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이 돼버린 신혼집의 시작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돈에 대한 아픈(?) 개인 기억을 꺼내려합니다. 전에 전단지 알바를 하다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경험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어쩌면 지금 드리는 이야기가 더욱 제게는 마음이 아픈 경험입니다.
2015년 5월 즈음, 저와 아내는 신혼집을 알아보려 다녔습니다. 워낙 둘 다 가난했던 처지라 모아놓은 돈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대기업을 다녔기 때문에, 대출이 용이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부동산에서는 원룸이나 고시텔(?)과 같은 곳을 추천해 주더군요. 아마 어리바리하게 들어오는 저희의 모습을 보면서, 단번에 돈 없는 냄새가 났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알아보던 중, 동대문의 한 아파트가 괜찮아 보였습니다. 실 평수는 12평 정도였는데, 그래도 방이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처갓집과도 가까웠으니, 임신 초기였던 아내의 상황과도 좋았습니다.
당시 아파트 전세가가 1억 7천만 원이었는데, 대출이 가능한 80%는 모두 받고 나머지는 축의금으로 충당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엄청 빠듯했지만 나름 아파트(?)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계약일에 일어났습니다.
집주인은 질권설정에 대해 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거래 당일에 거래를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질권설정이 은행이 질권에 설정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집주인에게는 더욱 안정적인 계약 환경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거의 대부분, 필수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집주인은 일방적으로 못하겠다고 밀어붙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세입자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심산이지요. 처음에 길을 잘 들이면(?), 뭐 해달라는 말이 없으니 말입니다.
당시 부동산에서 언쟁이 높아지면서, 임신한 아내는 잠깐 나가 있으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통사정을 했고, 부동산 사장님도 신혼이 시작하는데 너무 그러지 말라고 중재했죠.
그러나 돈은 냉정했습니다. 신혼이나 임신이라고 바뀔 상황은 아니었죠. 제가 한 수중에 2천만 원만 더 있었어도, 그런 수모는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저는 대기업 통신사에서, 나름 주요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도 저술하고, 방송국 인터뷰도 꽤 많이 나갔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자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전세 계약 사건으로 선명해졌습니다. 회사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돈이 없으면 나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당할 수 있다는 것을요.
이 일을 계기로 회사와 직업관 그리고 돈에 대해 많은 개념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임신한 아내와 함께, 신나는 출발을 하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대한 정도 완전히 떨어졌기 때문에, 재계약을 하지 않고 2년 뒤에 바로 나왔습니다. 계속 그 날의 찜찜한 기억이 저희 부부 주변을 맴돌았던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화려하고, 잘 나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알맹이는 없는 빈 껍데기라는 것을 잔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좋은 회사나 좋은 커리어에 대한 개념이 사라졌습니다. 다만 하나의 간단한 질문만 남게 됩니다. 이 질문 덕분에 제가 좀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자산은 얼마나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