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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Nov 17. 2019

사과색

 “또 안 익은 걸 따오면 어떻게 하니!” 


 어릴 적 농장 일을 돕다 보면 어머니는 항상 야단을 쳤다. 그리고 내가 사과를 따 온 바구니에서 안 익은 것들을 골라냈다. 나는 익은 것과 익지 않은 것을 그리 쉬이 구분해내는 어머니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초능력자 같아, 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아버지도 똑같은 이유로 어머니에게 자주 혼났다. 그러면 아버지는 사과는 풋사과도 맛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사과농장을 하는 거야. 하며 껄껄 웃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 초능력은 없었다. 사과꽃이 피던 봄날, 우리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읍내에서 차에 치여 죽었다. 빨간 불인데 길을 건넜다고 했다. 목이 꺾인 아버지의 시체 위에 하얀 꽃잎이 떨어졌다. 달큼한 꽃내음이 진동하는 계절이었다. 


 어머니와 나 혼자 농장을 꾸려나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그 해가 끝나고 집과 농장을 정리했다. 그리하여 나는 생애 처음으로 깡촌을 벗어나 도시란 곳을 갔다. 그리고 나는 그 ‘초능력’을 가진 게 어머니 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나와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그 초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그 능력을 초능력이라 부르는 대신 내 모자람을 장애라고 부르기를 택했다. 몇 번의 검사와 문답 끝에 그들은 나를 장애인으로 분류했다. 아빠가 나 같이 모자란 사람이 아니었다면, 죽지 않았을까. 빨간 불을 착각하고 그리 뛰어나가지 않았을까. 

나는 혼자 궁금했다.  


 그 해 좁은 방구석에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아하던 사과주를 혼자 모두 마셨다. 그리고는 취해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아라야, 아라야, 네 아부지는 어디 있니. 나는 말없이 어머니에게 안겨 있었다. 사과가 한가득 익는 곳에 갔을거야. 꿀벌도 많고, 사과꽃도 많이 피고, 그래서 사과주도 많은 곳에 갔을 거야. 혼자는 그리 생각했지만 어머니가 우는 모양새 앞에 서면 입이 자꾸만 닫혔다. 나는 사과가 익었는지, 익지 않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익은 것에 대해 익지 않았다고, 익지 않은 것에 대해 익었다고 이야기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닫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묵묵부답인 나를 끌어안고 그 해 혼자 그 슬픔을 감내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나는 학교에 다녔고 어머니는 일을 시작했다.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었으나 나는 가끔 꿈을 꾸었다. 안 익은 걸 따면 어떡하니, 하고 웃으며 핀잔을 주던 어머니의 목이 돌아가는 꿈이었다. 180도 꺾인 목으로 어머니는 통곡했다. 사과색 눈물이 땅을 적셨다. 눈물로 젖은 어머니의 등이 가녀렸다. 


 사과꽃이 필 무렵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나를 교실로 불렀다. 적록색맹 교정 안경의 베타 테스터를 찾는 중인데, 선생님이 아라를 추천했어.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붙잡고 선생님은 인내심 깊게 여러 번 설명했다. 진짜요, 진짜요, 여러 번 되묻다가 학교를 뛰쳐나왔다. 엄마, 나 나을 수 있대. 


 월요일 오전은 어머니가 드물게 쉬는 날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산책하는 거리를 향해 뛰었다. 때마침 어머니가 길 건너편에 보였다. 신호등에서 사과색 빛이 반짝거렸다. 나는 어머니를 향해 달렸다. 엄마. 엄마. 있잖아요, 나 나을 수 있대. 어머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라야, 돌아가, 아라야. 비명. 끼익. 아라야, 어머니는 울었다. 그리고 모든 게 끝나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 위로 사과색깔의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빨간색이란 색이 무슨 색인지를 알 것만 같았다. 


 멀리서 사과꽃 냄새가 희부옇게 번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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