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천장, 하얀 벽, 얇고 까칠한 이불, 강렬한 소독약 냄새. 여긴… 병원이구나. 나는 입원실에 누워 있었다. 눈을 깜빡이고, 주먹도 쥐어보았다. 발가락도 꾸물거렸다. 조금 어지러운 것만 빼면 아무렇지 않다.
대롱대롱 매달린 비닐 팩에서 맑은 액체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주먹을 쥘 때마다 손등에 꽂힌 주삿바늘이 따끔거렸다. 그다지 아픈 건 아니고.
“아무도 없나?”
병실에 침대가 다섯 개인데, 다른 침대는 다 비었다. 엄마도, 아빠도 보이지 않았다. 흑술사의 신당에서 봤을 때는 할머니가 막 우셨는데, 어디 가셨지?
끄응, 몸이 굳어서 몸이 로봇처럼 움직였다. 베개에 기대앉아 다리를 움직였다. 허벅지도, 허리도, 어깨도 이 정도면 거뜬하다.
병실 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반갑게 소리쳤다.
“아이고, 깨어났냐?”
울면서 달려올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예상과 달리 침착하다. 들고 온 물병도 천천히 내려놓았다.
뭐라고 설명하지? 잠깐 쓰러졌다고 할까. 꿈을 오래 꾸었다고 할까.
“할머니. 저 여기 얼마나 있었어요?”
“그게 궁금허냐?”
“엄마랑 아빠는요?”
“너 깨어나기 기다리다가 출근했지. 퇴근하고 온댜. 그니께 오래 자려면 미리 얘기하라니께.”
할머니는 나를 흘끗 보고는 컵에 물을 따랐다. 이 분위기 뭐냐. 늦잠 잤다고 야단맞는 기분이다.
“지민아, 다음에 또 가도 말이여. 거기선 닷새만 있어야 혀. 알았제?”
응? 그걸 어떻게? 할머니도 아는 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할머니도 율도국을 아세요?”
“난 모르지. 니 할아버지가 그러셨구먼. 지민이가 자기랑 똑같이 오래 잠들면 할 일을 하러 간 거라고. 그래도 여기선 하루 만에 깨야 하니께, 닷새 안에 일을 끝내라고 말이여.”
현실과 그림 속 세계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할아버지는 하루 만에 일을 끝낼 수 있도록 늘 준비하셨던 거야. 현덕 대사님! 생각할수록 대단한 할아버지이다.
“엄마가 많이 화나셨죠?”
벌써 엄마의 잔소리가 걱정된다. 상상만 해도 귀가 먹먹하다. 할머니가 물컵을 건네주었다. 컵에 입을 대는 순간 몸이 스펀지처럼 물 한 컵을 한 번에 빨아들였다. 맹물이 이렇게 달고 맛있었구나.
“걱정 많이 했구먼. 그랴도 뭐, 인제 네가 누구인지 알았으니 되었지 뭐냐.”
내가 누구인지?
전학 오기 전, 학교 상담실에서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엄마도 화분 사건이 사고가 아닌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항의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때, 엄마는 굳은 얼굴로 앉아 있다가 조용히 일어섰다.
‘아직 자기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래요. 곧 알게 될 거예요.’
엄마도, 아빠도 알고 계셨구나. 내가 할아버지 뒤를 이어 율도국의 수호자가 될 것을. 뭐야? 그럼, 가족들 다 아는 사실을 나만 몰랐던 거야? 진짜 어이없네.
아니야,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다. 빨리 가서 연암대군을 도와야 해. 구휼미를 찾지 못하면 북쪽 지방 이재민들은 굶어 죽을 거라고.
“할머니, 그림 속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요?”
“그림? 뭔 그림?”
“율도국이요.”
“그런 건 몰러. 워딜 또 가려고?”
할머니는 빈 물컵을 빼앗듯 가져갔다. 한숨을 쉬다가 씩씩거리다가 쯧쯧 혀를 찼다.
“너 말이여. 학교 가야제. 선샹님이 매일 전화하고 난리도 아니었고만.”
“할아버지가 다른 말씀은 안 하셨어요? 그림이나 만물상에 대해서요.”
“글씨… 없는디?”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모르는 것 같다. 할아버지가 가끔 깊이 잠들면 하루 동안 깨지 않는다는 정도만 안다.
