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로부터 자유로워진 꿈같은 4박 5일
남편과 아이가 4박 5일의 일정으로 여행을 갔다. 늦은 여름 휴가다. 그와 동시에 나 또한 아이를 낳은 이후 처음으로 4박 5일이란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됐다. 휴가다운 휴가다. 혼자 남겨질 내가 외롭거나 무서울까 봐 약간의 오버를 보탠 걱정을 남기고 간 두 사람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번 4박 5일은 내가 너무나 기다리고 기대했던 시간이다. 이 휴가가 더 특별한 것은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것들이 많은 여행지, 그래서 더 피로해지는 공간이 아니라 이미 익숙하고 편안한 내 집과 책방에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휴가의 최고 장점은 4박 5일동안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곁에 있으면 어떻게든 신경을 쓰게 돼 있다. 내 맘대로 한다고 해도 알고 보면 내 맘이 아니다. 내 행동(과 말)은 나 자신을 비롯, 타자의 판단, 지적, 요구, 평가 등을 신경 쓴 복잡하고도 미묘한 결과물일 뿐이다. 어른이 되면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알았는데 어른이 될수록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도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더 없다는 걸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시간은 타자의 평가, 요구, 판단, 지적(잔소리)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는 시간이며 오롯이 나로 사는 시간이 되리라. 나는 최선을 다하여 휴가를 즐기고 있고 계속 즐길 것이다. 눈을 떴을 때 괴담의 주인공 같은 딸(영화 ‘링;’에서 나올 법한 모습이다), 가위라도 눌리다 깬 표정으로 폰을 보며 양치를 하는 좀비 같은 딸의 꼬라지를 보며 깜짝 깜짝 놀라지 않아도 되니 이 얼마나 평온한 아침인가. 운동을 마치고 샤워 후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를 여유롭게 먹는다. 똑같은 일상인데 마음 상태가 다르니 매일 먹던 맛도 다르게 느껴질 정도다. 출근 길엔 꽃집 사장님의 피드를 보고 차를 돌렸다. 노란 장미 한 송이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나를 위해 꽃 하나 사는 것조차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이번 주는 아이 간식비를 아끼게 됐으니 이 정도는 사치해도 되겠다 싶었다. 꽃을 들고 출근하는 여자. 누군가의 고백을 받은 것도 아닌데 신난다. 책방 공기마저 달콤해진 것 같다. 그래서 독서모임 책을 전달할 때도 선물 받은 꽃 하나를 붙여서 줬다. 내가 그랬듯 그녀도 기분이 좋아졌음 좋겠다는 마음으로.
더욱 신기한 건 어제 오늘 내가 갱년기 아줌마라는 게 전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 점이다. 솔직히 본격적인 갱년기에 들어서면서 가족들의 눈치가 보였었다. 나의 이상 증후들이 가족들에게 불편함이나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왠만하면 티내고 싶지 않았는데 사춘기 아이들이 일부러 티를 팍팍 내는 게 아닌 것처럼 갱년기도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아줌마로 보여지는 것 같아 더 신경이 쓰였다. 예민한 사춘기 딸에게는 부모의 존재감이 더 크게 다가갈 텐데, 예쁘고 젊고 교양있는 엄마여도 시원찮을 판에 무기력하고 무능한 엄마의 모습으로 비쳐지는 게 좋을리 없겠지 싶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엔 상당히 외모지상주의를 갖고 있는 서씨 집안 내력으로 봤을 때 나의 갱년기는 반감을 살 수 있기에 충분했다. (무너지는 몸매, 자글자글한 주름, 듬성듬성한 흰머리, 기운없고 생기없는 눈빛 등) 비단 외적인 것 뿐이겠는가. 마음의 상태로 따지면 더더욱 심각한 아내이고 엄마인데. 그래서인지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이미 치유 받고 있는 기분이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평화가 찾아왔다. 이렇게 한 발 떨어지고 마음에 안정이 생기니 가족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곁에 없는데 더 잘 보였다. 딸의 방 꼴을 보면서도(필요한 짐만 챙겨 떠나고 남겨진 그녀의 방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를 이해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그럴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라니. 평소에도 내가 이런 태도와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봤다면 내 입에서 거친 말들이 짜증섞인 궁시렁이 안 나왔을텐데. 한숨이 나올지언정 곁에서 가만히 바라봐줄 수 있을텐데.
사춘기, 갱년기... 이런 말들이 인생의 면죄부가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인생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시기이기에 좀 더 관대한 태도로 바라봐준다면 흔들리다가도 멈출 수 있으며 방황하다가도 돌아올 수 있고, 견디고 버텨보겠다는 용기가 생길 것이다. 비록 4박 5일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 시기에 이르면 누구나 그렇듯) 에너지 고갈로 좁아졌던 시야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충분히, 최대한 누릴 것이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무엇을 함으로서가 아니라 (싫어도 해야만 했던) 무엇도 하지 않음으로. 그래서 충분한 에너지를 채워 그들을 만나고 싶다.(또다시 방전될지라도) 그런 의미에서 이번 휴가는 내게 너무도 중요하고도 귀하다. 그 어느 여행지보다 신나고 자유롭고 의미가 있다. 나로 오롯이 존재하는 마이홈에서의 4박 5일의 쉼. 그 쉼이 참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