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노는 게 제일 재밌어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읽고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논의하던 중, 누군가 말했다. “사실 가족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요.” 웃프지만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이었다. 우리는 굉장히 자주 보는 사이였다. 공식적인 일정은 한 달에 한 번이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큰 빙하처럼 비공식 일정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독서 모임 후 뒤풀이가 있다. 모임 시간이 일요일 3시인지라 모임이 끝나면 배가 고플 수밖에 없다. 이미 세 시간 넘게 떠든 뒤라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치킨, 떡볶이, 김밥 등 기가 막힌 뒤풀이 메뉴를 들으면 위장이 먼저 반응하고 만다. 그렇게 함께 저녁을 먹다 보면 어느덧 책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듣지 못했던 근황부터 요즘 고민 상담, 인생 영화 추천, 연애 진행상황 등 흥미진진한 대화 주제가 쏟아진다.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2차로 이어지기도 한다. 즉, 그날 모임의 이야기는 뒤풀이부터가 진짜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번개가 있다. 말은 번개지만 사실 한 명이 날짜와 장소를 조율하고 같이 하고 싶은 활동을 제안해서 한 달에 한 번씩 같이 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적지 않은데 얼마나 올까 싶었지만, 예상외로 참석률은 매우 높았다. 공통 관심사가 있다 보니 책 이외 활동에서도 취향이 겹치는 부분이 많기도 하지만, 제안자가 맛집 투어, 한강으로 소풍, 영화 감상, 전시 관람, 보드게임, 볼링, 스키장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활동을 제안해 준 덕이다. 심지어 같은 영화 감상 활동이라도 <굿 윌 헌팅>, <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블레이드 러너> 등 제안자의 취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활동이 된다. 그래서 번개를 하다 보면 독서 모임에서는 알지 못했던 멤버들의 취향이나 매력을 알아가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번개 참석률이 높다 보니, 한 번 번개에 빠지면 다음 모임 뒤풀이나 번개에서 FOMO를 경험하게 되고, 지난 번개에 참석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다음 번개에 더 열심히 참석하게 되어 참석률이 더 높아지는… 일종의 선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즉흥적으로 만나는 진짜(?) 번개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번개 만으로 부족했던 것일까, 너무 재밌어서 더 놀고 싶은 것일까, 부르면 잘 나오는 사람들이 여기에 유독 많은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진짜 번개도 활발하다. 누군가 갑자기 제안을 하면 너도 나도 손을 들거나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끼리 따로 연락을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도 모든 제안을 받은 건 아니라 모두 알지는 못한다) 조심스럽게 제안을 하면 덥석 물어주는 덕분에 점점 망설임 없이 제안을 할 수 있게 되고, 자주 나와주는 멤버들에게 고마운 마음에 제안을 받으면 나도 흔쾌히 응하게 된다.
이렇게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깃거리가 늘어나고 대화가 더 즐거워졌다. 즐거운 대화는 우리가 자주 만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학교나 회사를 다닐 때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월간 위대함을 하면서 만남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독서 모임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이 핑계가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또 독서 모임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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