자는 동안, 그림 속 세계로 들어간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런 얘기를 계속하면 정신이상자로 취급받기 딱 알맞다. 엄마도, 아빠도 자세히는 모를 테니 나 혼자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할머니는 에고, 에고 소리를 내며 주먹으로 어깨를 통통 두드렸다. 무언가 생각난 듯 갑자기 서랍을 열었다.
“이걸 손에 쥐고 있더구먼. 중요한 거여?”
새까만 까마귀 인형이 눈앞에 쑥 나타났다. 할아버지의 만물상에서 받은 그 인형! 신기한 손님이 주었을 때와 똑같은 모양과 크기였다.
‘까마귀, 여기까지 따라왔구나.’
인형을 꽉 쥐었다. 꽥꽥 소리를 낼 것 같은데, 움직이지도 떠들지도 않는다. 그냥 인형이었다. 그래도 여기 있는 게 어디야.
다른 것도 남아있을까? 환자복 소매를 걷었다. 왼쪽 손목에 검은 실 팔찌가 묶여있다. 역시! 이건 백 도사의 술력을 담은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내 능력이 더 강해진다고 했지. 다른 건 없나?
가슴을 쓰다듬었다. 웃옷 속에 붓 통은 없었다. 환자복 안에 있을 리는 없고, 지금쯤 내 방 서랍에 있겠구나. 자기 자리를 찾아갔겠지.
무영이 준 단검은…. 그건 거기 남았을 것이다. 단검에는 도술이 담겨있지 않으니 그림 밖으로 나올 수 없겠지.
할아버지가 남긴 누런 종이는…. 그것도 율도국에 남았겠구나. 여기서는 쓸 수도, 쓸 일도 없으니까.
이 정도로도 든든하다. 율도국을 도울 방법이 있을 거야. 할아버지도 만물상에서 일하면서 그림으로 도왔으니까.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지. 백룡의 붓이 있는 곳으로.
퇴원하고도 계속 돌아갈 방법만 생각했다. 학교에 나와서도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나를 율도국으로 불렀던 할아버지의 그림도 보이지 않았다. 방법이 있을 텐데….
그림을 그려도 안 되고, 편지를 써도 아무 반응이 없다. 용도 그리고, 십이지신장도 그렸다. 처음 그렸던 엉성한 호랑이도 그렸지만, 소용 없다.
어떻게 하는 거야? 구휼미 도난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냐고! 율도국에서는 벌써 한 달이 지났겠다.
“에잇!”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생각보다 큰 소리가 울렸다. 덜컥덜컥, 웅웅대던 소리가 딱 멈추었다. 주위의 공기가 달라졌다. 가까이 허걱 숨을 삼키는 소리도 들렸다.
‘아차, 나 학교에 나왔지.’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늦었다. 교실 안이 순간 고요해졌다. 여기 아무도 없는 것처럼. 반 아이들 모두 나를 돌아보았다.
교실 앞쪽에서 누군가 소곤거렸다.
“쟤네 할아버지가 그때 돌아가셨대. 사람들을 구하다가.”
“진짜? 그런데 쟤는 왜 왕따야?”
“내놓은 자식인가?”
서너 명이 모여 앉아 자기들끼리 떠들어댔다. 나에 관한 얘기로 시작했지만, 곧 시험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었다.
오랜만에 학교에 나와서 그런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를 보는 눈빛과 태도가 달라졌다. 드디어 소문을 캐냈구나.
인터넷이 문제라니까. 아니지, 인터넷 자체가 아니라 그걸 쓰는 사람이 문제이지. 여하튼, 진상을 알았다면 덩치들도 가만히 있지 않겠구나. 날 괴롭히지 못해 안달하던 녀석들.
흘끗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덩치 세 명이 팔짱을 끼고 입을 비쭉거렸다. 시비 걸 타이밍을 찾고 있다. 적어도 수업 시간에는 건드리지 않을 테니, 종례 끝나면 최대한 빨리 뛰어나가야지. 그것이 내 유일한 계획이다.
세상이 계획대로 되면 정지민의 인생이 아니지. 종례 끝나고 스마트폰을 돌려받자마자 부르르 문자 알림이 울렸다. 하나는 당연히 엄마의 문자, 오늘은 아빠에게서도 문자가 왔다. 그건 패스하고 다른 건… 연극부장의 호출.
‘[긴급] 대본 문제 협의. 당장 연습실로.’
