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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Sep 19. 2015

아버지의 무전여행

그리움


“그때는 차가 없던 시절이라 길도 험했고 자갈이 많아 자전거를 타기에는 여간 고약했느니라~" 


아버지는 스무 살 되던 해에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무전여행을 떠났다. 돈 없이 떠난 여행이었으니 가다가 농가에서 일을 해주고 돈이 생기면 다시 길을 가시곤 하셨다는데, 비포장도로라 얼마나 힘이 들던지 결국 섬진강쯤에서 발길을 돌리셨단다. 


우리는 가끔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무전여행을 떠나셨던 그 길을 더듬어 압록을 거쳐 섬진강변을 돌아오곤 했는데 아버지는 짧았던 그 여행을 못내 그리워하시며 그 길이 어디까지 였던가 고개를 돌려 확인을 하시곤 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얘기는 매번 들어도 재미났고 그 길을 지나칠 때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나는 참 좋았다. 


8년 전 엄마의 다급한 한밤중 전화에 놀라서 집에 당도했을 때는 아버지의 수염은 하얗게 길어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 수염을 깎아 드리며 "아빠, 우리 섬진강따라 놀러 가자~" 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해야 했는데 아버지는 “그래, 가자~!!” '오밤중에 어딜 가냐'  하실 아버지가 "그래, 놀러 가자"하셨고 먼 동이 트기 전에 우린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담양을 거쳐 아버지가 스무 살 멋진 날에 자전거 타고 무전여행을 떠났던 그 길을 따라 압록을 지나고 섬진강변을 천천히 몇 번을 오갔다. 가는 내내 말도 없고 깜박깜박 조시는 통해 나는 여러 번 “아빠, 자요? 저기 옆에 강이 보여요? 지금도 섬진강엔 개앙 조개가 있다네요. 우리 개앙 조개 많이 잡았죠. 저기 기차도 가네 아빠~!! ” 나는 조금이라도 더 담아드리고 싶어 아버지를 자꾸 깨웠는데 아버지는 기차가 간다는 내 말에 힘겹게 눈을 뜨셨고 기차 꼬리가 보일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셨다. 

아버지는 잠이 오는 것이 아니라 기력이 다하는 것을 힘겹게 버티고 계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옛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목이 메었고 눈물이 났다. 




어제는 아빠가 82년의 삶을 내려놓고 먼 길을 영영 떠나신 날이었다.

마음이 울적할 때나 생각이 깊어질 때는 아빠가 그리워 혼자서 그 길을 간다.

돌아올 때는 한결 편안한 마음이 되는 것은 아버지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럴리야 없지만, 아셨으면 좋겠다. 오늘 아버지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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