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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주.부 자아성찰기8

- 학교에는 방학이 있다.

by cream

일터로서의 학교는 참 좋다.

종이 치면 흩어졌다 또 종이 치면 모인다.

계획적이지 못한 나를 계획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만 같은 규칙적인 종소리가 좋다.

특수 아동들과의 하루하루는 버라이어티 하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지고 있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너무 더워서 기절직전 학교는 방학을 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무급의 방학이 (난 방학비근무 비급여의 보조인력이다.) 대수롭지 않았다.

겨울 코트를 입고 있었던 나에게 여름이란 아주 먼 이야기였기도 했다.

하지만 방학은 나의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모든 사람들은 긴 휴가에 들떠있지만 난 갑자기 구멍이 날 것 같은 카드값을 생각하니 머리가 살짝 띵~해졌다.


- 뭐라도 해야 될 텐데?


정말 오랜만에 당근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방학한 달. 한 달짜리를 찾아야 한다.

이때 내 눈에 뜨인 공고 하나.

어린이 수영장 케어 알바. 한 달 단기로 구한단다.

그냥 애들 좀 도와주고 셔틀버스 태우면 되는 거네? 딸 둘 키운 엄만데 이 정도야 오케이~

망설일 것도 없이 지원을 했고 연락이 왔다.

실장님은 날 맘에 들어했고, 난 쉽게 방학 때 일자리를 구했다.

아이들 학원 투어 때문에 와봤던 그 건물에 이제는 일을 하러 갔다.




어린이 수영장에서의 나의 일은 정말 단순했다.

탈의실에서 아이들을 도와주고 셔틀버스에 잘 태워 보내고 데리고 오면 됐다.

하지만 더운 여름 그 축축하고 습한 탈의실에서 (수영하고 나온 아이들 감기 걸릴까 에어컨 선풍기를 틀지 않았다) 매 타임마다 아이들 머리 물기 닦아주고 드라이를 해주고 너무 진이 빠졌다.

물론 아이들이 수업에 들어가면 2~30분 정도 쉬는 타임이라 정신 없다 여유 있다 반복이었다.

수업 끝난 아이들 호명하고 셔틀 구분해 태우는 것 또한 잠시 잠깐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내 맘이 좀 단단해진 건가.

이런 단순 노동에도 전처럼 내 자존감을 떨어뜨리지 않았고 스스로 날 초라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본인 슬리퍼를 잘못 신었다고 면박주는 젊은 수영강사의 행동도 그런가 보다.. 했다.

실수를 지적하는 인포 직원의 차가운 눈빛에도 성격이 저런가부지… 했다.


어차피 한 달 일하고 난 간다.

노느니 한 달 일하고 얼마라도 번다.

이렇게 생각하니 짧은 여름방학 일을 구해 열심히 일을 하는 내가 너무나 기특했다.


같이 일하는 원래 직원이신 분들은 연세가 꽤 많으셨다.

이 분들은 정규직 난 방학한정 단기 알바였다.

그분들 중 한 분은 나와의 대화를 좋아하셨다. 내가 한 달 있다 가는 사람이라 그런 건지 어쩐 건지 이런저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으셨다.

원래 모르는 사람한테 더 쉽게 맘 속 얘기를 털어놓는 법이라 했던가.

너무 많은 얘기들이 솔직히 벅찼다. 그래서 힘들었다. 먹기 싫은 초코바와 과자 사탕을 자꾸만 집요하리만큼 권하셨다.

하지만 정말 잘 대해주셨고, 날 좋아해 주시는 게 보여서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적당히 거절하며 적당히 잘 지냈다.


그분은 연세가 있지만 이렇게 나와 일하는 게 너무 행복하다 하셨다. 아침마다 화장 곱게 하고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셨다. 오래 일하고 싶어서 출근 전 수영도 다녀오신다 했다.

건강하게 일한다는 행복함이 얼굴에서 뿜어져 나왔다.

45세의 나에게 너무도 좋은 나이라고 하셨고 뭐든 시작하고 도전해도 좋은 나이라고 진심으로 내 나이가 부럽다 하셨다.


45세.

뭐든 시작하고 도전하기에 좋은 나이였나.

뭘 시작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고 한숨만 쉬었는데

45세도 괜찮은 가부다.

어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덧붙이는 말.

- 한 달은 후딱 지났고 겨울방학 때 또 와서 일하라며 그 어르신은 날 안아주셨다.

집에 있지 말고 조금이라도 날 가꾸면서 무조건 나와 일하라는 당부를 하시면서.

그리고 실장님은 내가 단기 아르바이트생 중 제일 일을 잘해주셨던 분이시라면서 감사하다인사를 해주셨다. 아.. 이게 뭐라고 기분이 또 좋아진다.


시간이 지나 학교 겨울방학을 앞두고 어린이 수영장에서 연락이 왔다. 방학 때 또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하지만 난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45세라도 괜찮으니 새롭게 도전할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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