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아니 스무 살, 아니 열여덟 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번 글은 쓰다 보니 상당히 길어졌습니다.
읽다가 지치신다면 스크롤을 마지막까지 내려 귀여운 뚱이 사진은 꼭 보고 나가시길 바라요.
17살에 만나
얼렁뚱땅 가족이 되었고,
예뻐하고 사랑한 건 맞지만,
분명 처음부터는 아니었던 거 같다.
살을 부대끼며 함께하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내 마음이 예사롭지 않아 짐을 느꼈다.
뚱이가 3살 정도 되었을 무렵부터 나는 뚱이와 헤어지게 될 그날이, 그 막연한 미래가 너무 무서웠다.
아직 3살인 아가를 매일 눈에 담고 행복해하면서도 언젠가 불가항력으로 마주쳐야 할 그 몹쓸 이별에 대한 생각은 한 번 들기 시작하면 쉽사리 멈추지를 않았다. 그럴 때면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기도 하고, 뚱이의 건강을 사수하겠다는 결연한 다짐으로 새벽까지 [강아지 오래 살게 하는 방법]을 검색하며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공포를 투영하듯 내 소원 0순위는 언제나 뚱이의 건강과 장수였다.(행복도 추가할 걸 그랬다)
일반적인 강아지의 평균 수명은 16년. 뚱이가 어릴 땐 이 숫자가 참 위안이 됐다.
언젠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지만, 먼 미래라고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울 수 있었던 건 동물병원에 붙어있는 <강아지 평균 수명 16살 *소형견 기준이긴 하다> 벽보 덕분이었다.
16년을 기준으로 아직 13년… 아직 10년… 이렇게 남은 숫자를 카운팅 하며, 아직은 괜찮다고 되뇌었다.
물론 우리 뚱이는 소형견 기준인 16살보다는 평균 수명이 짧은 중형견에 속했지만, 고맙게도 뚱이가 워낙 건강체질이다 보니 16살은 거뜬히, 너무도 당연하게 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우리 뚱이는 중간에 한 번 디스크 문제가 생겼던 걸 제외하고는 줄곧 건강했다.
뚱이가 더 좋은 곳으로 떠가기 2개월 전인 18살 하고도 4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뚱이는 하루에 2번,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했고, 노견에게 흔한 백내장도 없어 그 귀여운 얼굴은 애기 때랑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덕분에 17살 까지도 산책에서 마주친 다른 견주들이 "얘는 아직 애기죠?"라고 묻거나 "우리 애보다 애기 같은데 몇 살이에요? “라고 내게 물어왔다.
나이를 답해주면 열이면 열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어떻게 관리를 했기에 이렇게 건강할 수 있냐며 질문을 해왔다. 그리고는 당신네 강아지도 나이 들어 뚱이 같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중 대형견도 장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며 건강한 뚱이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 덕담을 건네주었다.
ㅣ사실 나는 뚱이가 노견의 나이에 접어들어서부터는 뚱이 나이에 대해 얘기하는 게 참 싫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 그 숫자를 내 입으로 말하는 게 참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때로는 못 들은 척 질문을 피하거나, 소극적으로 답했는데, 언제부턴가 그 나이를, 그 숫자를 마치 훈장처럼 자랑하고 다니게 됐다. 뚱이 덕분이다.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뚱이가 나를 그럴싸한 보호자로 보이게끔 만들어줬다.
그렇게 뚱이가 소형견 강아지 기준, 평균 수명인 16살에 가까워졌을 무렵엔 건강한 뚱이를 보며 20살을 기준으로 다시 카운팅을 시작했다. 건강만큼은 자만하면 안 된다더니 그 때문이었을까. 2022년 1월 거짓말처럼 뚱이가 딱 16살이 되던 해에 원인 모를 특발성 전정계 이상으로 마취를 하고 입원을 하는 일이 생겼다. 나에게 귀 청소를 받던 뚱이가 발버둥을 치며 급하게 도망을 가더니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넘어져 도통 일어나지를 못했다. 또, 내가 사단이었다.
생전 처음 듣는 비명소리와 쓰러지듯 옆으로 넘어지는 모습에 나도 패닉이었지만 뚱이 스스로가 너무 놀란 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일어나려 발버둥을 쳤지만 일어날 수 없었고 일으켜 세워주면 걸으려다 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그 좋아하던 음식을 먹지도 못했다.
곧장 다니던 로컬 병원에 방문해 급하게 진료를 받았고, 일시적인 증상일 수 있으니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며, 3일 정도 더 지켜볼 것을 권유하셨다.
