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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May 28. 2023

34.다 귀찮을 땐 대충 해봐

<찔끔찔끔 계속하는 대충의 힘>


 아예 안 하는 것보다 대충이라도 해보는 것이 낫다는 것을 말해 보려고 한다.

 아니 요가하는 사람이 어찌 저런 터무니없는 소리나 하고 있는지 어이없겠지만, 대체로 나의 수련도 귀찮아서 대충 힘 빼고 해 보자는 마음 덕에 매일을 이어올 수 있었다.

 완벽한 정신과 몸 상태로 최선을 다 해 요가를 해보겠다고 생각하면, 많은 날들은 부담스러워서 수련을 건너뛰었을 것이다.


 귀찮은 마음이 생긴 날, 일단 대충 해보기라도 할까?라는 생각이 매일의 수련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일단 해보고 너무 힘들거나 귀찮으면 중간에 그만둬도 된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중간에 수련을 그만둔 적은 없다. 

 그래서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수련을 시작하기만 한다면 끝까지 해내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실 이 순간이 가장 어렵다.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는 순간이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한 에너지의 90%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작이 반이 아니라 시작에 필요한 에너지가 90%는 될 정도로 시작이 제일 어렵다.

 

 그러나 이미 마음속으로 짐의 크기를 줄여 ‘가볍게 아주 대충 해보자고~.’라고 결심한 상태이기 때문에 몸상태가 마음대로 안되고 피곤해서 빨리 사바아사나로 가고 싶어도 일단 다음 아사나를 이어갈 수 있다. 대충 팔 한번 올려서 다음 아사나도 해볼까? 대충 다리를 옮겨 다음 아사나도 해볼까? 이렇게 대충 하는 김에 대~충 다음 아사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슬렁슬렁하다 보면 수련은 끝이 나있다.


 여기서 대충대충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낀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 "대충"은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연료가 되기도 한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포기할 바에야 대충이라는 정신 교란으로 움직이라는 것이지, 삶의 전반을 대충을 목표로 살라는 것은 아님!)


 여러분 요가 강사 할 거예요? 아니면 요가가 스포츠다 생각하고 대회 준비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잘할 필요가 전혀 없다.

 잘하고 싶어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묵혀서 오랜만에 하는 수련보다, 이렇게 아주 찔끔찔끔 대충 하는 수련을 이어온 것이 나의 몸과 생활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너무나도 귀찮은 날에도, 수련을 마치고 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귀찮은 마음이 사라지고 다른 일들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게도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지만, 그런 날은 이미 숙제처럼 수련을 끝냈으니 마음 편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하게 수련에 몰입하는 순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인간인 우리들은 그저 매일 수련해 보는 시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솔직히 고백하고 나니 머쓱하긴 하지만, 나도 매일의 수련에 피곤하고 힘들어서 절로 나오는 하품과 귀찮은 발 동동이 혼재되어 있다.

 (일반인과 요가지도자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조금 더 현실적인 상황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아주 잘 해보고 싶지만, 귀찮은 마음이 생기는 날이 대체로 더 많다. 오늘 수련은 정말 완벽하게 몰입하고 집중상태로 즐겼다는 시간은 한 달에 두세 번 될까 싶다.

 스스로 만족하는 수련이 365일 중에 30일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 내 현실이다. 1/10의 적중률이라니 너무 허무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머지 90% 시간들이 전혀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대충 일단 해보자라는 마음이어도, 대충 끝난 날도 있고 수련을 하면서 몰입할 날도 있고, 아무 잠시나마 몸이 균형을 찾아간 날도 있다. 

 아사나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기대치에 못 미쳤지만, 전체 수련의 흐름 속에서 내 몸을 컨디셔닝 한 시간들이었다.


 사실 귀찮을 때는 대충이고 뭐고 아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 잘 안다. 

 자리에서 조차 못 일어나는 그 마음 이해한다. 

 그런데 인생 전체로 생각해 보면 마구 의욕이 솟는 날이 1년 중 며칠이나 될까?

 대체로 우리는 귀찮은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귀찮아하는 나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그 귀찮은 마음을 적당히 달래며, 살살 대충대충이라도 살아보는 자신만의 방법이 중요하다.


 '대충이라도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은 많은 것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가벼운 ‘마중물’이 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늘 나도 모든 것이 무척 귀찮은 상태로 기상했다.

 오늘은 일요일 아침이다. 

 비도 많이 내리고 저혈압 상태에서 몸이 무겁다.

 아침 6시에 눈을 떴지만, 귀찮아서 잠자리에서 2시간 정도 뒹굴거렸다. 그냥 누워서 오전을 다 보낼까 고민했지만, 골프 연습장에 가기 위해 일어났다. 귀찮으니까 어프로치 연습이나 하고 대충 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갔다. 그러나 컨디션이 좋아서 풀스윙을 빵빵 날리고 돌아왔다.


 힘들 때마다 대충이라도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자리에 일어난 것은 삶의 여러 순간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모든 순간에, 모든 분야의 것에서 정성을 다해 살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만성피로로 쓰러진다.

 대충 한 날도 있고, 대충 한 것도 있다. 

 그러다가 타이밍 좋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피치를 세게 올리면 된다. 그럴 때가 우리가 크게 한발 앞으로 나가게 되는 시간이 된다.


 대부분 인생의 시간을 멈추기보다, 힘들 때는 속도를 늦춰 걷듯이 산책하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뛰면 된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속도의 강약을 유지하며 걷고 뛰는 사람은, 멈춰 선 사람보다 아주 멀리 가 있다.

 분명 나랑 비슷한 사람인데 저 사람 언제 저렇게 까지 뛰어갔지? 싶을 때는, 그 사람은 멈춘 적 없이 속도를 조정하며 걸어왔고 그리고 뛰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힘들고 귀찮은 날 대충 요가를 해왔는데, 세월이 흘러 돌아보면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 대충 반 발자국이라도 움직여있었다.

 지금이야 다 큰 성인이니 누구도 감시해 주거나 잔소리해주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내가 포기하고 내려놓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작심 3일을 평생 반복하면 지속성이 된다고 한다. 물론 작심 3일간 열심히 한 후, 4일째 하루 쉬고 5일째 다시 작심 1일 차가 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포기하는 4일 차가 왔을 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아주 대충 한번 해볼까? 하다가 싫으면 중간에 그만둬도 되잖아.’라고 가볍게 마음을 먹고 걸어가는 날로 만드는 것이다.


 그냥 다 포기하고 싶은 귀찮은 4일 차에 이렇게 생각해 보면 속도는 조금 느려질지언정 삶의 방향이 조금씩 앞으로 나가게 되고, 결국은 멈추지 않게 된다.


 멈춰 있을때는 걷거나 뛰기가 쉽지 않지만, 걷다 보면 뛰고 싶은 날도 있고, 숨이 턱에 찰때까지 속도를 올릴 수 있는 날도 있다.

 인생을 장거리 마라톤처럼 생각하면서 멈추지 말고 속도를 조정하면서 가보면, 대부분이 걷기만 했던 삶이었을지라도 어느새 자신이 멀리 와 있다는 것을 돌아볼 수 있다.


 그 와중에 제 요가가 1년에 10%만 집중력 있게 수련되고 있어 무척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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