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피아리 Nov 15. 2024

뇌경색이 아니라 뇌종양이라니?

"뇌경색이라고? 그게 뭐야?"

아니길 바랐지만 그녀의 뇌 CT결과에 문제가 생겼다.

건강검진센터에서는 엄마에게 뇌경색이 의심되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의 소견을 전했다.


"검진센터에서 서울 S병원 신경과 교수님을 소개해줘서 예약 잡아놨어. 그래도 엄마는 괜찮은 편이야. 보통 뇌경색이 오면 마비가 오거나 쓰러지는데 엄마 정도면 멀쩡하잖아? 치료받으면 나아질 거야."

일요일 아침 엄마는 전주 본가에서 김밥을 싸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이제는 확연히 티가 날 정도로 어눌해진 말투였지만 엄마에게 불안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웬만하면 가족들에게 내색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회사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퇴근하고 난 다음에는 아내이자 엄마이자 혹은 딸이거나 며느리의 역할로 돌아가 저녁을 차리거나 밑반찬을 만들었고, 주말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대청소를 하고 아침을 차린 뒤 외할머니가 있는 요양원에 갔다. 가끔 나의 친할머니의 호출이 있을 때면 시댁에 가서 김장을 돕거나 농사일을 도왔다. 서울로 발령이 난 이후에는 매주 금요일 저녁 전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도 일과에 추가되었다.


엄마가 입을 꾹 닫고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엄마가 말하지 않았던 가장으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의 그녀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엄마의 신변정리를 하면서 그리고 그녀가 떠난 뒤 주변인들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자신이 흔들리면 우리 가족 전체가 흔들릴 것을 알았기에, 힘들다는 얘기조차 하지 못하고 엄마 혼자 얼마나 많은 일들을 속으로 삭여왔을지.

나는 철없게도, 학창 시절 학예회나 운동회에 오지 않은 엄마를 두고 다른 엄마들과 비교하면서 그녀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었다.


그날 오후 늦게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엄마와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머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걱정이 되었던 나는 집에 오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핸드폰을 열고 뇌경색을 검색해 봤다.

'뇌경색은 뇌혈관이 막혀 뇌의 일부가 손상되는 질환으로 증상으로는 시야장애, 반신마비, 어지러움 등이 있다.'

저작기능과 균형 잡는데 어려움은 있었지만 다발성 뇌경색으로 보이는 엄마의 CT결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녀의 증상이 경미해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딘가 찝찝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다음 날, 평소와 같이 출근했던 엄마는 퇴근할 무렵 숨을 헐떡이며 집에 들어왔다. 짧은 숨을 빠르게 몰아쉬던 그녀는 아무래도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뇌경색이 아니라, 뇌종양 같다고. 신경과가 아니라 신경외과로 연결해 준대."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는 엄마를 무척 놀라게 했다. 엄마의 말투와 행동에서 감출 수 없는 불안감이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뇌경색이 아니라 뇌종양이라니. 단어가 주는 섬뜩함과, 처음 보는 엄마의 낯선 모습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나까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엄마가 당장이라도 어떻게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온 힘을 다해 감정을 숨기고 그녀를 안심시키며 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대학병원 응급실은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루었다. 새삼 이 좁은 땅에 아픈 사람이 이토록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가족들과 도란도란 식사하면서 안락한 저녁 시간을 보낼 때 누군가는 응급실에서 생사를 오가고 있었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아니, 엄마를 괴롭히는 뇌종양만 아니었더라면 앞으로도 그 안락한 시간 속에 우리 가족의 몫도 있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삶과 죽음은, 사실은 샴쌍둥이처럼 한 어미의 자궁에서 나와 결국에는 한 몸으로 귀결되는 그런 존재임을 그 밤, 응급실 한복판에서 나는 절실히 실감했다.


한참을 기다려 겨우 접수를 하자 또다시 긴 기다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피검사를 하고 CT를 찍고 나서 억겁 같은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수험 공부를 할 때는 쏜살같이 지나던 시간이 오늘은 마치 배속을 늦춘 듯 느리게 흘러갔다. 얼마나 있었을까. 당직의사가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반쯤 풀어진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앳되지만 매우 지쳐 보이는 여의사는 엄마에게 과호흡이 왔고 증상이 심하지 않다고 침착하게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엄마 곁에 있는 나를 보며 보호자와 잠깐 얘기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보호자라는 단어가 무척 낯설었다.

