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뭐먹지?
오후 5시경 주부들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은 대부분이 장바구니다. 물론 장바구니라고 칭해지는 종류들은 다양하다. 어렸을 적 장바구니의 대명사였던 말랑말랑한 고무 같은 재질의 그물망스러운 바구니는 아니지만 비닐 봉투, 종이 봉투, 또는 폴리 재질의 얇지만 견고한 개인용 가방, 에코백, 쓰레기 종량 봉투, 카트형 바구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재질과 형태가 어떻든 ‘오늘 저 분은 뭘 샀을까?’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간다. 오후 4시를 전후로 매일 똑같은 질문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오늘 뭐 먹지?”
그러다보니 그 시간에 상가 주변을 부지런히 오가는 그녀들의 장바구니에서 가끔은 메뉴의 힌트를 얻곤 한다. 장바구니가 그 날의 저녁 메뉴를 말해 주기에. 요리엔 재능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레파토리는 그 주기가 짧다. 그래서 남들은 뭐 먹고 사는지가 늘 궁금한 1인이다. 장바구니 훔쳐보기가 버릇처럼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왠만한 사람들 장바구니엔 그것이 꼭 담겨져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장보는 씬에는 그것이 꼭 들어간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좀처럼 살 일이 없을 뿐더러도 사더라도 어쩌~다 한 번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파다.
대파는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기본템이기에 그런걸까? 드라마 ‘도깨비’의 명장면 중 하나인 공유와 이동욱이 장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씬에서도 대파가 나온다. 그 때의 대파는 보통 대파와는 아우라가 좀 다르긴 했다. 마치 도깨비 김신의 허리춤에 차도 될 것 같은 중후한 초록 검 같다고나 할까? (대파가 그렇게 있어 보일 수도 있다니.) 아무튼 나의 경우 대파는 국, 찌개, 계란말이 정도에만 필요한 재료이다. 레시피의 기본인 파기름조차도 귀찮아서 생략한다. 국도 탕종류(곰탕 등)나 떡국에 고명처럼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파의 시큼한 맛 때문에 왠만해선 국엔 안 넣는게 좋다(고 엄마에게 배웠다.) 소고기 무국이나 콩나물국에도 대파를 넣는 경우도 있던데 그건 지방색일까, 아니면 가문의 전통? 그것도 아니면 개인의 취향? 한국요리 레시피엔 마늘과 대파가 거의 들어가는 거라서 대파가 장바구니의 대명사가 된 걸까?
나는 대파를 석 달에 한 번 정도 산다. 한 번 살 때 한 단을 사서 뿌리를 자르고 흙 묻은 부분을 벗기고 그런 다음 지퍼백에 들어갈 크기로 잘라서 냉동실에 넣고 두고두고 먹는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음식을 해서 먹길래 대파를 저리도 자주 사는지 이상해하는 내가 더 이상한 거겠지? 그래 뭘 먹을지가 늘 고민이자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갖게 된 이상반응이라고 해두자.
여기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갑자기 대파가 궁금해져서 서치에 들어갔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장 봐야는데...)
대파는 뿌리부터 잎, 줄기까지 버릴 것 하나 없단다. (난 뿌리도 떼고 퍼런 잎도 다 잘라내는데 그동안 일용할 양식을 다 버린 거네요) 대파는 활용도가 높은 향신 채소 중 하나로 면역력 강화와 체내 콜레스테롤 조절에 효과적이라고 하니 꼭 먹어줘야 하는 단골 채소가 맞긴 맞나 보다. 대파의 주요 산지로는 전남 진도, 신안, 강원 평창, 경기 남양주, 고양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수요가 많아서 재배하는 곳들도 많다고. 하긴 크고 작은 시골 텃밭에도 대파는 기본인데다 아파트에서 조차도 화분에 대파를 꽂아두고 올라오는 잎을 잘라 먹기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대파를 경홀히 여긴 건 나 뿐인 듯.
어렸을 때 밥상에서의 우리 엄마 단골 멘트는 ‘파를 많이 먹으면 머리가 영리해지고 피부가 하얘진다’는 거였는데 조사 결과 그건 파를 먹이기 위한 엄마표 정보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예뻐지기를 포기하고 파만 골라내고 먹었던 버릇이 백 세까지 갈 것 같은데 이 또한 유전 및 환경적 영향인 것이 우리 엄마도 파를 안 드신다는 거다. 그러면서 왜 우리에겐 그렇게 먹이려고 하신 건지. 엄마 말처럼 머리가 좋아지는 지는 모르겠지만 건강엔 좋은 걸로.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어 우리나라에선 적어도 통일신라시대부터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길고도 깊은 역사를 가진 대파의 역사와 전통으로 오늘의 조사 끝!
저녁 메뉴 고민하다 너무 멀리 갔다. 저녁 식사 시간이 코 앞이다. 오늘은 대파에 대해 알았으니 저녁은 대파가 들어간 음식으로다가 해야겠다. 바로 바로 바로 계란말이. 대파와 고기를 꼬지에 끼워 부침가루와 계란옷을 입힌 산적이 눈에 선하지만 그럼 왠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것 같아서 오늘은 대파 듬뿍 넣은 계란말이로 김이랑 먹어야겠다. 오늘 집으로 가는 당신의 장바구니엔 무엇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