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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1세기 가장 필요한 자기 계발법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고 안 심은 데 안 난다

by 전인미D


명리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주위와 어떤 관계를 맺어가는지에 관련해서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사주에 이런 사회적 관계를 다루는 '십성'이라는 부분이 있다.


항상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만 고민하며 살아왔다면, 주위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잘 사는 것인가란 접근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로마에 여행을 가서 트레비 분수를 들리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동전을 던지며 성공, 부, 건강을 기도 한다. 평화와 행복을 기도하는 사람을 드물것이다. 누군가가 평화와 행복이 목표라면 비현실적인 망상에 빠져있다고 느껴진다. 현실적 생계는 어쩌고 저런 소리나 하고 있냐며 철부지라 여겨진다.


그렇게 이를 등한시한 우리는 사회적 관계에 상당히 미숙할 뿐만 아니라 다들 사람 때문에 불행하다고 한다.

소중한 가족과 나와 관계 맺는 사회적 존재들과 마찰하고 서로 상처를 입힌다.

관계에서 생긴 상처의 기억은 결국 타인을 혐오하게 된다. 그러다 이 모든 원인은 나 때문이라며 자신마저 미워하고 저버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해치는 사람도 있다.


인간 철학의 부재.

그럼 사회적 인간으로서 우리는 가시적인 소명(눈에 보이는 성공과 명예)과 비가시적인 관계(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어떻게 챙길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명리학 공부가 필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번아웃에 빠져 사회적 소명도, 주변의 관계도 모두 잃은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명리학을 공부하는 것은 내가 성공하고 부자가 되는 시점만을 목표로 하는 아니다.

언제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낼 수 있는지, 나의 사주 구성에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타인을 대하며 살아갈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은 언제 잘 풀리고, 건강이 회복되고, 언제쯤 사람들과 행복할 수 있을까하는 세속적 고민 속에서 우리는 늘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지금의 괴로움이 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사는 내내 불안하고 괴롭게 모든 시간을 견딜수는 없다. 지금의 괴로움에 끝이 있다는 희망으로 오늘을 공부하고 버텨낼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에게는 자기 계발의 필수로 명리학이 필요하다.

명리는 사회적으로 잘 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변 관계를 회복하는 밸런스 있는 삶을 향할 수 있게 하고

소명을 등지고 숨은 사람에게는 사회적인 역할을 깨닫고 일어나는 법과 다시 한번 스스로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21세기에 정말 필요한 자기 계발은 명리학 공부라고 생각한다.

요즘이야말로 더욱더 우리에게 나라는 본질과 타인의 관계에 대한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 이해를 하면 미울 일도 아플 일도 줄어들게 된다.(없진 않다.)

성과와 결과만 논할 때 인간의 서사는 사라져 있다. 결국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껍데기만 남아서는 행복을 느끼기가 어렵다.

사회적으로 잘 나가고 있어도 불안하고 괴롭다. 혹은 사회적으로 무능하고 도태된 존재가 되어 스스로 잠적하고 숨어 지내기도 한다.


인문학 공부의 부재로 자기에 대한 고찰은 없고 세상이 제시한 전형화된 공부만 기계적으로 해온 사람들은

철학적인 사고보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연결된 사회관이 아닌 갈라 치기와 양극화시키기, 양보 보다는 쟁취, 여유보다는 속도전을 중시한다.

1등 외 모든 것을 무쓸모하게 여기는 풍토.

이런 세상 속에 살면서 미치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멀쩡해 보여도 다들 반쯤 미쳐있다.


사회적인 쓸모와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고, 나의 성향을 이해하며 남과 비교하지 않은채 묵묵히 나만의 길을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명리학 공부를 통해 남들과 다르게 부여받은 나 자신의 사용 매뉴얼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에게 부여된 8개 글자를 이해하고 골고루 잘 쓰며 살기도 상당히 어렵다. 대체로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세상 보편적 기준에 맞추느라 강점을 등한시한 채 아예 자신의 사주를 제대로 못쓰는 경우도 많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요즘 행복한 사람은 보기가 참 드물다.

마음이 더없이 평화롭고 충만하다는 사람은 정신병자쯤이라고 생각된다. 행복하다는 사람을 보면 솔직히 사회 부적응자인가 싶기도 했다. 이 험난하고 빠른 세상에 행복이라니 이 속도전에서 뒤처지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이다.

너무 괴로워서 한때는 나도 미쳐버린 뒤 정신줄을 그냥 놓고 평화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의지를 잃은 평화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성과중심 사회에서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내느라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품고 예민할 수밖에 없다. 예민의 칼날을 나를 향하거나 타인을 향하고 있다.

인간을 철학하는 활동은 지금 당장 사회적 성공이나 성과를 즉각 보상하지 않으니 등한시하게 된다.

보이는 활동과 성과를 강조하는 세상에서 사람을 공부한다는 말은 참으로 아둔하고 바보 같아 보인다.

사람을 생각하는 철학적 사색이 부족하게 된 시대의 악순환이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이 아프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겪을 수도 있지만, 병원 치료 외에 달리 방법을 모른다. 근본적인 해결은 나를 알고 타인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수용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타인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수용할지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성과를 인정받기 위해 온갖 것들을 필터 없이 흡수한다. 그 안엔 좋은 결과도 있지만 나를 좀먹는 나쁜 상황도 포함되어 있다.

고래가 한 끼 식사를 위해 고기를 한 마리 한 마리 잡아먹지 않는다. 입을 열어 다량의 바닷물을 한 번에 들이키면 그 안에 물고기도 있고, 해양 쓰레기도 있다. 아주 소량의 해양 쓰레기가 거대한 고래 몸속에서 소화가 되지도 못하고 배출되지도 못해 고래를 병들게 한다.

그렇게 현대의 고래는 작은 페트병 하나 때문에 죽어간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많이 가질수록 거기 포함된 불량 쓰레기들이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래서 사람의 인생에는 적당히 필터링이 필요하다.

신중하게 적게 먹고 적게 가지는 것도 괜찮지만, 역시 대부분 사람들은 기회가 있을 때 저력을 다할 뿐이다. 좋은 기회 앞에서 신중하느라 작은 파이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오징어게임 2에서 '배우 공유'가 공원에서 노숙자들에게 스크래치 복권과 빵을 내밀며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많은 노숙인들은 지금 당장의 보상, 빵이 아니라 복권을 선택한다.


우리도 대부분 이런 선택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

저돌적인 선택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 결과가 실패일 때 우리는 많은 상처와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그렇다고 보수적으로만 살라는 것은 아니다.

큰 한방을 향해 갈 때는 아픔도 많다는 것을 알고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혹은 아직은 저력 있게 나갈 때가 아니라 공부하고 준비할 타이밍이면 그렇게 위험한 딜을 해서는 안된다. 재야에서 나를 더 다듬을 시간이다.


많은 것을 늘 잘 해내기 위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던 나는, 많은 기회와 성과를 가지게 되면서 더욱 나를 병들게 만들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행복과 성취를 모두 밸런스 있게 유지할 수 있을까?

남은 인생에 많은 수양이 필요할듯 하다.



그러나 주의 사항이 있다. 명리가 정해진 정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자신이 주체성을 갖고 그 기회를 실천하는 것에 많은 것들이 달려 있다.

운명학에서 운은 움직일 운이다. 운동이 없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한 유튜버 명리학 선생님이 했던 얘기가 있다.

사주가 정해져 있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는 그 상황에 대한 현명한 대답을 하셨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고 안 심은 데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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