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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열심히 살수록 아프더라

<잘 나갈수록 이상하게 세상을 더 미워하게 되네.>

by 전인미D

세상에 태어나 정당한 사회 일원이 되기 위해 우리는 사회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공부하고 자격을 획득하여 자신을 증명하고 세상에 기여해야 한다.

이 기본적인 것도 못하면 놈팽이, 한량이로 불리며 온전한 인간 취급도 못 받는다.

태어난 이상 사회적 인간이 되기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렇게 부모가 시키고 세상이 원하는 공부를 차근차근해가면 스펙 빵빵한 일꾼형 인간이 완성된다.


사회가 원하는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선 눈에 보이는 공부와 시험만 치기도 벅차다.

나를 알아갈 시간이 없고, 타인과의 관계, 도덕성 같은 걸 논하는 건 현실을 도피하려는 사회부적응자로 여겨질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상하게 성공한 어른이 되어갈수록 성숙한 마음이 없어진다.

성공 공식대로 걸어왔는데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이고 불행한 마음만 가득하다. 사회적 조건이 꽤 잘 형성되어 갈수록 세상을 더 미워하고 염세주의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약속한 공부와 자격을 갖춰야 함은 당연하다.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오는 공부는 필수다.

그러나 한 가지 빠트렸다.

우리가 사회적 쓸모를 행하기 위해서는 필히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혼자만 승승장구해서 다 잘 될 거면 이런 고민도 안 생겼다.


우리는 일의 성공과 효율만 배웠지 관계의 지혜나 타자 이해방법은 전혀 알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성취를 쟁취하는 능력 함양 외에 인간관계에 대한 비가시적인 공부는 각자에게 맡겨진 숙제로 남겨져있다.

그나마도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닌 상처를 받은 사람만이 이런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다들 지금 당장 세상의 발전에 도움 안될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서 공부하고 고찰할 시간을 내기 어렵다.


인간에 대한 이해력 부재, 인문적 사고 결핍, 과정을 무시한 성공, 결과만 중시했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로 인해 점점 아파지고 있다.

마음이 아프지 않아도 정신이 괴로움 속에서 헤매게 된다.


세상은 가시적인 쓸모와 비가시적인 관계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비가시적인 가치를 쫒는다는 게 어떻게 보면 현대사회에서는 사이비종교 혹은 근거 없는 맹신에나 빠져버린 시대착오적인(미친)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용도에 맞춰진 최적화 인간이 되기 위한 가시적이고 성과주의적인 행보는, 우리를 냉혹한 빈 껍데기로 만들고 있다.

빈 껍데기로 차갑게 살아서 행복하면 그래도 좋지만, 이상하게 우리는 물질적인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 불행의 감정은 도리어 커지고 있다.


잘나고 멋진 어른이 되었지만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서툴다. 관계의 서툶은 잠시의 불편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 미숙한 인간관계는 결국 나의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괴롭히게 된다.

나를 형성하는 건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사회적인 관계 역시 내 인생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우리는 사회적 책임을 다함과 동시에 나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배우는 두 시간의 밸런스가 필요하다.

물질가치를 쫓는 공부만 하다가, 결국은 전 국민이 번아웃과 우울 상태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더욱 자극적인 매체와 눈에 보이는 가벼운 유흥에만 집착하고 있다.


진득한 기다림도, 여유 있는 배려도 없다.

성취 반대는 실패, 1등 아니면 무의미, 너 대신 무조건 내가..라는 이분법으로 많은 것이 나뉘고 있다. 그 중간상태는 필요 없고 쓸모없게 여겨진 시대다.


다들 속도에 미쳐버렸고 폭발직전의 화를 품고 있다. 누구든 살짝만 자극하면 다들 극단적인 분노를 표출한다. 원인도 모르고 대상도 없다. 그냥 화를 내야 한다.

인간은 누구든, 어쩌면 자신을 포함해 모두 미움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본질적인 해결 방법은 없을까?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면서 동시에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조화로운 삶.

성공도 하고 현명하고 행복한 사람은 과연 현실세계에 존재하긴 할까?


나는 사회적으로 성공도 하고 싶고 지혜롭고 여유를 아는 사람도 되고 싶었다.

