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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영 May 17. 2024

나, B급 감성으로 살리라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는 밤하늘에 빛나는 달과 별보다 희미하게 보이는 구름이나 습기를 더 좋아하고,


왜 나는 인스타그램 보단 종이와 펜을 들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왜 나는 예쁘고 정갈한 음식보다 모양이나 맛이 더 떨어지는 자취용 집 밥을 더 좋아하는지.


이것은 내 마음 깊숙하게 자리 잡아 있는 B급 감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하지 않고 빛나지 않지만 진솔하고 따스한 그 감성 말이다.

사람에 따라 B급 감성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B급 감성으로 삶을 살아가자마자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온 세상이 A급을 외칠 때 나 스스로 B급이 되는 건 패배자나 하는 짓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화려하지도 않고 반짝이지도 않은 것에 매료되곤 했다. 그렇다.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에 가려지지 않고 본연의 색깔을 내는 것에 매료가 되었던 것이다. 완벽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아름다움은 생각보다 컸다.

사람들은 B급 감성을 저급하거나 급이 낮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때론 B급 감성은 상당한 매력을 포함하기도 한다. B급 감성의 영화로 예를 들면 어설프고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진솔함과 창의성이야 말로 “이야! 대단하다!”라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이런 B급 감성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선사하며 가끔은 무엇보다 비교할 수 없는 창의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하며 철학적인 생각마저 던져주기도 한다.

어느 날 나는 우연히 낡은 헌책방에서 헌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상당히 낡은 책이라서 먼지가 가득했지만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매료가 되어 단숨에 책을 읽어버리고 말았다. 이야기가 끝나고 아무리 봐도 완벽하지 않은 서사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적인 매력을 풍기는 책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무명작가의 이야기에 크게 매료된 나는 그때부터 헌책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베스트셀러보다 헌책방에 꽂혀있는 헌책들이 재미있어지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뒷방으로 물러난 글에 꽂혔고 슬며시 B급 감성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감성과 코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B급 감성은 질 낮은 어떠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형태 중에 하나가 되었고, 이 B급 감성에 제대로 몰입한 사람이 되었다. 유행에 뒤처졌다고 하면 뒤처진 독특한 옷을 입고 남들과 다른 취미를 즐기며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상당한 만족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이 완벽함만을 쫓는 세상에서 좋은 시선을 받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B급 감성이라는 게 무엇이더냐, 이런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야 말로 B급 감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B급 감성은 완벽하지 않은 것이 매력이기 때문에 ‘완벽함’에 대해서는 제쳐두고 무언가를 꾸준히 할 수가 있게 되었다. B급 감성이 되는 것은 하나의 일에 몰두할 수 있다는 장점마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안에서도 실패와 도전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스스로를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과 같다.

B급 감성은 단순히 질 낮은 무언가가 아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삶의 태도라고 정의하고 싶다. 나는 앞으로도 이 감성을 간직하며 나만의 삶을 담담히 걸어갈 것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그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B급 감성으로 살리라는 다짐이다.

오늘도 세상은 완벽함을 요구한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불완전함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자신만의 B급 감성을 찾았으면 한다. 우리는 모두 반짝이는 별이 될 필요는 없다. 때로는 희미하게 빛나는 구름이나 체온에 들러붙은 습한 기운이 더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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