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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Nov 16. 2019

들키지 않을 수 있는 봄

   

우리 집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책상이 하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가만가만 나무결을 따라 손을 옮기다 보면 뒤편에 우둘두둘한 바른 정자가 색색깔로 여럿 새겨져있다. 칼이 아니라 펜으로 있는 힘껏 긁어내린 모냥이라 꽤나 지저분하다. 그래서인지 보는 사람마다 뭐냐고 묻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릴 때가 태반이다.


스스로에게도 얼버무릴 수 있다면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겠지만, 아쉽게도 난 그 자국들을 기억한다. 어릴 적 나는 분노나 우울 따위가 견디기 힘들어질 때 펜을 도끼 쥐듯 잡고 책상을 할퀴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반 친구가 하던 뒷담화 때문일 때도 있었고, 어머니가 화나서 뱉은 말 때문일 때도 있었다. 아버지의 외도로 어머니가 집을 나간 날은 점심에 한 번, 밤에 한 번 더 그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힘을 다해 나무에 흔적을 남기고 나면 힘이 빠져선지 감정이 덜 격렬해졌고, 그게 좋아서 자국을 계속 늘려갔다.      

그러다 16살이 되던 해 겨울, 어머니한테 자국을 들켰다. 어머니는 나를 붙잡고 이게 무엇이냐고 추궁했다. 나는 10여년 만에 내 우울을 들킨 것이 서럽고도 반가워 요목조목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두 개쯤 설명했을까, 어머니는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진짜 예민하구나.”


나는 어머니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멍하게 허공을 보고 있었다.      


“미안해. 엄마가 더 조심할게.”     


어머니의 머리가 부스스했다. 그녀는 앙상한 목 위에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었지만 나는 자꾸만 무릎을 꿇고 벌을 받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잠시 자리에 앉아 있다 말없이 방을 나갔다.      


현실의 무게는 주관적이라고들 하지만, 어머니는 객관적으로도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불우한 유년을 겪고 가난한 집에서 불성실한 아버지와 함께 나를 홀로 키워내야 했다. 그 날 나는 어머니의 눈을 보면서 그 짐 중 가장 무거운 것이 내가 아닌가 짐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참으로 형편에 맞지 않는 신경줄을 가졌다. 우리 집에 필요한 건 무던하고 단순하여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성격의 아이였다. 그리하여 우울증을 겪고 있는 어머니가 뾰족한 말을 했을 때, 그것을 그런가보다 하고 흘릴 수 있는 딸이 우리 집에는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날카로운 말 한마디에도 죽음을 생각하는 여자아이였다. 걸어가다가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 예뻐서 우는 아이였고, 친구의 표정 하나로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면 그 날 엄마가 기분이 안 좋았구나, 하며 넘어갈 언행이나 눈빛 따위를 10년이 넘도록 기억했다. 일부러는 아니었다. 난 그저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이었고, 아픈 것을 아프지 않아할 수도, 기쁜 것을 기쁘지 않아할 수도 없었다.      


내 의지와는 별개로 내 예민함은 자주 무기가 됐다. 나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남에게 상처 입히는 게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내 성격은 독이었다. 내가 얼마나 상처를 쉽게 받는지가 명확해질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눌러 삼켜야 했고, 내가 상처 입지 않을까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했다. 나는 몹시 어렵고도 피곤한 사람이 되어갔다.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여유가 있었던 집이었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짚신을 신어야 할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 비단신을 신어야만 다치지 않을 발을 타고 태어난 격이었다. 그래도 짚신을 신다 보면 굳은살이 배겨 보들보들한 발도 단단한 발이 되는 것이 이치일 턴데, 나는 짚신을 신다 보면 상처 난 곳이 곪고 터져 결국 비단신을 신어도 아픈 발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니 짚신도 없어 맨발로 걸어야 했을 우리 어머니에게 내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 날 어머니의 얼굴에는 그 모든 것들이 묻어 있었다. 어머니는 힘없이 늙어버린 노인이 되어 앉아있었다. 나는 그 초라한 어깨 위에 올라앉은 철없는 자식이 되어 문득 그 자욱들을 부끄러워했다. 나는 아무리 들키고 싶어도 들키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이후로 더 이상 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내 예민함이 들키기를 바라던 마음을 버리자 상처를 숨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숨겨낼 수 없는 상처를 피해 사람과 거리를 두는 법도 배웠다. 그 거리는 나의 매정함이라기보다는 상냥함에 가까웠고, 비로소 나는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 됐다.     


요즘은 봄을 맞아 집안 대청소 중이다. 닦을 것은 닦고, 버릴 것은 집 밖에 내어 놓는다. 이번 주말에는 이 책상을 가져다 버리기로 했다. 마지막 남은 자국들을 함께 버리려니 조금은 기분이 싱숭생숭하지만, 나쁘지 않다. 잃어서 슬픈 것들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는 이제 내 예민함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고, 어머니는 더 이상 나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아아,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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