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잃었지만 잊지 못한 것
A는 어릴 적 ‘잃다’와 ‘잊다’를 자주 헷갈렸다. 보다 정확히는 두 단어를 구분하지 못했다. ‘잊어버린 것’과 ‘잃어버린 것’들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경을 챙기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경을 잃어버렸다고 혼났고, 우산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잊으면 우산을 잃어버렸다. 잊은 것들이 잃어버린 것들이었고, 잃어버린 것들이 잊은 것들이었다. 머리가 굵어져 소위 정신적인 것에 대해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기억을 잊어버린 것은 그 기억을 잃은 것과 본질적으로 같았다. 그래서 A는 항상 잊다와 잃다를 명확히 구분해 내려고 애쓰는 학교 교육을 비웃었다.
시간이 흘러 A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학번 위 선배의 고백을 받았고, 연애를 시작했다. A는 그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모든 것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그 누구도 자기가 하는 것과 같은 사랑은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 사람이 모두 헤어져도 자신의 연인만큼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제 손을 붙들고 있을 것이라 굳건히 믿었다. 그리고 일 년 후, 그들은 헤어졌다.
또 다시 일 년이 흘렀다. 선배는 군대에 갔고, 몇 달 동안 술을 푸며 대성통곡을 하던 A는 고학번이 되어 취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첫사랑에 홀려 2년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밀려왔다. 저만치 앞서 달리고 있는 동기들을 보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러나 막상 무엇을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A는 “죄책감 없이 게으름 피우는 법을 아예 잃어버렸다”며 자주 불평했지만 정작 술약속을 마다할 만큼 바쁘게 살지도 못했다.
그 날도 A는 도서관에 파묻혀 토익 문제집을 깔짝대다가 동기 B와 학교 근처 술집을 찾았다. 둘이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다 취업이니, 누가 누구랑 사귄다니, 누가 전역한다느니 따위의 술안주들을 씹었다. 그러다 새내기 시절로 이야기가 흘렀다. B는 잠시 눈치를 보는 것 같더니 선배 얘기를 꺼냈다. 알고 보니 과 누구와 또 사귀는 모양이었다. 정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A는 입을 뗐다.
“그러냐.”
B는 무언가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더니 눈치를 보며 다시금 말을 걸었다.
“괜찮아?”
“괜찮지 않을 게 뭐냐.”
“가시나 다 잊었나 보네.”
“뭐, 그럭저럭.”
A는 거기까지 말을 하고 변태 짓을 했다며 떠들썩한 교수를 다시 꺼내어 씹기 시작했다. B는 A의 반응을 보고 어떠한 결론을 내린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A는 자신의 이야기가 다시금 안주거리로 씹히는 모양이 보이는 듯 해 짜증이 났다. 그리하여 A는 내일 아침에 과외 보충이 있다며 둘러대고는 일찍 자리를 떴다.
코트 자락을 여미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A는 B의 말을 곱씹었다. 잊었냐는 말이 도대체 어떤 의미였는지, 어떻게 대답했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애정이 남지 않았다는 걸 ‘잊었다’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었을까. 그러나 분명 A는 선배를 잊은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스무 살이었고, 첫 사랑이었고, 청춘이었다. 그 기억들은 빼곡히 남아 있었고 없어질 종류의 것도 아니었다. 좀 바래고 희미해지더라도, 없어지진 않을 것이었다. 그 사람을 잃었으나, 잊지는 않았다.
그제서야 A는 학교가 그토록 잃다와 잊다를 강조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잊다는 자신이 중심인 단어였다. 내가 나이를 먹어 더 이상 내 토끼인형을 찾지 않게 되었을 때, 그리하여 그 보들보들한 털의 감촉이 점차 희미해지고 중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난 그 인형을 잊었다. 나에게 희미해지는 것들이, ‘잊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잊은 것들은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잃다는 내가 잃어버린 그것이 중심인 말이었다. 초등학교 때 절교를 선언한 친구는 내가 한 달 간 매일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녀는 내 세계에서 제 맘대로 걸어나갔고, 그 과정에서 세계를 부수고 흔적을 남겼다. 그렇게 나는 친구를 잃었다. 그래서 잃은 것들은 아팠다.
그래서 A는 그를 잊지 않았지만 잃었다. 그래서 아팠고,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소식에 마음이 선득했다. 그리고 그래서 그가 남긴 흔적들을 한 움큼 안고 있었다. 감히 찬란하다고 부를 수 있는 순간들을 한 아름 끌어안고 있었다. 그가 떠났다고 A의 2년이 시궁창으로 처박힌 것도 아니었다. 문득 A는 그를 잊지 않고 잃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언젠가 삶을 뒤돌아보고 싶을 때 자신을 구성하는 것들은 잊은 것들이 아니라 잃은 것들일 테다. 그가 자신을 구성하는 부분으로 남아서, 다행이었다. A는 좋네, 라고 중얼거리고 집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