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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Dec 23. 2023

3.품위는 여유

<나는 시니어를 도둑질하지 않았다.>


 시니어모델 과정에 등록하고 2개월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첫 수업을 하고 왔다.

 이 세상이 청춘을 예찬하고 젊은이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만, 단 하나 나이 영역을 대신하긴 어렵다. 시니어 모델은 20대가 원한다고 도전할 수 없다. 그들에게 20년 이상의 세월이 더 지나야 비로소 주어지는 자리이다.


 내가 10대나 20대를 맞이할 때 미리 그 나이를 공부한 적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나의 자리가 있었고 주변 또래 모두 같은 위치와 같은 상황(공부, 학생)을 맞이했다.

 그러나 중년은 다르다. 우리는 모두 제 각각 다른 형태의 40대를 맞이한다. 시니어의 시작은 사람마다 참으로 다양한 모습일 수 있다. 같은 40대라고 해도 누구는 워킹맘인데 다른 사람은 아예 미혼 여성이다. 전혀 다른 중년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에게 맞는 시니어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사람마다 멋진 중년과 노년을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이 모델 공부는 내가 원하는 시니어를 찾기 위한 과정 중 하나다.


 시니어 모델 지원 자격은 40세 이상이지만, 이곳에서 나는 막내다.

회사에서는 고인물이라는 위치지만, 시니어 세계에서는 아주 베이비이다.

이 과정에 등록하기 전, 이런 시니어 모델의 영역조차 이렇게 시니어 중 가장 어린 사람들이 자리를 뺏는 건 아닐까 고민도 되고 죄송스러웠다. 마치 故박완서 선생님의 책 '도둑맞은 가난'처럼..

 그러나 개강 첫날 교수님의 말은 그런 오해를 무색하게 했다.


 시니어 모델은 그 모든 나이도 다 의미가 있다고.

 40대는 40대에 필요한 자리, 50대는 50대가 필요한 자리, 70.80대는 또한 그 나이에 필요한 자리가 다 다르다고.

 서로가 경쟁자라 시니어 중에 젊고 어린 사람이 독식하는 것이 아닌, 각자 나이에 맞는 자리가 있고 나이대별로 서로의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부자들이 가난의 영역조차 도둑질해 그들의 경험 스펙트럼을 늘리는 취미 중 하나로 여기는 것처럼.

'내가 시니어라는 나이대조차 도둑질하는 건 아닐까.' 하던 죄송스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각자 연령에 맞는 자신만의 나이대에 어울리는 시니어 아이덴티티를 찾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모두 같은 시니어 수업을 듣고 있지만, 각자 다른 지향점과 목표를 가지고 이 시니어모델이라는 것에 도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시니어모델의 세계는 특이하다. 나이는 단점이 아니라 기회가 된다. 오로지 그 나이의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특이한 분야다.

 시니어 연령대의 원숙함이나, 그 나이의 모습이 필요한 곳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장만으로는 어렵다. 물론 분장으로 되지만 굳이 시니어가 많은 세상에 그런 수고로울 일을 해야 할 곳은 여러 연령대를 한 얼굴로 연기해야 할 배우 영역 외엔 없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다양한 연령을 진정성 있게 소화하는 연기력이 있지 않은가? 이 시니어의 영역은 진짜 나이 든 얼굴과 진짜 진성성 있는 세월의 애티튜드가 필요하다.


 이 세상이 오로지 젊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희망을 걸고 싶다. 아직 나는 현역 위치로, 인생에서 가장 활발하고 바쁜 시기를 보내는 중년이지만, 잘 나간다고 오만 방자하지 않고 정통으로 나의 시니어 시기를 체감하게 됐을 때 외롭게 절망하고 싶지 않다. '나도 한때 잘 나갔었는데...'라며 회한에 빠지고 싶지 않다. 나는 늘 현역이고 싶다.

 그래서 시니어는 그에 맞는 자리가 어디에나 있으며 각 나이대 별로 어울리는 다양한 모습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다고 내가 쓸모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공부하고 찾아 나서기에 따라 늘 그 나이에 알맞은 자리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회사에서 아무리 내가 베테랑이 되어 주변에 도움을 나눠준다고 해도, 후배들은 "고인물들이 빠져야 우리들이 올라간다." 말을 서슴없이 한다. 가슴 깊이 얼음 칼이 박히는 것 같은 저릿한 기분을 느낀다. 나의 희생과 배려는 깡그리 잊고 그저 나이로 서열화 당하고 있다. 가끔 나도 속으로 '내가 나가고 니가 이 일을 다 하게 될 때 다시 한번 나의 고마움을 떠올리길 바란다.'라며 소심한 복수의 마음을 갖기도 한다.

