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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Lapres midi Oct 17. 2023

그림자 뒤엔 빛이 있다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아이가 잘 지내는 법

사춘기와 갱년기의 만남. 예상되는 삶은 그저 먹먹한, 구름 잔뜩 낀, 그러다 이따금 천둥 번개와 함께 비바람 몰아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이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을까 지혜를 구하기보다 어떻게 이 시기를 피할 수 있을까에만 몰두했다. 감당 안 되는 건 딸이나 엄마나 마찬가지.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호르몬 vs 호르몬의 싸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남편과의 갈등과 불화도 이제 막 수그러들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자식 문제라니. 비겁하게 도망가려고만 했다. 하지만 피할 길도 주신다고... 스스로 다스릴 수 없는 걸 아신 게지.

갱년기와 함께 찾아온 공황장애로 약의 도움을 받으면서 정신없이 몰아치던 롤러코스터에서 이제 막 내려온 상태고 약간의 현기증과 울렁거림은 있어도 죽을 만큼의 공포는 아니다. 이렇게라도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된 더 큰 이유는 나만의 지분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 나만의 일이라는 지분이 나를 버티게 한다.



한때는 외동인 아이를 보면서 마음 한편에 이상한 무거움이 존재했었다. 딸 하나도 벅찬 게 현실이지만 정말 이게 맞을까를 얼마나 고민했는지. 부모의 부재 후의 시간을 외롭게 홀로 견뎌내야 하는 미래에 대한 걱정부터 시작해서 엄마로서 가질 수 있는 불안이란 불안은 다 떠안고 있었다. 사춘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그녀의 사춘기를 걱정하던 엄마였다. 아이에게 이상한 기미만 보여도 엄살부터 떨었다.

“외동들은 비교적 얌전하게 지나간대요”

“그래도 하나잖아요. 둘셋도 키우는 집 있는데요”

“사춘기라고 다 별스럽지는 않아요”

엄살을 늘어놓는 나를 향한 지인들의 위로이자 격려였다. ‘아이가 알아서 자라줘도 시원찮은 엄만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것 같다. 독재에서 방임으로 또 방임에서 독재로 극과 극을 오가는 이상한 엄마라는 자책감과 함께. 하지만 내가 걱정한다고 그만큼 현실이 나아지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나의 내일은 오직 신만이 안다. 이제부터 걱정과 불안의 시간을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내가 잘하는 일로 채워보기로 했다. 아이에게 속내를 다 드러내는 해파리형 엄마인지라 불안과 분노에서 왔다 갔다 하느니 차라리 거리를 두고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서로의 정신 건강에 낫지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일에 집중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한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 나는 책방으로 출근한다. 아침 햇살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작은 공간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나는 또 다른 내가 된다. 더 이상 까칠하고 우울한 갱년기 아줌마가 아니다. 이 공간에서 책과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나의 딸처럼 얄궂은 사춘기 소녀가 되기도 하고 이제 막 실연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 아름다운 청춘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황혼에도 열정을 잃지 않은 귀여운 할머니가 되기도 한다. 기분이 아닌 내가 바뀌는 마법의 공간인 것이다.     


그리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1시간씩 걷는 것이 갱년기에 좋다는 것을 배운 후 운동만큼은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 아침도 운동을 다녀오는 중 가을 햇살이 만든 나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림자. 나는 그동안 아이의 사춘기와 나의 갱년기를 그림자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존재한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다. 그렇기에 그림자에 괜히 위축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가 어둡다고? 그건 그만큼 빛이 강하다는 의미일 것이며 빛이 있는 한 길을 잃더라도 가야 할 길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는 뜻이다.



이제 곧 엄마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저녁과 간식을 챙겨야 한 테다. 이유 모를 반항의 눈빛과 짜증 난 말투에 직면해야 할 테다. 하지만 이젠 겁부터 먹지 않기로 한다. 호르몬에 적응하는 시간은 보통 2~3년이 걸린다고 한다. 사춘기도 갱년기도 우리 몸이 호르몬에 적응하는 시간일 뿐이다. 어차피 거쳐가야 하고 지나가야 하는 길이기에 잘 지나가 보기로 한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잘 지낼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림자를 만들어준 빛이 있기에 서로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갱년기에 자신의 마음의 문을
어떻게 열고 닫느냐에 따라서
남은 인생이 좁아질 수도 있고
풍요로워질 수도 있다.  
...
갱년기는 노화가 아니라
더 깊어지는 시간이다”.
<갱년기 직접 겪어 봤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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