마음이 덜할 것 같다.

그 음식이 맛있고, 어울리는 자리가 있고, 일단 나는 머리보다는 몸통을 좋아한다는 거.

그렇게 토요일 밤의 거실은 버터 냄새로 가득했다.




23.09.16. 비 내리는 토요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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