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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팔자에도 없던 짓은 팔자에 들어있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했지만 가능성의 씨앗은 나에게 있다>

by 전인미D

운명 결정론이란 없다.

당연히 사주상담을 받는 사람들은 미래가 100% 정해져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만약 정해진 미래를 예견해 준다면 그것은 명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인생에 우리의 주체적 자유의지가 반영되는 것이 진짜 운명이다. 내 결정과 실행이 빠진 것이 내 인생이 될 수가 없다.


우리가 태어나며 부여받은 '명命'이라고 불리는 명식 여덟 개의 글자가 사주이다.(생년월일시 : 8자)

그리고 그 명식이 10년과 1년 단위의 흐름을 만나는 것이 '운運'이라고 불린다.(대운/세운)

이 두 가지를 합쳐 운명이라고 불린다.


타고난 생시가 고정되어 있다고 해서 운명이 정해져 있는 걸로 해석할 수는 없다.

명식(팔자) 안에 여러 가지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걸 갖기 위해 노력하고 움직이는 것은 나의 주체성이기 때문이다.

삶이 결정론이라면 우리는 이렇게 고뇌하며 살 필요가 없다.


어차피 노력해 봐야 안될 거, 혹은 노력 없이도 다 가질 거면 웃으며 때를 기다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도 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내게 올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불안한 것이다. 어떤 걸 놓치고 있을까 봐.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결과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해서.


우리는 운명이 결정되어 있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 내 손으로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어 한다.

그렇게 운명을 바라보는 시각이 희망 쪽을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의미가 있다.

절망과 무의미만 예견해서는 우리는 앞으로 갈 의미를 얻을 수 없다. 생의 의미를 내려놓는 것은 생의 유지를 내려놓게 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리 사주에는 여러 가지 방향과 가능성을 품고 있다.(의미 없는 명은 없다.)

그리고 지금의 대운과 세운의 흐름이 순조롭다면 고민할 필요 없이 도전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미 그렇다면 자기도 모르게 그걸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놓치고 있다면 그것을 위해 시작해 볼 때라고 조언을 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조언을 받지 않고 그냥 살다가도 갑자기 예기치 못한 일이 다가오기도 한다.

'팔자에도 없는 짓을 해버렸네.'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고 어떤 성과를 얻어낸 경험이 있다면 그건 팔자에도 없던 일은 아니다.


아직 사주 안에서 잠재력만 갖고 있던 명식은 대세운의 기운과 상호작용을 하며 유의미한 기회와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내 명식 안에 갖고 있을 때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가능성은 시간의 흐름 안에서 만나는 운의 기운과 충돌하거나 합화하면서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운명을 볼 때, 명식(명)만 보거나 대운/세운(운)의 흐름만을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나의 탄생으로 고정적으로 부여받은 명식에 세상 시간의 흐름과 우주적 에너지가 더해지며 나의 운명은 풍부해지는 것이다.

물론 어떤 시점에 만나는 사람(사주간의 충/합)의 영향, 사는 지역의 오행이 끼치는 영향도 무시하긴 힘들다.

그것이 기회일 때도 있고 위기로 다가올 때도 있다.


명과 운의 조화로운 조합을 통해서 우리는 가야 할 방향과 시점을 모색할 수 있다.

명과 운이 합쳐지며 삶 속에 전혀 없었던 방향이 나타나기도 하고 하던 일을 완전히 도약시킬 수도 있다.


2022년 임인(壬寅)년에 있었던 일이다.

16년차 그래픽 디자이너로 회사에 근무하는 내게 변화가 있어봐야 회사원의 소소한 이슈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해 서울 모대학에서 2학년 교과 과정의 브랜드디자인 강의 의뢰가 왔고, 우여곡절 끝에 1년간 시간강사 생활을 직장과 병행하게 되었다.(사실 학교에서는 계속 강의를 해주기 원했으나 직장생활과 병행하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세금 폭탄으로 인하여 강의는 1년으로 그만두었다.)


그해 임인세운은 내 월지 해수亥水(내게는 정인)와 인해합목이 되는 해였다.

월지 육합이 되는 글자가 대운이나 세운에서 들어올 때 그것을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트리거가 되기도 한다.(아직 임상 사례를 모으고 있는 단계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때 유의미한 사건들이 여럿 보인다.)


회사원이던 내가 팔자에도 없는 대학교 시간강사를 하다니.

