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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괜찮고 서툴러도 괜찮아

마흔, 결혼으로 많이 시달린 나이

by 아테냥이
" 혼자 사는게 더 나아. "


“ 네 커리어를 열심히 쌓아야지, 노후 준비는 하고 있지? ”


마흔까지 엄마에게 듣던 잔소리다. 집에서 '결혼하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반대였다. 정말 누군가와 결혼하고 싶다면, 그때야말로 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더 단호했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결혼 안 한 딸 얘기가 나오면 태연하게 말했다.

"우리 딸은 결혼 안 했으면 좋겠어요."


딸을 위로하려는 방편쯤으로 들릴 법도 하지만 그건 진심이었다.

어릴 적 아빠는 종종 나에게 “비구니가 되어라.”는 말을 했다. 세속의 풍파 속에서 마음이 상하는 걸 누구보다 싫어했던 사람, 세상보다 고요를 믿었던 사람.

그게 우리 아빠였다.


한때는 아빠가 나를 진짜 절에 데려갈까 봐 외할머니가 귀띔하셨다.

“아빠가 어디 가자고 하면,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빠나 절로 들어가. 난 속세가 좋아.”

그 말을 끝으로 아빠의 '비구니 권유'는 멈췄다. 지금 돌이켜보면 IMF시절, 사업실패와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상처가 깊으셨던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우리 집에서는 마흔에 미혼인 내가 조금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서 나와 친구들을 만나고, 지인들과 어울리고, 회사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혼이야기가 흘러 나온다. 그러면 매크로처럼 어김없이 날아오는 질문이 있다.


"넌 왜 결혼을 안 해?"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정상적인 속도'의 선로에서 이탈한 기차인지 확인하려는 듯한 미묘한 심문의 시작 같았다.


사실은 몇 번의 이별이 있었고, 혼자가 주는 자유와 고요가 편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이가 이렇게 된 것뿐인데, 나는 그럴듯한 이유를 지어내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으며 질문자를 '납득'시켜야 했다.


수년간 변명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지금은 혼자인 게 좋아’, '외롭지 않아'라는 말은 슬그머니 뺐다.

그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마치 내가 ‘병든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같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았다.


늘 “너 외로워서 그래”라고 걱정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나, 사실 지금은 혼자인 게 자유롭고 좋아.”


그럼에도 만날 때마다 '외롭지 않냐'는 말이 이어졌다.

'정말 내가 외로운데 깨닫지 못하나?' 스스로 의심하게 됐고, 그 자리에서 외로움 테스트를 모바일로 했다.

결과는 '혼자서도 충분히 삶을 즐기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그날 이후, 나는 '외로운 사람' 하기로 했다.


그들의 고개가 이해의 방향으로 기울 때까지 내 삶의 진실을 감추고 사회적 통념에 맞는 역할극을 반복해야 했다. 그 시간은 무척 번거로웠다.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결혼하니 어때, 추천해?”


결혼 후, 미혼인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들을 때마다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내 안에서는 묘한 이질감이 생겼다. 결혼은 마치 한정판 상품이나, 별 다섯 개짜리 맛집의 후기처럼 '추천'하고 '비추천'하기에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질문 속에는 두 가지 은밀한 속내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미혼인데 결혼이 좋다고 한마디 해 줘' 혹은 '막상 해보니 별거 없더라, 환상을 깨 줘'라는 은밀한 기대 말이다.


나도 친한 사람이 결혼으로 행복한 모습을 보면 한동안 결혼이라는 거대한 전염병에 감염된 듯 마음이 술렁였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무작정 뛰어들기보다 오히려 그와의 결혼을 망설였던 부분들을 다시 꺼내봐야 한다.


내 삶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품이 아니며 결혼은 '나'라는 우주의 궤도를 완전히 뒤바꾸는 중력과도 같아서 중요하다.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하고 희생할 준비가 되었을 때, 이 사람의 짐까지 기꺼이 짊어질 용기가 생겼을 때, 그리고 그 사람과 평생 동행하고 싶다는 내면의 확신이 들 때. 그제야 비로소 결혼은 '나의 일'이 되었다. 누구도 타인의 삶이나 타인의 행복을 책임져 줄 수 없다.


단순히 내 개인적인 결혼 만족도를 묻는다면, 나의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좋고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해보니 좋더라, 너도 얼른 해!"라는 말은 끝내 하지 못하겠다.

그 말은 미혼시절 내가 들었던 "너 외로워서 그래"라는 언어폭력을 내가 그대로 되갚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추천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행복의 모양이 있다. 그리고 요즘 들어, 그 형태는 더욱 다채롭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결혼 안에서 안정과 사랑을 배우고 누군가는 혼자서 자유와 평화를 익힌다.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채워가는데 어느 모습만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선택만 옳다고 믿는 순간 사람의 시야는 놀랍도록 좁아진다. 지금도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내 삶과 선택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그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세계가 아직 닫혀 있는 탓일 것이다.


그러니 너무 흔들리지 말자.


내 삶을 평가하려 드는 말들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스스로에게 단단히 속삭여야 한다.

‘그건 그들의 세계이고, 나는 나의 세계를 산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간다. 중요한 건 남보다 늦거나 빠른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선택한 길 위에 서 있는가 아닌가 그뿐이다.


마흔의 결혼에는 분명 숨겨진 장점이 있었다. 그건 ‘성숙한 사랑으로 시작한 동행’이다.

늦어도 괜찮고 서툴러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나의 행복이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 위에 서 있다는 것.

결국 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태도’다.

그 태도를 지켜낼 수 있다면 결혼이든, 비혼이든, 또는 어떤 형태로든 당신의 삶은 충분히 빛날 수 있다.




<마흔에 첫 경험입니다>


- 끝 -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마흔의 경험한 결혼준비가 산맥을 넘는 여정처럼 험난했다면, 결혼생활 역시 쉽지 않은 항해임을 매일 깨닫고 있습니다.


신혼여행의 바다바람과 신혼생활의 파도소리로 곧 뵙겠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구독과 하트, 댓글은 계속될 저의 이야기에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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