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취향껏 16호 <고양이>
사랑하는 나의 K에게.
안녕, 잘 지내니.
이 글을 쓸까 말까 굉장히 고민했어. 살면서 네 얘기는 되도록 안 하려고 많이 노력했거든. 내가 너로 인해 무척 아파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고, 사실 아직도 많이 벗어나지 못한 것 같기도 해서. 그리고 혹시, 이 글을 쓰는 일이 내 죄책감을 더는 일일까 봐 걱정이 됐어. 그런데 자꾸만 네 생각이 나서 다른 글을 쓸 수가 없겠더라고. 그래서 미루고 미뤄둔 네 얘기를 드디어 해보려고 해.
있지. 너를 잃은 뒤에 나는 미래가 없어진 기분이야. 조금 오바하는 것 같겠지만 정말로 그래. 그냥 평범한 삶을 누리는 자격을 잃어버린 기분이야. 누가 내게 결혼을, 아이를, 삶을 물으면 나는 자꾸 도망치게 되더라. 너 하나도 온전히 지켜내지 못한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살아도 될까.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러다 보니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해. 그냥 나는 애초에 가족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아닐까. 왜 그런 거 있잖아. 가지고 있던 것들을 매번 잃어버리면, 애초에 없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거. 잃어버리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 아니까, 그렇게 되더라고.
가끔 길을 가다가 네 친구들을 마주칠 때가 있어. 그럴 때마다 붙잡고서 내 이야기 좀 전해달라고 하고 싶었어. 내 인생 가장 어둡고 힘든 시절, 너는 내게 유일한 빛이었다고 유일한 사랑이었다고. 네가 돌아오면 좋겠다고 정말 간절히 바란다고 전해주고 싶었어. 물론 한 번도 말을 걸어본 적은 없지만 말이야. 그 친구들을 보면서 네 이름을 생각했어. 너를 생각하면 나는 세상 모든 나비들이 떠올라. 너는 어디에선가 나비로 불리고 있을까. 나비처럼 훨훨, 마음껏 살아가고 있는 걸까. 네가 불행하다는 상상은 되도록 안 하려고 해. 그래야만 내가 버티는 데 도움이 되거든.
너를 보내던 날, 나 참 많이 울었어. 지하주차장에서 엉엉 울면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어. 사람과 사람이 헤어지는 건 참 힘든 일이지, 하지만 너랑 헤어지던 날이 무엇보다도 괴로웠어. 내가 너를 버렸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 그래서 남은 삶이 벌처럼 느껴지나 봐. 너는 어때.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네가 행복한 만큼 내가 불행해진다면 나는 그 불행을 얼마든지 감당할 텐데. 내 행복을 잘라서 너에게 보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보낼 텐데. 네가 떠난 후로부터 내 삶은 쭉 불행에 가까웠으니 네가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믿어도 되는 걸까. 너를 잃어버리고 우는 날들이 참 부끄러워.
너를 정말로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날, 무슨 정신으로 강원도까지 갔는지 기억이 잘 안 나. 울면서 네 이름을 불렀던 장면만 어렴풋이 떠오르거든. 너 혹시 내 목소리 들었니. 내가 미워서 그렇게 멀리, 도망가버렸니. K. 내가 너의 인생의 아주 짧은 부분이었으면 좋겠어. 네가 아주 오래 살아서, 나 같은 건 잊어버리고 살만큼의 행복을 누리길 바라. 나는 비록 너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했지만, 너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그러니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서 천수를 누리고 세상에서 제일 떵떵거리면서 살아줘. 그러다 언젠가, 언젠가 고양이별에 도착한다면 그때는 한 번쯤 고양이 친구들에게 네 소식을 전해줄래. 나 없이도 행복했다고, 아주, 아주 잘 살았다고.
나의 사랑하는 K, 키오에게.
아가, 잘 지내니.
꼭 그랬으면 좋겠다.
웹진 취향껏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