그러나 이건 팔자에도 없는 일은 아니었다. 가능성의 씨앗이 내 원국에 있었고 운의 기회를 맞이하여 현실로 드러나, 내가 쟁취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나에게 강의 제의가 왔지만 내가 지원을 하지 않았더라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다.

혹은 나에게 석사학위가 없었다거나(그렇다면 제의도 오지 않았겠지만) 재직 중인 곳이 대기업이 아니었다면 여러 가지 상황에서 불발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나는 나에게 주어진 명을 중심으로 매년 운의 흐름을 타고 많은 기회를 맞닥뜨렸고, 노력해서 내 것으로 만들었던 것과 열심히 했음에도 결과가 그저 그렇게 흘러가 놓친 것들로 채워진 인생일 뿐이다.

내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도 어떤 흐름과 기회는 올 수 있다. 이건 불발이거나 고생길 두 가지로 나타났다.

그것을 내가 쟁취하는 것은 나의 사전 준비상태와 도전적인 선택뿐이다.

나에게는 학교에서 좋아할 만한 학위와 괜찮은 직장 그리고 오퍼에 따라 강사 지원서를 쓰겠다고 선택한 것 밖에 없다.

명에 따라 충분히 사전 세팅이 되어 있다면 운이 왔을 때 기회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명리학을 공부할 때가 아니라서 월지와 육합이 되는 세운의 기운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학교에서는 나를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해왔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내 계획과 다르게 운의 흐름은 나에게 다양한 항로를 제시한다.


명을 잘 활용하여 살아오고 있다면, 1년과 10년마다 나에게 어떤 합충에 따른 기회와 변화는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어려운 상황과 위기가 발생한다고 해도, 거기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게 된다.


대세운을 기반으로 내 명식의 흐름을 쭉 살펴보며 한 가지 느낀 게 있다.

힘들게 버텨낸 시간일수록 나에게 많은 성장과 기회를 주었다는 것을.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던 해에 나는 업무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루었던 기간이었다. 당연히 기구신 년이어야 하지만 지금 살펴보니 용신 대세운이었다. 즉 준비 없이 맞이한 용신년은 불발이 되기도 하고 고생길로 열리기도 한다.

불발보다는 차라리 고생길이 낫다. 적어도 그 고생을 통한 성취는 다음 대운에서야 결과를 맞이하게 해 준다.


어쩌면 힘든 챌린지가 이어지는 해는 위기가 아니라 좋은 신호탄이 되는 것은 아닐까.

미리 준비되었어야 할 능력이 아직 세팅되어 있지 않을 때 용신해에는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만들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것으로 만회할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그 영광은 용신해가 아니라 기구신 년에야 인지하며 쓸모 있게 꺼내먹었다. 여름철 모아놓은 도토리를 겨우내 먹으며 잘 버틸 수 있는 저장이 되었달까?


그러니까 용신 대세운이 온다고 무조건 행복하진 않을 수 있다는 거다. 행복과 평화의 감정은 용신 대세운과 상관없을 수도 있다. 용신 대세운은 우리 생의 미션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해라고 생각한다.

바쁘게 노력하는 시간은 즐기기가 어렵다. 즐거운 건 그다음 결과의 시간이다.

그러니 미션이 가득한 대세운에서 마냥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정확한 방향으로 타게팅하고 움직이니 마음이 안정적일 수는 있겠지만.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용신년은 더 탁월해지기 위한 수련의 시간들이었다. 겪어나갈 때는 힘들었지만 지나서 돌아보니 그랬다.

그런 시기들이 기구신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기구신 해에 내게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면 기회는 위기로 다가오거나 아무런 좋은 영향도 못주고 증발되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신해의 기회는 나를 포기하고 스쳐 지나가지 않았다.

나를 괴롭히고 때려서 성장시켰다.


해야 할 목적과 방향을 잃은 것이야 말로 큰 위기다.

너무 많은 과업 속에서 괴로워하는 건 오히려 그 기회를 통해 성장하는 중이다. 고생길은 내 운의 기운을 잘 쓰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좋은 기운이 나보고 더 달리라고 등 떠밀고 있는 거다. 극성맞은 치맛바람 엄마처럼 다 나 잘되라고 독려하는 기운이다.

그 효과는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때 나는 굉장히 크게 배웠고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시간들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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