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함과 껌딱지 사이

시크함 3 : 껌딱지 10

by 첫사랑은뚱이

처음부터 쥐면 부서질까 불면 날아갈까,

뚱이 일이라면 벌벌 떨고 야단법석을 떤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난 참 무지했고, 무심한 언니였다.(내가 엄마가 된 건 뚱이나이 10살 즈음부터다.)



뚱이가 1살 때였을까. 뚱이는 첫 생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얼마나 무심했으면 정확한 날짜는 고사하고 연도도 기억이 나질 않는 걸까.

그래도 확실한 건 뚱이의 생리는 첫 생리 한 번이 전부였다는 점과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몸이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아기 강아지에게 그 일이 얼마나 가혹하고 공포스러운 일이었을지. 당시엔 깊게 생각하지 못했고, 또 알려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저 뚱이를 더 오래, 건강하게 살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큰 병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한 예방 주사쯤으로 생각하며, 미리 대비할 줄 아는 우리가 제법 멋진 보호자라 생각하며 내심 으슥했던 거 같다.


그래도 참 다행이지. 그 큰 별 일을 고작 몇 개월을 살아낸 어린 강아지 뚱이가 별 일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해내주었다.



뚱이를 병원에 맡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은 잘 끝났고, 마취에서도 잘 깨어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 가족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 안심하며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다.

면회 한 번 갔을 법도 한데 말이다.

그런데 다음날 이른 오전, 병원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뚱이가 밤새 입원장에 코를 박으며 자해를 한 거 같습니다. 코에 상처가 많이 생겼고 출혈이 있어요. 심리적으로 많이 혼란스럽고 우울해 보입니다. 밥도 물도 전혀 먹지를 않네요. 가능하다면 오늘 데리고 가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중성화 수술이 별 이슈 없이 잘 끝나면 보통은 마취에서 깨어난 뒤 바로 퇴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 뚱이는 3일 정도 더 입원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회복과는 별개의 문제로 병원 신세를 졌다.


수술도 잘 끝난 뚱이가 바로 퇴원하지 못했던 이유는 황당하게도 뚱이를 데리고 갈 곳 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집은 이사 준비에 한창이었는데, 계약 당시 착오로 인해 새로 들어갈 집과 살던 집의 입주 날짜가 3~4일 정도 뜨게 되었다.

사람인 우리가 며칠 머물 장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반려견 동반 숙소를 찾는 것은 당시엔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동물 병원 강아지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었고, 내친김에 중성화 수술까지 받는 것이었다.



자해라니.

강아지도 자해를 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때 처음 알았다.

뚱이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그 일을 겪어내야 할 어린 강아지의 마음이 어떨지에 대해선 조금도 염려하지 않은 것이다.

오로지 차후 생길 질병에 대한 예방률을 높인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한 두 번 다녀간 병원이긴 했지만, 수술과 입원/호텔링은 첫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며칠 기다리고 있으면 가족들이 데리러 온다는 것도,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당시의 뚱이는 짐작조차 하지 못 했을 것이다.

다른 동물 친구들의 구슬픈 울음소리와 앙칼지게 짖는 소리가 뒤엉킨 동물병원이라는 공간은
두렵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곱절로 가중시켰을 거다.



전화를 받고 곧장 뚱이를 데려오기 위해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마주한 뚱이 모습은 18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선명한 잔상으로 남아있다.


당시 뚱이 나이 고작 한 살,

한창 똥꼬 발랄하고 활력이 넘치던 시기였다.


터그 놀이를 할 때면 수건을 물고 놓지를 않아 공중에 떠있을 정도로 놀이에 진심이었고,

물고 뜯고 파내는 걸 한참 즐기던 개춘기 시기라 내 침대 매트리스는 뚱이가 파헤친 구멍이 싱크홀처럼 크게 뚫려있었다.

산책을 나가 달리기를 할 때면 어찌나 멋지게 전력질주를 하는지 그 모습은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봐오던 표범 같아 우리 가족은 뚱이를 비호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렇게 에너제틱한 뚱이가 입원 이틀 만에 정반대의 모습으로 내 눈앞에 나타났다.

고개는 땅을 향해 축 늘어 떨어뜨린 채 병원 스태프가 이끄는 리드 줄에 질질 끌려 힘 없이 나오던 뚱이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뚱아! 뚱이야!"

믿기지 않는 모습에 뚱이가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뚱이 이름을 크게 불렀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뚱이는 내 목소리를 듣고도 3초 정도 벙찐 표정만을 지어 보이며 어떠한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3초의 정적 후 뚱이가 현실을 알아차렸는지 엄마와 나를 향해 서러운듯 울부짖으며 이내 엉덩이와 꼬리펠러를 세차게 돌리며 스태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너무나 짠한 모습이었지만 동시에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우리가 비록 같은 언어를 사용하진 않지만 그날 뚱이가 서럽게 울부 짖었던 하울링 속 메시지는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도대체 어디를 갔다 이제 온 거야!!! 나 너무 무서웠다고!!"




6,710일, 뚱이와 함께한 그 시간 동안 난 단 한 번도 뚱이에게 뽀뽀를 받지 못했다.

깔끔한 성격이라 입이 닿는 게 싫었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대로 무작정 입술부터 들이밀고 매일 수차례 뽀뽀를 해댔는데 그럴 때면 뚱인 그 귀여운 얼굴을 도리도리 저으며 피하기 바빴다.

뚱이가 잠들었을 땐 옆에 눕고 싶어서 눈치 싸움하듯 살금살금 까치발을 들고 조심스럽게 몸을 뉘었는데 귀신같이 알아차리고는 자리를 떴다.

그렇게 항상 본인이 원할 때를 제외하고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던 강아지가 바로 우리 뚱이다. 그러면서도 항상 곁에는 있고. 정말이지 밀당의 고수 같다.


그런데 또, 가족들과 떨어지면 바로 티가 나던 강아지가 우리 뚱이다.

우리 집은 네 마리의 강아지와 한 마리의 고양이를 키운 다견가정이었는데, 강아지 동생들과는 다르게 가족들이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뚱이가 아팠다.

할아버지 장례식으로 이틀 정도 온 가족이 집을 비운 일이 있었다. 장례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뚱이가 배변활동 보기를 주저하며 망설이기를 반복하다 비명을 질렀다.

놀란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24시 병원을 갔고, 방광염 진단을 받은 일이 기억난다.

꽤나 독립적이고 시크해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족 껌딱지에 유난히 겁이 많은 강아지다.


‘시크함과 껌딱지 사이,

그 사이를 종횡무진하던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


내가 먼저 겪어봤다면,

내가 먼저 가서 그곳에서 너를 기다리다 마중을 나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까?


아무도 알 수 없는 죽음. 그리고 사후세계.

먼저 경험해 본 이들의 리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좋은 곳이라고, 별 다섯개도 부족하다고 말이다.

이승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행복과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고, 사랑했던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가 사람이건 동물이건 어떠한 생명체건 차별 없이 무조건 다시 만나게 되도록 설계되어 있으니 걱정 말라고.

그런 후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볼 수 없는 절망스러운 현실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길 거 같다.


지금 이 슬픔은 솔직히 너무 버겁다.


내가 잘 지내야 너도 잘 지낼 거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네.

널 보내고 내가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내 목숨보다 사랑하는 네가 그래야 잘 지낼 수 있다면 있는 힘 없는 힘 모두 쥐어 짜내 볼게.

사랑해 뚱아.


엄마가 들이밀건 말건 제 할일 중인 뚱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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