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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Lapres midi Oct 10. 2023

무모한 도전은 한 번으로 족하다

전동 자전거 후기


100세 시대에서 모험과 도전은 더 이상 젊은이들의 상징이 아니게 됐다. 평생 공부를 지향하는 세대를 살아가면서 평균 70대 연령의 어르신들이 무거운 DSLR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다니시고, 창문만한 캔버스에 해바라기밭을 그리시는(그리는 내내 서서 그려야 하는 사이즈) 것을 보는 건 더 이상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남편이 수영장을 다녀올 때마다 수영장엔 할머니가 제일 많다고. 결국 평영의 벽을 넘지 못한 나로선 그분들이 무척이나 대단해 보인다. 이름 석 자 쓰지 못했던 분들이 그림책을 낼 수 있는 시대인데 이제 겨우 반백에서 ‘나는 못한다’라는 말은 왠지 모른 부끄러움을 동반한다. 솔직히 했던 일들도 ‘잠시’가 ‘장기’로 되면서 못하게 된 일들이 수두룩인데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맘처럼 쉽지 않다.


집에서 책방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다. 날씨만 좋으면 걸어 다니기 좋은 거리다. 그런데 그 거리를 주로 차를 끌고 다닌다면 욕을 먹을 소지가 크지만 어쩔 수 없는 날이 많다. (늘 짐이 있어서라고 나름의 합리적 이유를 장착하고 있음) 이 때 누군가 자전거를 추천할지 모르겠다. 자전거는 이미 도전해봤으나 걷는 게 훨씬 쉽다는 걸 진즉에 깨달았다. 집과 책방에 일직선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을 깎아 만든 동네인지라 평지가 아니다. 한 고개를 넘는 기분으로 가야한다. 안그래도 바구니 달린 자전거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코로나가 한창일 때 꿈에 그리던 자전거를 한 대 구입 했었다. 그리고 어느 봄 날,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 갔다가 오랜 로망이 5분만에 산산조각 난 일이 있었다. 로망은 로망으로 남겨뒀어야 했다. 일단 20년 동안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차로만 다니던 길들이라 경사를 미처 생각지 못했고 오르막길에서 자전거 기어를 바꾸는 방법을 몰랐다. 봄바람에 땀을 뻘뻘 흘리며 학원에 다녀온 뒤로 동네에서 자전거로 다니는 동선은 이미정해졌다. 그게 어디든 평지로만 이어진 데까지. (그래서 나의 자전거는 이제 딸아이가 탄다.)     


그런데 요즘 거리에 널린 자전거들을 본다. 색깔도 가지가지.  파랑 노랑 연두.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모습은 환경미화적 측면에선 영 아니지만 이용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남편도 이용해보고 오더니 나더러 출퇴근하기에 좋겠다고 했다. 전동으로 가는 거라서 오르막길에서도 하나도 안 힘들다고. 솔깃했다. 매번 차를 끌고 다니는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건강을 위해서라도 자전거를 타는 게 낫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횡단보도에서 신호 바뀌기를 기다리다가 덩그러니 서 있는 자전거를 유심히 바라봤다. 3회 무료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럼 세 번은 그냥 시험상으로 타봐도 되는 거 아닐까? 자전거에게 다가갔다. 꿈쩍도 안 했다. 얘를 어떻게 움직인담? 스마트폰을 갖다 대니 앱으로 연결됐다. 설치하란다.

 '에잇! 설치하면 로그인해야하고 로그인 하려면 회원가입도 해야 잖아.' 

그 시간에 걸어가겠다 싶어 포기했다. 한 두 번만 타볼 건데 회원가입까지... 그렇게 돌아서고 며칠 후 어차피 3초 회원가입시대인데 이게 뭐라고. 그래서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했다.  

'자 그럼 타볼까?' 

하지만 자전거는 여전히 꿈쩍도 안 한다. 사람들 막 지나다니는데 교차로에서 자전거와 길게 씨름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게 로그인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이번엔 결제방법을 등록하란다. 

'3회는 무료라더니  뭔 말이지? 발행된 쿠폰으로 결제하는 거 아녔어?' 

갈수록 태산이다. 그래서 포기하고 걸어서 집으로 갔다. 그리고 집에서 카드를 등록했다. 다음 날. 앱을 사용해서 꿈적도 않던 자전거의 잠금 상태를 풀었다. 오호! 그런데 이건 너도나도 이용하는 공용 자전거라서 그런걸까? 의자가 높다.(최대한 낮게 해도 높다). 남녀 전용이 따로 있는 걸까?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다. 이왕 도전한 거 끝까지 가보자 싶어서 자전거에 올라탔다. 하지만 중심 잡기부터 실패. 자전거 무게를 감당 못해서 몇 번을 넘어질 뻔 했다. 그래도 오늘은 내가 타고야 만다는 오기가 생겼고 몇 번 뒤뚱하긴 했지만 페달을 밟기까지 성공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나는 페달을 살짝 밟았을 뿐인데 자전거가 앞으로 쑥 튀어 나간다.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잡아 내리막길에서 구를 뻔 한 위기는 간신히 모면했는데 그 때부터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이걸 계속 타야 할까? 집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자전거를 못 타는 것도 아니고 운전도 10년 이상을 했는데 이걸 못 탄다니. 그것들과는 별개의 능력인 걸까? 숨을 고르고 다시 도전해봤다. 3미터 갔나? 그것도 지그재그로. 10분 무료라는데 이러다가는 시간이 오버될 듯했다. 누가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여기에 세워두고 그냥 갈까 하다가 ‘오늘 쿠폰 세 장 다 쓰지 뭐’ . 오기가 호기로 변했다. 어찌어찌하여 아파트 앞까지 도착했고 한참을 헤맨 끝에 결제까지 마쳤다. 2600원 카드 결제. 왜냐고? 쿠폰은 1회 1장 사용이었기 때문이다. 20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를 30분 넘게 자전거로 낑낑댔고 마을버스 요금보다 더 비싼 돈으로 힘들게 집까지 간 셈이다. 한 번 타보라고 한 남편에게 온갖 짜증을 쏟아냈다. 힘은 힘대로 들고 돈은 돈대로 들고 이게 뭐냐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무서워서 혼났다는 거. 이렇게 빠르다는 걸 왜 미리 얘기 안 했냐며. 

사실 ‘고속 공포증’이 있어서 뭐든 가속이 붙을 때면 나도 모르게 얼어붙는데 자전거 패달 한 번 밟고 3미터를 쑥 나갔을 때부터 내 심장은 더 이상 내 심장이 아니었다. 집에 가는 내내 숨 한 번 제대로 못 쉬었던 것 같다. 내가 다치든 누군가를 다치게 하든 사달이 나도 제대로 날 것 같은 기분으로, 그렇다고 포기도 못한 채 책방에서 집까지 모험 아닌 모험을 강행한 것이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는데 다리가 풀리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뻔했다.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다시는 안 타겠다는 결심이 교차하며.       


자전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도 이젠 눈길도 안 준다. 아무리 모험과 도전이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람 나름. 무모한 모험과 도전은 수명은 단축시킬 수도 있다. 아니 내 생명이 어떻게 되는 건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가끔 전동 씽씽이를 타고 순식간에 쌩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쫄아 붙는 난데 전동 자전거를 너무 얕본 건 아닌지. 전동 자전거는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한 것 같다. 한 번 타봤다는 데 의의를 두기로 한다. 그리고 편리성은 있을지 모르나 여기저기 방치된 자전거와 씽씽이들로 환경미화를 해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못 타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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