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 Lapres midi Sep 20. 2023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살은 덤이라니요

내 생애 첫 다이어트를 시작하다 


지금까지 내  체형의 변화는 둘 중 하나였다. 일자이거나 항아리거나. 항아리형이었던 시절은 고 3때와  임신때 그리고 현재다. 고3때 찐 살은 대학교 1학년때까지 계속됐는데 학교 앞 먹자골목의 식당들은 나를 살 찌우기에 너무나 완벽한 조합이었다. 오늘날의 핫플과도 같았던 그 곳에선 맛없는 집 고르는 게 더 어렵다.(아! 그리워라~) 나는 그때까지 내가 선천적으로 마른 체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대착각이었음을 알게 됐다. 동글동글한 데다 음식 남기는 법이 없다고 별명도 '동글이'였다.(L사 청소기 이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동기들이고 선배들이고 잘 먹는다고 예뻐해 주는 데 다이어트라니.  그렇게 치고 올라간 몸무게가 어느 날 주가 하락하듯 내려갔다. 엄마랑 싸웠고, 용돈이 떨어졌고, 그래서 하루에 컵라면 한 개와 우유 한 개로 일주일을 살게 되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반 강제적 다이어트를 했던 것. 아침마다 잘 차려진 밥상의 유혹이 컸지만 자존심 때문에 식사를 거부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버티니 위장이 작아졌고 작아진 위장은 음식을 소량만 받아들였다. 엄마와의 일주일 냉전은  '한달 만에 13킬로 감량'의 효과를 가져왔다. 맘먹고 한 다이어트였다면 불가능했을 텐데  자존심이 의지를 이긴 셈이다. 그 후로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가족들 간의 갈등이 생기면 입맛이 떨어졌고 입맛이 떨어지면 며칠이고 굶는 게 일이었던 나는 굳이 다이어트가 필요 없었다. 


그런 내가 지금 다이어트 중이다. 자의로 하는 첫 다이어트다. 참고로 내 나이는 오십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럼 지금까지 다이어트를 안 해도 될 만큼의 날씬한 몸매였다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단연코 No다. 그럼 여태 다이어트를 할 만큼 살이 쪄 본 적이 없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No! 다.  유전적 영향으로 마른 체형의 일자 몸매를 가지고 태어났을 뿐이지 다이어트를 안해도 되는 아름다운 몸매와는 거리가 사뭇 멀다.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와야 하는 그런 몸이 아니고 가슴 허리 배가 딱히 구분이 안 되는 체형이랄까? 발달 과정에서 몸무게는 늘 평균 미달이었고 영덕게를 연상케 하는 팔다리만 긴 몸, 2킬로를 찌우는 데 2년 걸렸는데 한 번 아프고 나면 2주 만에도 2킬로는 그냥 빠지는 영양학적으로도 효율적이지 못한 몸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기를 써도 200그램조차  빼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 몸무게를 밝힐 수는 없지만 만삭 때 몸무게를 넘어섰다. 그러고 보니 몸매도 만삭 때 몸과 비슷한 듯하다.  이 모든 이유를 호르몬에게만 돌리면 걔도 좀 억울하겠지만 호르몬의 영향이 없지 않다. 아니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단다.  여성 호르몬이 부족해지면 지방 분해력이 떨어져서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난다고 한다. 특히 뱃살 중심으로 살이 찌는데 여성의 몸은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몸에 지방을 축적하기 때문에 40세 이후, 특히 갱년기에 체중이 증가하는 건  당연한 이치라고.


체지방도 근육량도 제로에 가까워 오히려 살을 좀 찌워야 근육도 만들 수 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을 만큼 지금은 살이 쪘고 살이 찐 계기의 8할은 호르몬 때문이라니. 7년 전 자궁에 문제가 있어서 시술을 하고 난 후 폐경과 비슷한 증상들이 나타나면서 살이 급격하게 찐 적이 있다. 호르몬 부작용이라고 했다. 1년 반이 지나서야 겨우 안정모드로 돌아갔는데 내 몸은 또다시 호르몬 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식생활은 변함이 없는데, 아니 오히려 안 하던 운동(수영과 필라테스)까지 하고 있는데 살이 쪘다. 처음엔 다들 근육이 생기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오십견이 왔고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몸무게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다. 지층 쌓이듯 쌓여가는 내장 지방(몇몇 부위에만 쌓이는 건 뭔데). 모든 옷이 작아져서 새로 사야 했고 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이즈는 한 단계씩 늘어났다. 가족들도 이젠 한 마디씩 한다. 

“이젠 살 좀 빼야겠다. 심각해보여” 


내 살들의 출처를 알게 된 건 부인과 질료를 받고 나서였다. 갱년기로 불면증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계속 돼 병원 갔는데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난 후 의사 선생님이 맨 처음 하신 말씀.

“요즘 살 좀 찌셨죠? 한 5kg? 정도”

“네?... 네!”

이 분은 의사인가 점쟁이인가. 어떻게 아셨지?  

“갱년기 살이에요. 자궁을 둘러싼 지방이 급속도로 두꺼워지면서 그럴 수 있어요. 배도 나오고. 이런 살은 잘 빠지지도 않아요. 호르몬 때문이죠”

선생님은 그저 팩트를 말씀하신 것뿐인데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뼈를 때렸다.

‘배도... 나오고... 잘... 빠지지도 않아요.... 호르몬... 때문이에요...’

호르몬이 내게 또 저주를 건 것이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호르몬 너마저.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는 콜레스테롤과 당뇨까지 레드카드를 받았다. (이 또한 호르몬 감소때문일 수 있단다) 이런 사연을 계기로 생에 첫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이제 시작 단계. 다이어트 계획이라고 해봤자 이 방면에 지식이 별로 없는 나로썬 최대한의 소식과 운동이 전부이지만 5kg 감량이 1차 목표다. 내 나이에 소식은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무기력은 우울과 분노로 이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호르몬의 저주를 풀어야 한다. 나는 나를 지켜야 한다.  내 건강과 나의 몸을.  매일 5km 이상 걷거나 달리기. 지금은 이게 최선이지만 지고 싶지 않다. 이왕 시작한 것 어떻게 해서든 성공담까지 쓸 수 있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으련다.   

  

* 내장지방은 피하지방과는 달리 혈액으로 흡수되어 혈중 지질의 형태로 작용하게 되므로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 질환 등을 유발한다. 문제는 갱년기가 되면 지방 분해력이 떨어져 내장 지방이 쉽게 쌓인다.

이현숙 작가의 <갱년기 직접 겪어봤어?> 


이전 10화 당신은 심각한 갱년기 상태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