뚱이에게 발현된 증상(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사경, 안구가 좌우로 흔들리는 안구진탕, 구토, 기력저하 등)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가장 의심이 됐던 건 뇌나 귀 쪽 질환이었다. 검색을 통해 특발성 전정계일 가능성도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뇌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한 시가 급했기 때문에 차분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난 항상 그게 문제였다. 뚱이는 병원을 참 싫어했는데, 난 아주 조금만 이상해도 이거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하며 가장 안 좋은 케이스의 가능성만 부풀려 생각해 과잉 진료를 받게 만드는 이기적인 보호자였다.
2차 병원 차트 기록에는 그런 나를 나타내듯 걱정이 매우 많은 보호자라는 기록도 함께 쓰여있었고, 다니던 로컬 병원 선생님도 매번 나를 진정시키기 바빴다.
선생님이 조금 더 지켜보기를 권유한 3일 중 하루는 지났을까, 점점 더 심해지는 증상에 나는 또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어느새 나는 뚱이와 2차 병원에 와 있었고, 마취를 버틸 수 있는 상태인지 검사부터 서둘러 진행했다. 많은 나이가 걱정이긴 했지만 충분히 가능할 거 같다는 소견을 듣고 바로 MRI+CT 촬영을 진행했다. 검사결과, 걱정하던 뇌염이나 중이염은 아니었고, 충분한 휴식과 안정을 취하면 대부분 수주 이내에는 자연치유가 된다고 하는 특발성전정계였다.
원래는 뚱이가 마취에서 깨면 조금 안정을 취한 뒤, 그날 바로 퇴원을 하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확실히 마취가 무리가 됐던 모양인지, 하루 정도는 입원하며 수액 처치를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하셨고, 뚱이는 하루 입원 후 퇴원했다. 집에 와서도 2주 정도는 컨디션이 썩 좋지는 못했지만 거짓말처럼 전정계 증상은 퇴원한 당일부터 눈에 띄게 사라졌다. 내 판단 미스, 내 잘못이었다. 내 불안을 잠재우고자 애먼 뚱이만 또 고생시킨 것이다.
뚱이가 오래 살길 바랬다. 내 옆에 아주 오래 영원히 있어주길 바랐다.
그 바람의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뚱이보다는 나를 위한 것이었던 거 같다.
뚱이가 떠나고 난 뒤 혼자 남을 나의 삶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나의 분신 같던 뚱이가 없는 그 상실감을 안고 도저히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나 살고자 뚱이를 고생시킨 것이다.
그래, 뭐가 됐든 뚱이를 살리고 싶은 이유에서였고, 뚱이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였어라며 내가 가진 죄책감에게 백번 양보하라고 하더라도, 열여덟 살 하고도 5개월이 지난 그때엔 내 욕심을 접었어야만 했다.
아무리 무서운 현실이라고 할지라도 외면해서는 안 됐었다. 내가 하는 만큼 나아질 거라며 오만하게 나를 믿어서도 안 됐었다.
나는 줄곧 내가 뚱이에게 주는 사랑만 생각했지.
뚱이에게 받은 사랑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 같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하게도 뚱이가 잠시 내 곁을 떠난 지금은 그 사랑이 선명하게 보이고, 느껴진다.
내 시선이 늘 뚱이에게 가 있던 것처럼 뚱이의 시선도 언제나 나를 향해 있었고,
내 품에 안으려 하면 싫다고 벗어나면서도 또 내 곁에 와 있어 주었고,
매일 내 몸 어딘가에 자신의 몸을 살짝 맞대어 온기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뚱이와 함께한 6,710일째였던 그날,
뚱이가 버티기 힘들었을 그날에,
뚱이는 내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었고 내 기도를 모두 들어주었다.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어달라는 것만 빼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옆에 있어주길 바라던 내 욕심보다 뚱이의 평안함을 앞서 빌게 된 그때, 뚱이는 내 품에서 떠났다. 뚱이가 내게 보여준 고귀하고 그 큰 사랑은 앞으로 남은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 주는 안온함일 것이다.
엄마에게 모든 처음을 경험하게 해 준 나의 첫사랑이자 첫 자식, 그리고 첫 아픔인 뚱이야,
가장 아름답고 멋진 곳에서 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그러다 엄마가 유난히 힘들어 보이는 날엔 어떠한 형태로든 널 느낄 수 있게 잠시 잠깐이라도 머물다 가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 같아. 말이 나와서 말인데, 오늘 꿈에서 만나는 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