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영구 Jun 01. 2020

나의 아지트

웹진 취향껏 7호 <술>

2019.05.25-26 새마을호 부산여행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 삼형제가 매일 드나드는 술집이 하나 나온다. 동네 친구 정희(오나라)가 운영하는 ‘정희네’다.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하루의 끝을 그 술집에서 보낸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하루의 피로를 푸는 곳, 동훈(이선균)에게 그곳은 말하자면 아지트다. 지안(이지은)이 나타나고, 많은 사건을 통해 ‘정희네’에 속하게 되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줄거리이자 결말이다.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함께 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그 드라마를 보며 내 아지트를 떠올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한 친구들, 그들과 자주 가는 단골 술집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     

내가 다닌 중학교에는 ‘우수반’이라는 특별반이 있었다. 사교육을 지양하자는 의도에서 학교에서 만든 일종의 ‘보충 수업반’이었다. 반 친구들은 계속 바뀌지만 우수반 친구들은 3년 내내 함께했다. 매일 8시까지 학교에서 남아 공부를 하고, 저녁을 먹고, 매 달 마지막 주 금요일은 짜장면을 시켜먹으며 보냈다. 지금은 ‘행리단길’이라고 부르는 그 길이 예전에는 무척 무서운 동네였어서, 위험하니까 몰려다니자! 하면서 한꺼번에 하교를 하곤 했다. 공기  놀이로 내기를 하고, 침묵의 공공칠빵을 하며 하루 종일 꺄르르 웃던 시절이었다.      



그러면서도 하루가 멀다하게 싸우기 바빴다. 서로에게 질려서 고등학교로 진학한 후에는 멀어진 친구들도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술자리가 생기고, 몇몇 친구들끼리 연락이 닿아서 8명이 모이게 되었다. 술이 주는 힘은 대단해서 그 땐 내가 미안했어, 혹은 오해였어. 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쉽게 나왔다. 그제야 우리는 우리가 정말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각자 진학한 과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나열해보자면 ‘국어국문, 임상병리, 관광외식사업, 문화재수리기술, 항공산업공학, 체육교육, 운동건강, 산업경영공학’이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친구가 되었으니 자주 싸울 법도 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이에 술이 합쳐지니 친해지는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우리는 어느새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다. 회비를 모아서 대천, 인천 을왕리, 용인 고기리, 부산 광안리까지 함께 여행을 다녔다. 매번 생일 때마다 모여서 생일파티를 했다. 아무래도 8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이고 덧붙여 애인들이 놀러오기도 했으니 우리를 수용할 수 있는 곳이 마땅찮았다.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이 있으니 주말에 모이는 경우가 잦았는데, 주말의 수원은 곳곳이 핫플레이스였다. 그러다가 우리는 드디어 괜찮은 곳을 발견했다. 어느 맥주집인데, 일단 공간이 아주 크고(제일 중요하다) 구석 즈음에 당구대와 다트기계가 있어서 애용하고 있다. 이곳을 발견한 이후로 우리는 ‘당연히’ 그곳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가린 것은 가게 상호. 우리는 정말 당연히 이 곳에서 모인다.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딱 받으면, 우리는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 설마 여기서 고르곤졸라 피자 시키는 사람은 없겠지?” 한 친구가 맥주에는 피자라며 주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덩치에 비해 너무나 작고 귀여운 피자가 나온 거다. 그 이후로는 주문처럼 메뉴판을 보면서 비꼬기를 시전하고 나서 주문을 한다. 늘 소시지 플레이트와 양념 감자를 시키고 맥주를 먹는 우리. 메뉴판은 왜 보는지 모르겠다.     



술을 조금 마시다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포켓볼을 친다. 매번 팀이 달라진다. 여기서 포인트는 나랑 팀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다. 나는 운동을 못하는 것치곤 포켓볼은 그나마 잘 하는 편인데, 문제는 공을 너무 잘 넣는다는 거다. 그래서 검정공도 잘 넣는다. 이미 4번이나 검정 공을 넣어 팀을 실패로 이끈 장본인이다. 진 팀은 바로 다트 혹은 볼링을 치자고 제안한다. 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뭉쳐있으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다. 계산은 회비로 하는데도 늘 승부욕에 불타오르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하는 이야기도 늘 똑같다. “야, 누가 제일 먼저 결혼할까?” 그럼 나는 자연스럽게 늘 이렇게 대답한다. “누가 하든, 나는 그 결혼식에서 사연 있는 사람처럼 펑펑 울 거야.” 그럼 그들은 자연스럽게 “어 인영이는 그럴 것 같아.”하며 웃어넘긴다. 늘 같은 멤버가, 같은 술집에 가서, 같은 음식을 시키고, 같은 루틴으로 노는 데도 그게 참 재밌다. 술이 있어도, 술이 없어도 우리는 늘 즐겁다. 이상하고 신기한 친구들이다.
           


*


 

나의 아저씨 마지막 화에서 지안은 결국 동네를 떠난다. 그가 떠나는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의 마중이 있었다. 언제든지 돌아오라는 말을 해주는 따뜻한 곳. 언제든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기댈 곳이 있다는 건 사람을 참 단단하게 만든다. 지안에게 아지트는 ‘정희네’라는 술집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안에게 아지트는 그를 안아줬던 사람들이었을 거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 집처럼 드나드는 그 단골 술집이 아니라, 그곳에 늘 함께했던 사람들, 그들이 내 아지트다. 같은 멤버가, 같은 술집에 가서, 같은 음식을 시키고, 했던 이야기를 또 해도 좋은 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요일에 만나서 부추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딱 이렇게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정도면 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언젠가 내가 지안이처럼 그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게 마음이 멀어지지는 않으면 좋겠다.




함께한 시간보다 함께할 시간이 더 많기를 바라며. 사랑해 내 아지트 




웹진 취향껏 7호 술

에디터 ㅊ , 나의 아지트

https://www.chwihyangkkeot.com/writing7_c

매거진의 이전글 그랑 주떼 Grand Jet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