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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영 May 22. 2024

가끔은 소소한 일탈을 해보자

시집 간 언니가 오랜만에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언니가 상당히 MZ스러운(?) 옷을 입고 집에 온 것이다. 한창 유행하는 조거 팬츠에 예쁘게 프린팅 된 박스 티셔츠를 입으니 언니 나이가 서른이었지만 웬 스무 살 대학생 같아 보였다. 나는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다가 내 꼴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유행이 지난 지 한참이 된 블라우스와 활동성이 좋은 냉장고 팬츠를 보니 내 스스로가 나이가 들어보였고 어쩐지 창피해졌다. 언니는 예쁘게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쇼핑몰에 들려서 젊음이 묻은 옷들을 팍팍 골라서 사갔다. 언니는 이런 것에 돈쓰는 것을 아껴하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돈을 쓰는 것에 아껴야 했기 때문에 옷을 사본지가 오래되었고, 한창 옷에 돈을 많이 써보니, 옷에 돈을 쓰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꾸미지를 않았다. 그런데 서른인 언니가 대학생처럼 보이는 효과에 나는 코가 꿰인 물고기처럼 얼마 있지도 않은 돈을 털어 결국 쇼핑에 나서기 시작했다.      


유행하는 조거팬츠 2개와 예쁜 박스티 4장을 샀다. 원래 월화수목금 동안 입고 싶어 5장을 살 계획이었지만 언니가 덜컥 6만원이나 하는 한 장을 사줘서 4장을 샀다.      


MZ세대와 같은 옷을 입고 있으니 이십대 후반인 내가 괜스레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초반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 옷을 유행하는 것으로 바꾸고 조금 꾸며서 다니니까 자신감이 저절로 상승되었다. 그동안 옷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내가 패션 감각이 좋지 않기도 했고, 우리나라의 성향 상 유행에 너무 민감하고 유행에 따르지 않으면 뒤처지는 분위기마저 싫었다. 그래서 나는 유행을 따르기 보다는 현재 있는 옷에서 잘 받쳐 입거나 있던 옷을 수선해서 유행을 맞추기도 하면서 내 방식대로, 내 나름대로 꾸미곤 했는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 B급 감성을 고집하기 보다는 때론 A급 감성을 따라해 보는 것도 좋아 보였다. 즉 유행을 따라가는 것도 꼭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든 이유는 요새 한창 자신감이 없어진 시기였는데 유행하는 옷을 조금 사 입었다고 없어진 자신감이 조금 반등해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이런 게 바로 트렌드의 선한 영향력이라는 것인가. 


내가 모르는 것들의 효과를 알게 되면 새로운 세상으로의 눈이 뜨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를 ‘개안’했다고 말하고 싶다. 삶을 즐길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늘어날 수도 있고 스스로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는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지 찾아보는 것마저도 재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렇다면 진정한 ‘개안’이 아니지.      


진정한 ‘개안’은 아주 뜬금없이 찾아와서 놀라움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언니가 뜬금없이 집에 방문해서 MZ세대 옷을 마구 쇼핑을 해간 것처럼 말이다. 마치 갑자기 벼락에 맞아버린 것 같은 상황처럼.

이런 신선한 충격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맞지만 무미건조한 우리의 삶에서 이러한 신선한 충격이 얼마 없다. 그러니 이름하야 ‘개안’인 것이다.      


MZ세대를 개안한 뒤, 

MZ 옷을 입고 MZ 세대의 물건들이나 행동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십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조금이라도 어린 그들의 물건과 행동들을 따라하고 싶어졌다. 벌써 다 큰 이 나이에 항상 유행에 뒤처져있던 내가 유행을 쫓아가고 싶어진 것이다.



줄곧 관심이 없던 패션에 눈을 뜨게 되어 집에 가서 요즘은 어떤 것들이 유행인지 쇼핑몰 사이트에 가서 아이쇼핑을 해보기도 했다. 이런 나의 변화가 낯설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좀 더 예쁜 옷을 입고 싶어진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요즘 여성들의 패션은 상의가 타이트하고 짤막한 것이 유행이어서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번지기도 했다. 무기력한 삶에 다른 동기마저 불러일으켜지는 것도 좋았다.      


요새 빠진 일은 ‘MZ세대 따라하기’이다. 나는 오늘도 외출복으로 예쁜 프린팅 박스 티와 조거 팬츠를 입고 힙하다고 생각이 드는 모자를 쓰고 크록스를 신었다. 이것만으로도 이상할 정도로 자신감과 자존감이 올라갔다. 무채색의 일상에 조금은 빛깔이 새겨진 순간이었다.      


꼭 유행으로 나의 모습을 넣어버리지 않아도 괜찮지만, 너무 빠지지 않는 선에서 유행이란 것을 가끔 나에게 입히는 것도 색다른 것 같다. 삶이 무기력하고 재미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이렇게 소소한 일탈을 찾아보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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