회사에서는 나이가 강점이 아니라 오히려 위기이자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 나이대에 맞는 직급은 제한이 되어 있고 얼마 안 가 물러나야 함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시니어 모델 영역에서는 늙은 모습도, 고인물 같은 자리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나이 든 모습은 원숙미이며, 꼰대처럼 느껴지는 것은 노련미라고 달리 생각하면 된다. 일희일비했고 어설펐던 어린 나이를 벗어나 이제는 여유 있고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나는 허둥대며 시니어 나이대를 보내고 싶지 않다. 아주 멋지게 준비된 모습으로 여유 있고 품위를 지키며 이 나이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 각 나이별로 다양한 내 모습을 마주하며 행복하고 멋진 모습을 적극적으로 찾고 싶다.


 물론 마흔 살이나 쉰 살이라고 늘 현명하지는 않지만 10년 전, 20년 전의 자신과 비교하면 상당히 지혜롭고 여유로움을 가지게 된 것을 느낄 수 있다.

 세월 속의 시행착오는 나를 경솔하기보다 조금 더 너그럽게 기다리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게도 한다. (나는 아직 나이를 덜 먹어서 많이 너그러운 편은 아니다. 그러나 불과 5년 전과 비교해도 불같은 성격이 많이 죽었다.)


 나의 20대는 우아하지 않았다. 나의 30대는 고급스러움도 없었다.

 지금에서야 겨우 이 나이를 등에 없고 우아함과 고급스러운 느낌을 이해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월이 쌓여야 만날 수 있는 우아함이라면, 중년이 꺼려지기만 하겠는가?

 20대에 푸룻한 청춘이 아름답긴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우아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래도 우아함은 나이가 좀 있어야 도달 가능한 영역이다.

 

 나이라는 파도 위에 올라서서 현명하고 우아한 모습의 내가 되길 바라고 있다.

젊어서는 청춘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그 나이의 소중함을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외적인 아름다움이 예전만 못하기에 아우라를 더욱 챙겨야 하고 나를 적극 수용하며 이 나이를 최대한 즐기고 싶다. 서핑하듯 나이에 직접 올라타고 물결을 가르며 세월을 즐겨가고 싶다. 더 이상 수동적으로 젊음에만 심취해서는 행복하기 힘든 나이이다.

 아무 준비 없이 중년에 들어와 예전 같지 않다며 우울해하고 세월의 파도를 정통으로 맞아 물에 빠진 채 울고 싶지 않다.


 보통 우리의 스무 살, 대학에 가서 자기의 꿈을 다시 찾고 진로를 바꾸려고 하면 주변에서 모두 뜯어말린다. 이미 너무 늦었다고. 그것이 예체능계나 전문 직종이면 더욱 그렇다.(최근 본 드라마 '나빌레라'를 보고 더욱 절감하고 있다.) 사실 그전에는 꿈꿀 시간도 주지 않았으면서. 대학만 가면 다 될 것처럼 얘기했으면서. 대학 와서 꿈을 찾으면 현실을 보라며 어른들은 걱정하며 반대한다.


 마찬가지로 마흔이 되어 새로운 진로나 미래 계획을 고민하면 한심하게 여긴다. 이미 그 고민은 진작 젊을 때 끝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그러나 마흔이 되기 전 우리는 사회에 적응하고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바빴다. 세상이 정해놓은 숙제를 완료하느라 진.작.에. 미래 계획을 완벽하게 준비해 놓을 시간이 없었다. 그걸 고민할 여유와 현명함이 없어서 아직도 중년 이후 남은 인생의 목표가 뭔지 스스로 해답을 못 찾고 있다.


 어릴 때는 꿈을 꾸기엔 너무 어리다, 청년 때는 현실을 보라고 하더니, 중년이 되니 이젠 너무 늦었다고 틀에 가두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주변의 만류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어릴 때도, 청년 때도, 중년이나 노년 때도 너무 이르거나 늦은 건 없다. 세상은 그냥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늘 현실감각이 없다거나 너무 늦었다는 이유로 관성적인 만류를한다. 그들도 그 길을 아직 안 가봐서 될지 안 될지 객관적인 판단이 되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내가 먼저 그 길을 가보는 사람이 되면 된다.


 사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그렇게 도전할 용기가 없어서, 조금 더 도전하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꼽거나 남들도 튀지 말고 평범하게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인지 모르겠다.

 나는 오히려 세상이 말리니까 오히려 더욱 멈출 수 없겠다는 삐뚤어진 마음이 생길 정도다.

 이 나이에도 말리면 엇나가는 사춘기 청소년 같다.



 시니어과정 개강 첫날,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뒷좌석에 앉으신 할머니께서 내 머리가 회색인 것 보고 염색한 거냐 물어서 내 머리가 희어진 거라고 했더니 "어유~ 이쁘다. 어유~ 잘했다. 염색하지 마. 머리만 빠지고. 지금 머리가 참 보까시(그라데이션 일본말)가 되어서 이쁘다. 이뻐. 나도 이제 염색 안 하고 기다려야겠다."라고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다시금 늙음을 숨기기보다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품위는 여유에서 생긴다.

멋진 시니어란 세월을 가리기 급급한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이해하는 여유이다.

노년도 아름다울 수 있다. 노화를 가리기 위해 발버둥 치기보다 그 자체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신만의 매력을 찾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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