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어요. 그대가 말하던 봄이 왔어요.
여자의 비문이었다. 생전에 정해놓은 문장을 그대로 비석에 새겨 넣었다 했다. 도운은 그 앞에 꿇어 앉았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표정으로 저 문장을 부탁했을까 상상하려 애썼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도운은 그녀를 잘 알지 못했다.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그녀가 제 남편을 많이 사랑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병약한 국문과 교수로, 유명한 시인이었다. 그녀는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지극정성으로 남자를 뒷바라지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의 문학세계를 정확히 이해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있지는 못했다. 때문에 남편의 시를 엉뚱하게 해석하고 혼자 그 아름다움에 찬탄할 때가 많았다. 남자는 그런 그녀를 다소 업신여겼다.
그러므로 결국 그녀가 남편과 결혼에 골인했을 때 주변 모두가 놀랐다. 여자의 아버지가 유명 출판사 사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 건 그래서였다. 진부한 문제에는 진부한 답이 기다리기 마련이다. 그 무렵부터 남자는 술만 마시면 ‘시인은 작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야’라고 꼬장을 부렸다. 여자를 제외한 모두가 ‘무엇이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지만 아무도 그를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결혼 후 남자와 여자는 완벽해 보이는 가정을 꾸렸다. 슬하에 머리 좋은 아들을 하나 두었고, 남자는 외가의 도움을 받아 승승장구했다. 그는 곧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시인이 됐다. 결혼 후부터 그의 시에는 ‘봄’이 자주 등장했는데, 평론가들은 ‘봄’을 영혼의 해방으로 해석하며 남자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요 관념으로 꼽았다. 그러나 사정을 아는 이들은 봄이 그가 작품을 위해 감수한 ‘무엇’이 끝나는 날이리라 짐작했다.
남자는 똑똑해서 이 모든 것을 여자에게 들키지 않았다. 그는 ‘바빠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으나, 들어오는 날이면 꽃다발과 여자를 좋아하는 케이크를 양 손에 들고 왔다. 바빠서 아들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식에도 오지 않았지만 생일이면 ‘그 나이대 남자애’가 좋아할만한 비싼 선물을 택배로 부쳐주었다. 때문에 여자는 결혼해서도 목을 빼고 남자를 기다리며 삶을 보냈다. 남자가 오래 돌아오지 않을 때면 그의 시집을 닳도록 읽으며 ‘봄’에 자신을 대입하곤 했다. 여자에게 남자의 시는 모조리 저를 위한 연시였고, 그 환상 속에 허우적대느라 남자가 가끔 묻혀 오는 여자 향수 냄새를 알지 못했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날, 남자는 쓰러졌다. 원체 몸이 약한 데다 십몇 년째 우울증과 위경련에 시달리고 있었으니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남자는 두 달을 앓다가 죽었다. 문제는 여자였다. 여자는 세상을 잃은 것처럼 울었다. 여자의 아들은 매일 밤 제 어머니가 통곡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쳤다. 아들은 아버지의 ‘봄’이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차마 어머니에게 알리지는 못했다. 나중에 누가 묻자 아들은 어머니가 죽을까봐, 라고 답했다. 사실 결과적으로 보면 알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자는 반 년이 안 되어 제 목을 매고 죽었으니까. 그리고 제 아들에게 저런 끔찍한 비문을 부탁했으니까.
어쩌면 도운은 그녀에 대해 잘 알았는지도 몰랐다. 도운은 그녀가 어떤 표정으로 남편의 시를 읽었는지, 꽃을 사들고 들어오는 제 남편을 얼마나 경배했는지를 알았다. 그리고 아들은 남편 대신 그녀의 봄이 되어줄 수 없었다는 사실도 이제는 알았다. 입맛이 썼다. 도운은 손에 쥔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불쌍하고, 밉고, 가여운 그 여자가 부르던 자장가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꽃 피는 산골로 들어가셔서 아버지를 만났기를, 도운은 잠시 기도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