그녀가 지칭하는 엄마의 보호자는 나였다.

나의 25년의 생에서 나는 언제나 피보호자였지, 그 반대로도 불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그 낯선 단어가 지칭하는 사람이 나인지 깨닫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녀를 따라 응급실 깊숙이 들어갔다.

그녀는 피곤한지 충혈된 눈을 들어 내게 자못 심각한 얼굴로 CT 결과를 설명했다.

"정확한 건 검사가 다 끝나고 교수님께서 진료 때 따로 말씀해 주시겠지만, 지금으로선 보호자께서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됩니다. 아주 어려운 싸움이 될 수도 있어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수도 있고. 가족들에게도 알려주세요."

그 순간,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대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나와 내 앞에 있는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전부 희뿌연 안개로 변하는 경험을 했다. 마치 주인공에게만 핀조명을 비추고 관객석은 칠흑같이 어둡게 연출한 연극무대처럼 말이다.


그날 내가 그 의사에게 어떻게 대답했는지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기억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는 과장된 몸짓으로 쓰러지거나 아니면 소리를 지르며 부정했을 테지만 나는 그저 얼빠진 채로 바보같이 아니오. 네.라고 말했으리라.


왜냐면 마음의 준비라는 건 예상 밖이었으니까.

내 인생에서 '엄마'가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란, 언제나 최악을 상상하는 악취미를 가진 나에게도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이니까.


바빠 보이는 그녀가 나를 두고 다른 환자를 보기 위해 자리를 떴을 때도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었다.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발 한 발이 천근처럼 무거웠고 1분 거리도 안 되는 엄마에게 가는 길이 천리 길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왜? 왜 너만 따로 불러? 무슨 일인데 그래! 저 의사 정말 웃긴다. 당사자는 난데 왜 너만 불러? 뭐라는데? 뭐라고 했냐고!"

내가 엄마 곁으로 가자마자 엄마는 주변 사람들을 개의치 않고 내게 큰소리로 화를 냈다. 오랜 직장생활로 사회적 애티튜드가 몸에 밴 엄마가 당신의 체면과 공공예절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보고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았지만, 사실대로 얘기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엄마의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에 그 주에 바로 신경외과 예약이 잡혔고 엄마는 곧바로 입원했다. 그리고 뇌종양 일부를 제거하면서 동시에 조직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 암이 머리에서 스스로 생긴 암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전이된 것인지를 조사하기 위한 PET-CT도 추가되었다. 나는 전주에 있는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엄마의 수술날, 막바지 취업 준비에 한창이던 오빠와, 아빠가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엄마가 아프고 난 뒤부터 언제나 엄마 곁을 지키던 이모와, 엄마의 형제들도 병원에 왔다.


비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엄마의 뇌종양이 여러 군데에 퍼져있었기 때문에 전부 제거하지 못하고 남은 암덩어리는 항암제 복용과 방사선 항암치료를 병행해서 제거하기로 했다.

엄마는 머리에서 스스로 생긴 원발성 뇌종양으로, 조직검사 결과 4등급 신경교종인 악성 교모세포종이었다. 드라마에서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의 단골소재로 쓰이기도 하는, 머리에서 암세포가 구름처럼 커진다고 해서 클라우드 세포종이라고도 불리는 바로 그 악명 높은 뇌종양이었다.

완치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완치가 된다고 해도 재발률이 무척이나 높았다.

평균수명은 14개월이었다.


“환자에게 여명을 알려주고 신변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엄마를 병실로 올려 보내고 보호자들만 남은 진료실에서 담당 교수는 다소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환자에게 내리는 사형선고는 그에게 낯선 일이 아니었다.

앉은자리에서 이모는 오열했다. 나는 말없이 내 앞에 앉은 죽음의 사자(使者)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잠이 든 불 꺼진 병실에서 나는 보호자 침대에 걸터앉아 창문을 통해 서울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희뿌연 미세먼지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는 별 하나가 눈에 띄었다. 태초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인간의 생사와 무관하게 그저 존재하는 별.

그리고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누구든 원망하지 않을 테니 제발 엄마를 살려달라고.

혹시 등가교환을 해야 한다면 기꺼이 내가 대신 죽겠다고 말이다.








이전 01화 행복 총량의 법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