선배다운 문자였다. 하지만, 지금 연극부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난 덩치들을 피해서 무사히 살아남아야 한다!
그뿐인가? 구휼미를 찾지 못하면 율도국의 이재민들이 굶어 죽는다고! 겨우 학생 연극 때문에 골치 아파야 해? 난 율도국의 수호자라고.
‘연극부에 안 가면…?’
그건 안 되겠지…. 곁눈질로 덩치들을 살펴보았다. 세 명이 나란히 교실 뒷문에 버티고 서 있다. 나를 노려보면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분위기가 이상한 걸 알아챘는지 다른 아이들도 일어서지 못했다. 자기 자리에 그대로 앉아 나와 덩치들을 번갈아 보았다. 호기심과 기대, 걱정이 적당히 섞인 긴장감이 교실 안에 가득 찼다. 아이씨, 어쩌라고!
언제까지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데 내 뒤로 어떤 흐름이 느껴졌다. 공기가 물결처럼 천천히 흐른다.
몸의 감각이 하나씩 깨어났다. 귀가 밝아지고 눈이 맑아졌다. 피부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교과서 한 권이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날아오는 건 맞는데, 마치 허공에 떠서 천천히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손을 뻗어 책을 잡았다.
“우와.”
앉아 있던 아이들이 한꺼번에 숨을 뱉었다.
“뭐야, 씨. 그걸 잡아?”
덩치 하나가 의자를 밀치고 달려들었다.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의자가 연달아 넘어졌다.
문득 왼쪽 손목이 따뜻해졌다. 검은 실 팔찌에서 뜨거운 기운이 나와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다. 녀석의 움직임이 더 느리게 보였고,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도 알 수 있었다. 저렇게 느려 터져서야.
‘이 정도면 가뿐하겠는걸!’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어깨를 펴고, 허리도 펴고, 숨을 들이마셨다. 싸움은 못 해도 피할 수는 있다. 무영이 가르쳐주었다. 도구를 이용해 상대의 허점을 노리기.
옆 책상 위에 30cm 자가 놓여있다. 율도국에서 쓰던 단검과 같은 길이. 그걸로 내가 요괴도 상대했단 말이다. 자를 꽉 쥐었다. 내 감각은 어느 때보다 예민하고, 손은 빠르다.
느려터진 덩치의 주먹을 피해 옆으로 비켜섰다. 동시에 자를 쥔 손목을 휘휘 돌렸다. 자가 바람을 가를 때마다 부웅부웅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바람에 덩치의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헝클어졌다.
자를 검처럼 쥐고 앞으로 뻗었다. 덩치가 비틀거리며 교실 뒤편 사물함까지 밀려났다. 팔을 힘껏 뻗었다. 녀석의 코 바로 앞에서 손을 멈추었다.
내 손은 멈추었으나 자는 멈추지 못했다. 끝을 부르르 떨면서 계속 바람을 내보냈다. 덩치의 눈이 사시가 되어 자 끝으로 모였다. 몸이 바짝 굳어서 입술만 뻐끔거렸다.
여기서 제대로 경고해야지. 다시는 날 괴롭히지 못하도록.
“애들 놀란다. 조심해라.”
캬, 내가 들어도 멋진 대사이다. 덩치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를 치웠다.
남은 두 명은 어떻게 손볼까. 그건 고민할 필요 없이 해결되었다. 눈이 마주치자 주춤주춤 길을 비켜주었다.
내가 교실을 나설 때까지 아무도 소리 내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길이 나를 따라 문까지 이르렀다. 복도로 나와 문을 닫았을 때, 함성이 들렸다.
“봤어? 봤어? 엄청 빨라.”
“야, 자로 싸우는 건 처음 본다. 칼 쓰는 무사 같잖아?”
등 뒤에서 떠드는 소리는 익숙하다. 율도국에서도 그랬으니까. 기분이 좋아졌다.
‘자식들, 내가 누구인지 알아?’
가슴이 뿌듯하다. 어깨가 저절로 펴진다. 나는 여전히 율도국과 연결되어 있다. 구휼미 사건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예감이 좋다.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 벌써 연극부실까지 들어갔다. 내가 복도를 지나 화장실에 들렀다가 두 개 층을 내려와 문을 여는 그 잠깐 사이, 부원들 모두가 알아버렸다.
소문 참 빠르다. 문 앞에 서니 들썩거리는 소리가 복도까지 퍼져 나왔다.
