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 아니 오지랖!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달큼한 향의 향수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녀가 탔었음을 이내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그 향수는 독특한 향이었다. 뮬 신발을 즐겨 신고 강한 원색과 큰 패턴의 옷을 즐겨 입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기억하는 키워드가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온도차다. 그녀에게는 두 자녀가 있다. 첫째는 중학생이고 둘째는 초등 중학년이었는데 두 자녀를 대하는 온도차가 너무 컸다. 우리 부부는 그 점을 각자 이상하게 여기다가 대화를 통해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둘째가 막내니까 더 예뻐 보이나? 첫째는 사춘기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댁 바깥분에게 하시는 거 보니 굉장히 살가운 편이시던데 첫째한테는 왜 안 그러지?
우리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 데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몇 가지 목격한 것이 있어서다. 그중 한 번은 두 자녀와 함께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였다. 첫째는 마른 편이고 굉장히 차분한 성격으로 보였다. 그날은 교복 옷매무새가 깔끔하지 않은 상태로 운동화도 구겨 신고 탔다. 옆에 있던 그녀는 자녀의 옷매무새에는 별 신경을 안 쓰는 듯 보였다. 그러다 구겨진 낡은 운동화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발도 툭툭 땅을 몇 번 차며 신을 신는 학생에게 눈길이 갔다. 그녀는 말했다.
-운동화 하나 사줄까? 어떤 브랜드?
- '운동화 사야겠다'도 아니고 '사줄까?'
그 표현이 왜 그리 낯설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옆에 있던 둘째 자녀의 때도 아직 안 묻은 새 운동화가 유독 눈에 띄었다. 보통 아이들 신발 하나 살 때 형제자매 것도 한 번 살피지 않나 하는 생각과 함께 여러 생각들이 지나갔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내가 다른 가정의 모자 사이를 이상하게 보는 것이 죄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뭐라고, 감히... 하지만 둘째에게는 살가운 말투로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대화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의 의구심과 함께 기억 저편 서랍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그래, 더 잘 맞는 자식이 있는 거지. 직업병이다, 직업병!'
학교에 있다 보면 아이들이 무심코 내뱉는 이야기들 속에서 그 아이의 가정을 엿볼 수 있다. 대부분은 자랑이고 부모님의 싸움이나 특별히 기억에 남은 저녁 시간의 대화들도 들려준다. 물론 과장이나 약간의 거짓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한두 마디의 이야기로 섣불리 판단하지는 않으니까.
-아빠가 자꾸 담배를 피워요. (학생의 아버지는 아이를 등교시키는 차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래서 아이 몸에서 담배냄새가 심하게 났다. 아침부터 밀폐된 공간에서 딸을 태우고 흡연을 하는 아빠라니…)
-담배 사 오라고 해서 갔었는데 아저씨가 안된다고 한 적도 있었어요.
-어제 엄마가 아빠를 때렸어요. 아빠가 욕했거든요.
-문 앞에 둘이 같이 있었어요. 동생이 무서워해서요.
-(가족과 함께 했던 경험을 떠올려 글 쓰기 시간) 보통 주말에 부모님과 뭐 해?
-아무것도 안 하는데요.
-할머니댁에 가거나 한 적 없어?
-있는데 할머니집에 가면 엄마는 삼촌 방에서 핸드폰 하고 저는 거실에서 핸드폰 해요.
-어젯밤에 기침한다고 아빠가 때렸어요.
-기침한다고 때리셨다고? 어디를, 어떻게?
-이렇게 목을 잡고..
가끔 듣다 보면 화가 나서 아이에게 대처 방법도 알려주고 말하는 연습도 시키고 그런 건 부모님이 잘못하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동학대인지 아닌지 의심되는 순간에는 더 면밀히 아이를 살폈다. 남자 선생님을 무서워하거나, 교사의 손짓에 놀라는 모습을 보이는지, 몸에 상처는 없는지 말이다.
하지만 나도 안다. 가정의 형태는 다양하고, 개인 사정을 모른 채 안 좋은 방향으로 짐작하는 것은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신체폭력보다 방임, 폭언으로 마음의 상처가 깊은 아이들이 더 많으며 내가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알아채기는 아주 어렵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더라도 일부러 끊어내고 아이가 직접 적으로 도움을 청하거나 팩트만 놓고 봤을 때 심각한 사안이라는 생각이 들면 조치를 취했다. 상담을 연결시키거나 신고를 하거나.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 아니면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
아니다.
'학부모가 기분 나빠하면 어쩌지? 내가 되려 신고당하는 건 아닌가? 보복한다고 찾아오진 않겠지?'
그래, 오버한 거다. 그냥 오지랖인 거다. 내 가정이나 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