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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영구 May 01. 2020

그랑 주떼 Grand Jeté

평온한 내 삶에 쳐들어온 침입자들에게

그랑 주떼 Grand Jeté     



나는 안전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 걸 ‘식물’적인 삶이라고 불렀다. <채식주의자>의 ‘영혜’가 그랬고, <내 여자의 열매>의 ‘아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라는 평온한 삶의 끝에는 언제나 식물이 있었다. 나는 그 책들을 읽고 이렇게 생각했다. 나도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비폭력적인 삶을 살아야지. 이렇게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공평하게 나눠진 햇빛과 죽지 않을 정도의 비만 있으면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꽃을 피우는 삶? 그런 건 바라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고, 밀어내면 밀어내는 대로, 받아들여지면 받아들여지는 대로 살았다. 누군가에게는 무척 수동적인 삶으로 보였겠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동시에 기대지 않는 삶이 좋았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상처주지 않는 적당한 거리 . 그런 것만으로도 인간관계는 생각보다 잘 유지되었다. 내가 그어 놓은 이 선만 넘어오지 않는다면 누구와도 잘 어울릴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자꾸 이 선을 넘어오려는 사람들이 생겼다. 참 무섭게도, 그들은 내게 자꾸만 요구했다. 네 짐을 나눠줘. 네 이야기를 해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줘. 네 고통과 슬픔을 함께하고 싶어.     






나는 혼자서도 잘 살기 위해 조그마한 영역에 뿌리를 내렸다. 이제 겨우 습관이 들었는데 갑자기 쳐들어와서 내 슬픔을 다 내놓으라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웠다.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웃어주는 이 삶이 무척 안락하고 좋았는데, 이걸로도 우리의 관계는 충분히 좋았는데, 왜 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걸까? 그럼 어디까지, 무엇에 관해 나눠줘야 할까. 내가 내 슬픔과 고통을 꺼내면 그건 당신들에게 또 다른 짐이 되지는 않을까? 나를 그냥 이전처럼 내버려둘 수는 없는 걸까. 이 모든 상황들이 불편했다. 내 작은 땅에는 지진이 일어났고, 내 안전한 영역이 침범당한 기분이었다.






    

인영아, 사람이 무기력해지면 안전해지고 싶어져. 그럼 사람은 인간관계를 조금씩 줄이다가 결국에는 집 밖에 안 나오게 돼. 왜? 밖에 나가지 않으면 사람을 안 만나게 되고, 마음이 다칠 일이 없거든. 그런데 인영아. 그 대신 행복한 일도 없는 거야. 그런 삶은 너무 슬퍼.





어느 날 실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머리를 쾅하고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탕비실 구석에서 나눴던 이 이야기가 하루 종일 맴돌았다. 아, 내가 무기력한 상태였구나. 그제야 알았다. 내가 안간힘을 다해 지키려는 이 삶의 방식이 그리 옳은 건 아니었구나.      





“그런 식으로 내가 나를 따돌렸던 것 같아. 너희에게 보여주지 못할 정도로 미워 보이고 창피 했던 내 모습을 따돌렸어. 예전부터 그랬었어. 왜 내 모습이 그렇게 부끄러웠을까. 왜 나 스스로가 그렇게도 못나 보였을까. 저리 가. 나는 그 애에게 말했어. 내 눈에도, 남들 눈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 왜 너는 죽지도 않아? 사라지지도 않고 그대로 내 안에 남아 있어?”

<최은영, 모래로 지은 집>     






이 글을 읽으면서도 펑펑 울었다. 누가 내 마음을 읽어낸 것 같은 이 글,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에 사무쳤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상처주지 않으려고 이런 삶을 사는 게 아니었다. 상처받는 게 싫었던 거다. 나도 꽃을 피우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는 삶이면 좋겠다고 셀 수 없이 빌었다. 혼자 남겨진 기분이 무척 외로워서 슬펐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이야기를 한다. “선인장은 물은 안줘도 산대.” 하지만 물이 없으면 선인장은 죽는다. 다만 아주 조금의 물로도 살아남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느 식물이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혼자 살 수 있는 생명은 없다. 누군가의 보살핌과 관심, 그런 것들이 모든 생명을 자라게 하는 거다. 다만 개체에 따라 그 양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서는 살 수 없었던 거다.     






“인영아, 그래도 너는 주변 사람들이 너를 너무 사랑해주는 것 같아. 그게 느껴져.”      






얼마 전 어떤 친구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남들이 다 알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나는 몰랐다. 여태껏 혼자 내 삶을 일궈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정도면 된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뿌리를 내린 이 작은 땅은 사실 화분 안이었을지도 모른다. 공평하다고 생각했던 햇살은 누군가 신경 써서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 놓아준 거였을지도 모르고. 적당히 내리는 비는 나의 상태를 보고 신경 써서 누군가 물을 뿌려준 거였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이 삶이 참 좋았는데, 다들 내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지켜주고 기다려줬다는 걸 알았다.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여전히 엄청 어린애구나, 싶어서.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사람들을 주변에 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말하는 법을 모른다. 그렇지만 배우고 싶어졌다. 햇빛이 뜨거우면 뜨겁다고, 물이 너무 많으면 물이 많다고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슬프면 슬프고, 좋으면 좋다고 표현해보려고 한다. 평온한 내 삶에 쳐들어온 침입자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앞에 언급한 사람들 말고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도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한테도 그동안 돌봐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또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특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을 선물한다. 





있잖아, 나는 네가 정말 예뻐서 좋았어.
꽃을 보고 있는 것 같았어.
다 피어난 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어.
정말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었어.
그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이 다 나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만 같았어.   
김혜나, 그랑 주떼

웹진 취향껏 6호 식물

에디터 ㅊ , 그랑 주떼 (Grand Jeté)

https://www.chwihyangkkeot.com/writing6_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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