이런 상황이야 말로 자신을 알아가는 인문학과 철학적인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가 제시했던 공부만 했더니 더 괴롭고 바쁘기만 했다.

사실 학교공부 말고 다른 공부가 있는지도, 필요한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시키는 대로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았는데 별로 안 행복했다.

여유를 찾고 싶어서 요가를 공부했다.

더불어 내면의 지혜를 찾고 타인을 이해하는 사회적 관계를 위해 명리를 공부한다.


명리학에는 우리의 인생 매뉴얼인 사주팔자(4개의 기둥, 8글자의 기호학)가 들어있다.

이 기호학을 풀어가며 자기 인생의 미션을 이해할 수 있다.....지만 아직 이 기호를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는 중이다.

현실은 그냥 스트레스 가득한 사회인일 뿐이다.

누구보다 사회에서 이익 쟁취와 자본주의 경쟁 그 중심에서 달려왔기에 사람들의 정신이 상당히 위험해진 상태를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있고 직접 겪고 있다.

명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산에서 도 닦다 내려온 별천지 사람의 학문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 명리학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명리는 실용학문이다.)


우리에겐 자신을 알아갈 시간이 없었다. 허황된 탁상공론 대신, 영어단어 하나를 더 외우고 수학문제 하나를 더 풀었다.

물론 이건 중요하다. 사회가 약속한 기본 숙제며 이걸 잘 마친 사람에게 괜찮은 보상도 주어진다.


그렇게 관계의 방법론은 인간이 사회활동을 하면서 자동으로 익힐 거라고 배제했다.

인간관계론은 전공 필수가 아닌 교양과목 정도로 밀려나 버렸다. 인간학, 인문학은 굶어 죽는 비 인기 학문이 되었다.

하지만 관계의 유려함은 시간을 준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른이 된다고 다 잘하게 되는 건 아니며 오히려 더 못하게 됐다.

이 공부를 없애면서 세상이 얼마나 자본과 성공 외에 많은 것들을 무가치하게 여기게 됐는지.

물질이 넘쳐나도 공허함이 더욱 커진 세상이 되었다.


조선시대 학문은 인문학 베이스였다. 공자왈 맹자왈 해서 뭐 하나 싶었는데 타인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스스로 바로 서기 위해 인간학은 정말 중요한 공부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자신을 위한 비가시적인 숙제는 구도자 외에 아무도 관심이 없게 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속 결핍은 미디어의 소비로 풀어내고 있다.


마음이 허망하고 비어있는 느낌을 어디에서 채워야 할지 모른다. 자신의 욕망이나 바람을 깊이 들여다볼 줄도 모른다. 시각의 자극 외엔 어떤 것도 생각의 흐름을 바꾸기 어렵게 됐다.

몸은 바쁜데 마음은 정체되어 있는 느낌, 혹은 머리는 바쁜데 몸은 멈춰있는 상황.

사람들이 고장이 나고 있다.

극단적으로 성공만 추구하든지, 극단적으로 세상으로부터 회피하든지. 요새 청년들은 후자가 많아서 더욱 걱정이다.


타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인간이 싫어지는 문제 모두 인간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가시적인 성공 활동만을 감행해서이다.

물론 이것이 우리의 성장 동력이었다. 하지만 이젠 조금 속도를 늦춰서 자신을 포함한 사람 공부가 필요하다.

성공적인 세상은 결국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타인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더더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미워하지 않으려면 가까이에서 살펴보고 이해를 해야 한다.


나는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관계를 이해해보고 있다.

타인으로 인해 다친 순간 그냥 미워하는 건 제일 쉬운 일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이해는 어렵더라도 그러려니~~~ 해보고 싶다.

단단해지고 싶다.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동화 '잃어버린 영혼'을 읽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살아가며 영혼을 잃게 된다. 영혼이 움직이는 속도는 육체보다 아주 느리기 때문이다.

영원을 잃고 아픈 게 된 사람들은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 편안히 앉아서 잃어버린 영혼을 기다려야 한다.

주인공 얀도 바쁘게 살아가다 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영혼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오랜 시간 내내 영혼을 기다렸다.

그렇게 드디어 영혼이 그의 육체를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영혼을 잃어버리는 속도로 살지 않는다.


우리 모두 속도전으로 인해 자신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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