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확장 공사
월간 위대함을 하며 생각한 것, 위대한 오운완 클럽. 세 번째 시즌이 되자 화려한 이름의 소모임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독서모임과 번개만으로는 아쉬웠던 건지, 진심으로 운동을 하고 싶었던 건지, 그냥 재미있어 보였던 건지, FOMO인지 각자 소모임에 참여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두 소모임의 시작은 그저 말 한마디였다.
월간 위대함을 하며 생각한 것(월위대생)은 지금 이 책을 만들기 위해 모인 모임으로 “나도 이 책처럼 책 한 권 써보고 싶다”는 내 말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이 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쓴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으로, 내가 발제를 맡아 월간 위대함 세 번째 시즌에 함께 읽었던 책이다. 제목 그대로 감독이 지금까지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찍으며 생각한 것들을 정리해 둔 내용의 책인데, 책을 읽는 내내 평소 일하면서 들었던 생각을 모아 이렇게 책이라는 또 다른 결과물로 만들었다는 점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분야는 정말 다르지만 여러 서비스를 만드는 일을 해오고 있는 나도 비슷한 주제로 책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가제는 ‘서비스를 만들며 생각한 것'이 좋겠다며 혼자 상상의 나래까지 펼쳤지만, 일단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느라 바빴기에 책 쓰기는 언젠가 하고 싶은 일 목록에 추가만 해두었었다.
내 언젠가 하고 싶은 일 목록에 있던 책 쓰기를 당장 할 일로 만들어준 것은 H이었다. 모임 전 발제를 준비하기 위해 H와 따로 만나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냥 툭 던진 말이었다. 책을 읽다가 나는 저런 생각도 했다고. 하지만 H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너무 재미있어 보이는데 같이 해보자고 했고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H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최고의 파트너답게) 다른 멤버들도 하고 싶어 할 수 있으니 이번 독서모임 마지막에는 이 프로젝트를 홍보해서 함께 할 멤버를 더 모아보자고 했다. 그렇게 J, I, B도 월위대생에 합류하게 되었고 총 5명이 모여 지금의 월위대생이 되었다.
반면, 각자 운동을 인증하는 모임인 위대한 오운완 클럽(오운완 클럽)은 B의 “요즘 운동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 독서모임 전, 운동을 다시 하기로 결심한 B는 평소 운동을 많이 하는 E와 Z에게 고민을 나눴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서로 응원도 할 목적으로 이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3명으로 시작했지만, 독서모임 뒤풀이 자리에서 이 모임의 탄생이 알려지자 너도 나도 참여하기 시작했고 무려 15명의 멤버가 함께 하게 되었다. 사실 더 많은 멤버들과 함께 하기보다는 운동에 빠삭한 멤버들과 운동을 하고 싶었던 B는 원래 목적과 다른 상황에 살짝 투덜대기도 했으나, 열심히 운동하자면서 마냥 신나 있는 멤버들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뚝딱뚝딱 두 개의 소모임이 탄생했다.
독서모임 외에 책 만들기와 운동이라는 다른 목적의 모임이 생기면서, 우리가 만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월위대생의 경우, 연말까지 책을 완성하기 위해 2주의 한 번으로 더 자주 만나는 대신 온라인으로 만났고(물론 가끔 진행상황이 더디다 싶을 땐 오프라인에서 만나 서로를 감시하며 다 같이 밀린 숙제를 끝내기도 했다), 위대한 오운완 클럽은 별도 모임 없이 카톡방에서만 소통했다. 당연히 만나서 하는 일도 달랐다. 월위대생에서는 각자 어떤 책을 쓰고 싶은지부터 시작해서 각자 어떤 역할을 담당할지, 책의 주제는 무엇이며 목차는 어떻게 구성할지 논의하고 출판 과정 조사, 인터뷰, 글 작성, 진행상황 확인(일명 숙제검사), 피드백 같은 일들을 하며 조금씩 책을 만들어갔다. 위대한 오운완 클럽 카톡방에서는 각자 운동한 인증 사진을 보내고 운동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강제성이 없는 대신 인증을 하면 그냥 넘기지 않고 하트 이모지를 눌러주거나 ‘ㅇㅋㅁㅁㅇ’ 한마디를 보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격려해 줬다. 가끔 새로 생긴 장비를 칭찬해 주거나 Z의 운동하는 영상을 보고 Z를 놀리기도 했다. (Z는 즐기는 것 같았다)
만나는 방식과 목적이 달라져서인지 멤버들의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D은 (한국에서는 하지 않았지만) 미국 출장 중에도 러닝을 했고, Y는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했으며, E는 하루에 크로스핏-수영-크로스핏이라는 믿기지 않는 운동 일정을 소화해 냈다.
월위대생의 멤버들은 어쩌다 보니 두 모임 모두 참여하고 있어서 더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H는 오운완 클럽에 아침마다 테니스를 치며 감각적인 사진을 올렸고, 월위대생에서는 4시간 연속 회의에도 익숙하다는 듯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I는 오운완 클럽에서 운동 인증인지 셀카인지 모를 사진을 초반에만 올리다 사라졌고, 월위대생에서는 학원이라도 다녔는지 쓰기만 하면 눌러볼 수밖에 없는 제목을 뽑아냈다. J는 월위대생에서 따뜻한 문체를 뽐냄과 동시에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따뜻하게 날카로운 피드백을 전달했다. (그러나 오운완 클럽에서 J는 다른 사람들의 운동을 격려하기만 했다) B는 월위대생에서도 안광 가득한 눈은 그대로였지만,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꼼꼼하게 적고 빠르게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나는 오운완 클럽에 빈도는 적지만 꾸준하게 운동 인증을 올렸고, 월위대생에서는 숙제 검사 시간이 되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없이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독서모임을 통해 자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충분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며 한층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지에 따라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보통 사람을 만날 때 연인은 연인으로, 친구는 친구로, 회사 동료는 회사 동료로, 독서모임 멤버는 독서모임 멤버로 만나게 되다 보니 내가 보지 못한 모습은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독서모임에서 만난 멤버들을 오운완 클럽과 월위대생에서 만나 다양한 모습을 직접 보며, 내가 사람들을 얼마나 내 멋대로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다양한 모습을 가진 입체적인 존재라는 걸 머리로만 알고 있었구나 싶었다. 가족만큼 가깝다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도, 심지어 가족마저도 내가 모르는 부분이 얼마나 많을까. 앞으로 사람을 만나고 가까워지면서 이미 잘 안다는 오만한 생각이 들 때면, 이 경험을 떠올리며 아직 내가 모르는 모습을 조금씩 발견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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