“들었어? 무술 고수라며?”
“일진 아니라?”
“왕따는 뭐고?”
“완전 짱이었대. 쉭쉭 자를 휘두르는데 바람처럼 빠르대.”
“하! 정체가 뭐야?”
문을 여니 말소리가 뚝 그쳤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이상하다. 며칠 전에도 부원들이 이런 눈빛으로 나를 봤는데 지금은 괴롭지 않다. 마음도 단련되었나. 어쨌거나… 악의는 없으니까 됐다.
연극부장까지 들어오고, 회의도 시작했지만, 대본을 담당한 선배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문제가 생겼다더니 이건가.
“갑자기 수술 날짜가 앞당겨졌어. 목요일이 수술이래. 대본을 못 쓰게 돼서 미안하다고 전해 달랐어.”
부장의 말에 다른 선배가 이기죽거렸다. 지난 회의 때 반대 아닌 반대를 하며 비아냥거리던 선배였다.
“이럴 줄 알았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니까 일이 꼬이지.”
첫 단추가 연극 소재를 말하는지 부장 선거를 말하는지는 애매했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동아리를 옮기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계속 붙어있어?
“누가 대본을 맡으면 좋겠는데.”
부장의 말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1학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숙였다. 선배들은 고개를 돌려버리고.
“시험이 코앞이야. 내신도 중요해.”
“꼭 대회에 나갈 이유는 없잖아? 활동 기록만 있으면 된다고.”
지난번에 반대하던 선배들이 이번에도 반대한다. 일은 소극적인데, 반대는 적극적이다.
어쨌든 나는 소품 담당이고, 결론이 어떻게 되든 관심 없다. 내가 해결할 문제는 다른 것이니까.
회의는 언제 끝나나. 율도국에서 몸과 정신을 단련했지만, 전혀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이런 무의미한 회의에 앉아 있으면 온몸이 저린다. 구휼미를 어떻게 찾아주냐고. 연암대군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힌트라도 주고 와야 했는데….’
지루한 회의를 피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띄엄띄엄 흘러간다. 흰 구름을 보니 백룡이 생각났고, 이어서 연암대군과 무영이 떠올랐다.
그림을 찾았으니 지금쯤 연암대군이 세자에 올랐을 것이다. 궁 밖으로 못 나갈 테지. 당연히 무영도 못 움직일 거고.
누군가는 평해로 가야 한다. 암행어사를 보낼까? 관리들이 지휘했으면 수령과 아전들도 공범이라는 뜻인데…. 무턱대고 찾아가면 쌀을 내놓지 않을 거란 말이야. 할아버지는 이런 사건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어떤 그림을 그리실까?’
그림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꼭 그림이어야 하나. 다른 방법 없을까. 암행어사를 보낼 좋은 방법.
“정지민!”
부장이 소리 질렀다. 눈초리가 매서운 것이 벌써 여러 번 나를 불렀나 보다.
“예?”
“네 생각은 어때?”
왜 하필 나를 지목해? 아무 말 안 하고 조용히 있었다고! 대본 같은 건 써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다. 소품 맡으라고 해서 왔지, 연극에는 관심도 없거든요.
“뭘요?”
“지난번 스케치 봤어. 장면마다 설정과 대사도 썼던데 그거 재미있더라.”
스케치에 설명을 썼다고? 내가? 언제?
아차! 그때 부장에게 엉뚱한 스케치를 꺼내 줬구나. 암행어사물 배경에 참조한 다른 그림이라면….
게임 캐릭터 만든다고 끄적거린 것이다. 동양 전설을 소재로 한 캐릭터라 어쩔 수 없이 설정과 대사 몇 줄을 넣었는데.
부장이 내 스케치를 꺼내 부원들 앞에 내려놓았다. 아니, 그걸 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다.
“우와! 이걸 그렸다고?”
“대단한데?”
부원들이 한 장씩 돌려보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솔직히 대단한 건 아니다. 자료 보면서 따라 그린 거니까. 미술부라면 누구나 그 정도는 그린다. 그러니까 소품 담당이라고 앉아 있지.
“대본 써볼래?”
“제가요?”
이건 무조건 거절이다. 어떻게 거절해야 뒤탈이 없으려나. 부장을 똑바로 보지는 못하고 멍하니 벽만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벽에 걸린 액자 유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