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유럽생활 첫 1년은 무척 외로웠다. 아이의 친구 엄마들과 가끔 카페에 모여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지만 친구라고 생각할 만큼 친밀함을 느끼는 관계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어와 문화가 같은 한국인과도 이 나이에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내 가난한 영어로 외국인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한국인이 없는 이곳에서 외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체념했었다.
하지만 내게도 친구가 생겼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보듬어주고 위로해 주는 그런 친구. 그녀는 불가리아인이다. 그 가족도 우리처럼 남편의 일을 따라 이곳으로 이주했고 또 우리처럼 매일 국경을 넘어 등하교하는 몇 안 되는 가족들 중 하나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갖는 그 공감대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 수 있다. 아이에 대한 고민들을 털어놓고 공감하고 같이 해결책을 찾는 인연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녀의 예쁜 둘째 딸과 내 아이는 유치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이다. 아이 덕분에 그녀와 서서히 가까워지게 되었고 신기하게도 우리는 대화를 나눌수록 불가리아와 한국의 문화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이나 양육 태도, 겸손함, 비판적 사고를 비롯해 배려와 오지랖의 경계에 있는 그 친절함까지 한국의 것과 많이 닮아있다.
아이들에게 조금은 강압적인 태도(지양하지만..)부터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는 생각도 한국인들과 비슷하다. 보통 그녀가 나에게 호의를 베풀 때면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고마워’ 보다 ‘아이고, 괜찮아'가 먼저 튀어나오곤 한다. 이런 한국인의 습성을 알기라도 하듯 괜찮다는 말에도 그녀는 늘 몇 번을 더 권한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 가족을 위해 주재원 신분을 벗어나 이곳에 완전히 정착할 수 있도록 먼저 발 벗고 돕고 싶어 한다. 현지 회사의 주요 직책에 있는 남편의 인맥을 총 동원해 현지 일자리를 찾아주겠노라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얘기하라는 고마운 그녀이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처음 단 둘이 커피를 마셨을 때 마치 한국인 친구와 있는 것 같은 익숙함과 편안함에 놀랐다. 다른 엄마들과의 교류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동질감 같은 것이었는데 내가 여기 사람들과 마음 깊이 통하지 못했던 게 단지 언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그녀와 달리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하려면 머리를 거쳐 입으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내 개떡 같은 영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얼마 전 아이 생일 파티에 그녀는 나를 위한 꽃을 사 왔다. 그동안의 아이 친구들 생일파티에 늘 남편을 보내던 그녀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놀라웠는데 나를 위해 예쁜 꽃을 준비한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 크게 감동했다.
부모나 형제라는 지지 기반 없이 외로이 외국 생활을 해나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더없이 소중한 서포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급한 일로 학교에 아이 픽업을 갈 수 없을 때 아이들을 대신 픽업하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 아이를 맡기고 품앗이 육아를 하기도 한다. 가까운 곳에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늘 서로에게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며 꼭 안아준다.
이방인으로 겉돌기만 할 줄 알았던 내 유럽 생활이 그녀 덕분에 따뜻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