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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Jun 22. 2024

83. 채소의 계절이 왔지만 식중독이라니

<이 약은 공복에 드세요. 네? 장말요? 감사합니다.>


난 몸이 찬 편이라 생채소를 주의해서 먹고 있다. 특히 겨울에는 어쩔 수 없이 쪄서 먹거나 구워 먹어야 하는데 그게 상당히 귀찮다.

이런 나에게 생채소와 샐러드를 맘껏 먹을 수 있는 계절, 여름이 왔다.

여름에는 소음인도 매일매일 생채소와 샐러드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여름에는 차가운 채소를 먹고 체온이 떨어지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다.


그러나.

당분간 생채소도 조심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의사 선생님의 진단.(채소도 식중독의 위험이 있다니.)

나는 식.중.독.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전날 먹은 음식을 생각해 보면, 점심에는 한치 냉 메밀국수 / 저녁으로는 식빵 2조각과 소비뇽블랑을 먹었다.

여름에 해산물 냉국수는 식중독의 위험이 높다고 하는데, 더불어 저녁에 먹은 와인이 기름을 부었을지도. 아니면, 살짝 오래된 식빵이 원인이었나? 어쩌면 세 가지 모두가 약간의 균열을 일으키며 한 번에 폭발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밤새도록 변기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병가를 냈다. 고작 식중독으로.

40도 가까운 고열에서도 키보드를 붙들고 일하던 나다. 그러나 이건 인내와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변기 앞을 떠날 수가 없어서. 토를 하고 있는데 설사를 하고 싶은 애매하고 더러운 상황이 하루종일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하루 이상을 꼬박 기절하듯 잠을 잤다. 

수능치고 와서 이렇게 24시간 연속으로 잤던 기억이 난다. 보통은 허리가 아파서 이렇게 길게는 못 잔다.

아파서 자는데 온 피부가 이불에 닿는 것조차 따갑고 아팠다. 열이 펄펄 나서 추운데 피부가 아파 이불을 덮지도 못했다. 깨어있는 것이 너무 괴로워 잠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 고통을 이길 수 있는 건 잠 밖에 없었다.


전혀 식욕이 없었고 숨만 쉬어도 메슥거렸다. 

아주 잠시나마 입덧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생각하게 됐다. 친정어머니께서 나를 임신했을 때 10개월 내내 입덧을 하다가 아무것도 못 먹고 뼈가 앙상한 채로 출산을 하러 갔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 상태로 어떻게 그 몇 달을 견뎠을까? 나는 고작 하루도 이렇게 괴로운데.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주말이 왔다. 컨디션이 너무 엉망이었다. 1시간 정도 고민하며 멍하니 책상에 앉아서 침만 삼켰다. 아침에 골프레슨이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몸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의욕이나 힘도 없었다.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취소가 안되어 그냥 레슨을 받고 나왔다.


생각보다 땀을 흘리고 몸을 움직이니 의외로 컨디션이 괜찮아졌다.

몸이 조금 나을 징조가 있을 때 너무 누워있는 것보다 이렇게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점 이후로 몸은 아프지만 컨디션이 확연히 좋아져서 나름 활기차고 알찬 주말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루틴대로 요가도 하고 조금 살아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20대 때 대학 동창의 귀국 연주회가 있었다. 

나는 퇴근 후 바로 공연장으로 가게 되어 빈 속으로 갔다. 그날 점심도 굶었으니, 아침도 굶었고 마지막 식사는 아마 전날 어느쯤 이었을거다.

연주회를 마치고 혼자 돌아오면서 뭐라도 좀 먹어야겠다 싶어서 근처 편의점에 가서 김밥을 먹었다.

그 새벽 식중독에 걸려 응급실에 갔다. 그렇게 며칠간 병원에 입원했다. 

그때도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한동안 먹는 것에 대한 욕구가 뚝 떨어졌다.


이제 시작되는 여름이지만, 한동안 생채소를 멀리해야 한다.

이렇게 나의 여름 채소 시즌을 보내야 하다니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빨리 회복해서 생채소를 마음껏 먹겠다. 이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



다만 마음에 드는 점 하나.

빈 속 약복용을 허락받았다. 오히려 하루 금식을 내려주셨다.


아플 때는 약을 먹어야 되니 입맛이 없어도 뭐라도 억지로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것만큼 괴로운 게 없었다.

나는 공식적으로 굶어도 되는 것이다. 금식 중이니까.


너무 좋아.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심지어 물을 삼키지도 못한다.

먹고 싶을 때 먹고 굶고 싶으면 굶고, 식사 여부와 상관없이 언제든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으면 된다는 식중독 약.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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