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헤어짐이 아닌 업무의 마지막 프로세스다.
"저.. 오전에 티 타임 요청드리려 합니다."
"회사 나가게?"
이렇게 퇴사 절차가 시작되었다.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사표를 가슴속에 품고 산다. 이 사표를 내가 내면 축하를 받고, 남이 내면 구조조정이라 부른다. 또 상사 관점에서는 뒤통수이고 본인 관점에서는 결단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축하받을 뒤통수 또는 결단을 한 것이다.
요즘엔 사직서가 따로 필요 없다. 모두 전자 시스템이 알아서 해준다. 따라서 사직서의 사유를 고심하고 어떻게 첫 문장을 시작할지의 고민도 없다. '이직의 의한 사직'이라는 무미건조한 한 단어가 6년 4개월의 회사 생활의 마지막 설명이다. 그럼에도 사직서는 쓰고 싶었다. 행동의 이유를 말로 표현하기에는 본인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통해 의지도 다지고 싶었다.
글로 쓴 사직서는 책상 안에 있다. 낼 수 없었고 낼 기회도 없었다. 관계는 딱 그만큼이었던 셈이다.
퇴사 소식은 약간의 소란을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나가느냐? 어디로 가느냐? 얼마 받고 가느냐? 가서 무슨 일 하느냐? 언제부터 가느냐?" 등 나도 알고 싶었던 사실을 그대로 물어본다. 그리고는 대부분 잘됐다고 축하해주며 격려한다. 나도 그랬다.
대부분 잘됐다고 축하해주며 격려한다. 나도 그랬다.
한편 이럴지도 모른다. '거기 힘들 텐데, 고용이 안정적일까?, 우리 회사도 이런 면에서는 좋다' 등... 나도 그랬고 주변도 그랬었던 것 같다. 내 상황을 위로하고 타인의 결정을 걱정했다. 그래야 마음이 위안이 되었다.
내 상황을 위로하고 타인의 결정을 걱정했다. 그래야 마음이 위안이 되었다.
나도 그랬다.
퇴사 처리 와중에 좋은 점이 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친하게 지낸 사람들과 허물없게 이야기할 수 있다. 또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 중에 딱 그만큼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변화는 삶의 정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출근 마지막 날은 일상적이면서 감정적이다. 평소 다름없는 시간에 일어나 하던 대로 하면 회사 앞이다. 차이는 하던 대로 하던 것들을 하면서 추억하게 된다는 것은 다르다. 사원증 찍고 건물에 들어가는 것이 이렇게 다른 느낌을 주는 것에 대해 놀랍다.
PC를 반납하고 사라지는 파일들을 보며 허무함마저 든다. 때론 얼굴 붉히며 작업한 것들인데 누군가의 클릭 몇 번에 먼지처럼 사라진다. 그 단순한 과정을 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참기 어렵다.
실제 퇴사는 평소 생각하던 퇴사의 모습과 감정선이 아니었다. 어쩌면 좀 더 인간적인 헤어짐의 과정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퇴사는 헤어짐이 아닌 업무의 마지막 프로세스다. 퇴사는 완료되었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스스로의 건투를 빈다.
퇴사는 헤어짐이 아닌 업무의 마지막 프로세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