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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Nov 17. 2019

이번 역은 만월, 만월입니다

 “엄마, 외계인들도 지하철을 탈까?”


 “그럼. 원래 누구든지 나이가 들면 지하철을 타는거야.”     


 ET가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던 해, 세영은 6살이었다. 그녀가 사는 골목에서 자전거가 없는 건 그녀가 유일했다. 그래도 세영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자전거가 아니었다. 매일 아침 아버지는 수트를 빼입고 ‘지하철’이란 걸 타러 간다고 했다. 그러니 지하철이란 건 자전거보다 수십 배는 멋있을 게 분명했다. 자전거는 유치한 코찔찔이들의 놀이였지만, 지하철은 진짜 어른들의 세계였다. 세영은 빨리 어른이 되어 어른스럽게 지하철을 타고 싶었다. 그래서 세영은 친구들이 모두 ET의 자전거를 그릴 때 하늘을 날아가는 지하철을 그렸다. 이티가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세영은 오래도록 자전거를 갖지 못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처음으로 가진 꿈 또한 같은 이유로 포기했다. 미술학원을 다녀보고 싶다는 세영의 말에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고, 어머니는 난처하게 웃었다. 세영은 어머니를 따라 어설프게 웃으면서, "아냐, 생각해보니 진짜 가면 귀찮을 것 같아. 가인이가 간다길래 그냥 물어봤어."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그 날 세영은 만월의 밤을 날아가는 지하철을 생각했다. 자전거를 하늘에 띄울 수 없다면 지하철을 하늘에 띄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자전거를 타고 날 때처럼 상쾌하지는 않을 테지만, 하늘의 예쁜 정경쯤은 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니까, 괜찮았다.      


 그리하여 세영은 다음날, 퇴근한 아버지를 붙들고 물었다. 밤 11시였다.      


 “아빠, 아빠는 왜 그 직장에서 일하는거야?”     


 아버지는 세영을 힐끗 봤다. “돈 주니까.”     


 세영은 조바심이 났다. “아니, 물론 순전히 하고 싶어서 일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구석은 있을 거 아냐. 그러니까 그렇게 오래 했겠지. 아냐?”      


 아버지는 “돈 주니까 붙어있었지. 너랑 니 엄마 먹여 살려야 하니까.” 하고는 방에 들어갔다. “쓰잘데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서 자.” 아버지는 세영에게 고갯짓을 하고는 문을 닫았다.      


 세영은 불을 끄고 맨바닥에 앉았다. 아버지의 지하철에는 엄마와 내가 타 있구나. 그래서 너무 무겁구나. 그래서 지하철은, 하늘을 날 수 없구나. 어디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래 누구든지 나이가 들면 지하철을 타는 거야. 응, 엄마. 이제 알 것 같아.                 



 그렇게 세영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세영이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는 맞지 않는 퍼즐조각처럼 덜걱거렸다. 재작년 그들은 세영이가 졸업하자마자 이혼하기로 합의했다. 세영은 어렴풋이 이들의 이혼이 자신 때문에 미뤄져왔음을 알았다. 어쩌면 대학교에 입학하기 훨씬 전부터. 이번 역은 독립, 독립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안내방송이 세영의 귓전에 울렸다. 기어코 자신이 하차해야할 정거장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영은 제 대학교 졸업식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를 용케도 알았나보다. 졸업가운과 박사모를 반납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 방은 비어 있었다. 세영은 꽃다발을 내팽개쳤다. 빈 방에 안개꽃의 고개가 꺾여 지저분하게 방바닥을 나뒹굴었다. 인터넷도 못 하는 양반이 학교 사이트를 뒤질 정도로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까. 그리하여 끝내 이 방의 짐을 싸면서 아버지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후련했을까. 


 세영은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는 그 방문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8년이 지났다. 오늘은 과 회식이었다. “여자라고 빼면 못 쓰지~” 라고 느물거리는 과장 덕에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나오는 길이었다. 덕분에 지하철 막차를 아슬아슬하게 잡았다. 세영은 자리에 앉아 헐떡거리는 숨을 잡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맞은편 자리에 앉은 건.     


 아.      


 세영은 아버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잠들어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비정상적으로 마른 목에 볼록 나온 배, 셀 수 없는 주름. 어디서 본 모습인데. 그 때 지하철 창 밖으로 달이 보였다. 보름달이었다. 세영은 두 눈을 깜빡였다. 맞다, 이티.      


 저와 어머니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고 날아갔을 줄 알았는데. 왜 지하철에 탄 이티가 되어버린걸까. 세영은 울컥거리는 덩어리를 삼켰다. 돈 주니까, 라고 던지듯 말하던 당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8년 간 당신은 텅 빈 지하철에 혼자 앉아 있었겠지. 세영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어느새 내릴 역이었다. 세영은 조용히 일어섰다. 이미 내려버린 열차에 다시 탈 수는 없었다. 다만 가벼워진 지하철이 이대로 하늘로 날아가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더 이상 볼 일은 없기를, 그래도 그는 저 만월에 가 닿기를 빌었다. 치익, 세영의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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