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부작 인생 Dec 19. 2022

꿀호떡에는 꿀이 없다

해운대 시장에서 외국인 도와 드린 썰


부산의 바람은 매서웠다. 

아랫 지방이라고 무시하지 말라던 남편의 지인 말씀은 매우 그러했다. 무시라기보단 기대를 하고 부산에 내려갔건만 왜 하필 우리 여행 날에 최강 한파가 몰아닥친 걸까. 역시 우리 중에 부정한 자가 있었건 걸까?


해운대 시장에서 그렇게 칼바람을 맞으며 호떡을 기다리고 있었다. 맛이 좋아 유명한 게 아니라, 손이 느려 줄이 길어지는 바람에 맛집이라고 소문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그런 호떡집이었다.


'뭐 시켰어요?', '씨앗호떡 하나랑 꿀호떡 다섯 개요'를 한 여섯 번 정도 되풀이 얘기하면서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이 정도 되면 좀 외우실 법도 된 거 아닌가 하며 속으로 투덜대고 있었다. 이쯤되면 호떡 바이럴이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겠다. 좋은 글은 두괄식이라던데 나는 이제부터가 진짜 본론이다.


 아들이 별안간 '저분들은 왜 저렇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냐'며 중얼거렸다. 시선을 돌리니 외국인 관광객으로 추정 중인 분들이 우리 옆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더욱 어쩔 줄 모르는 듯 한 공기였다. 만원 짜리를 들고 있는 외국인 청년의 손이 방황 중이었다.


알고 봤더니 우리나라의 셀프 계산에 대한 시스템이 낯설어서 방황 중이었던 것 같았다. 돈통에 돈을 넣고 잔돈이 필요하면 알아서 챙겨가는 나름 신뢰와 정직을 바탕으로 하는 셀프 계산 시스템이 외국인한테는 낯선 문화일 테지.


출처 https://m.blog.naver.com/lizzy1997/222625828876


나는 손짓으로 돈통에 만원을 넣으라고 가리켰다. 눈치 빠른 외국인 청년은 그제야 방황하던 만원 짜리를 돈통에 넣었다. 그러나 거스름돈이 문제였다. 한국 화폐를 조금 아는 모양이었는지 오천 원을 가져가고 오백 원 짜리도 가져가는 것 까진 성공 했는데 천 원을 더 가져가야 하는 허들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난 사실 그들이 뭘 주문했는지 알고 있던 터였다. 천 원을 더 가져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영어가 나오질 않았다. 원 싸우전드.... 를 속으로 곱씹는 게 나의 한계였다. 그 어색해진 공기를 가르며 아들이 한마디 했다


"what did you ordered?"


갑자기 들리는 영어에 청년은 반가운 손짓으로 메뉴판에 꿀호떡과 씨앗호떡을 가리켰다.


" One honey, one seed"


그리고 다시  어색한 침묵...  다들    가져가라는 말을 영어로  하는 지. 다들 정규 교육으로 6 동안 영어를 배웠는데 이런 간단한 의사소통도 못하다니. 통탄을 금할  없었다. 마침 우리  손님이 '   가져가야 하는  아니야?' 라는 말이 터져 나왔고 용케 알아들었는지 청년은 가까스로  원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몸을 가까이 붙이고 엄지척을 올리며 비밀스럽게 한마디 건넸다.


"Thank you"


나는 잘 가라고 Bye로 응답했는데 다시 보니 아직 호떡을 받지 못했다. 다급하게 사장님께 "이분들 아직 못 받으셨다는데요?"라고 하니 "나올 거예요. 기다리세요." 하며 타박하는 어조로 말씀하셨다. 다행히 호떡은 바로 나왔다. '이건 허니예요~'라고 주시는 걸 내가 건네받아 전달했다. 뒤이어 '이건 씨드예요~' 하시는 걸 또 전달해드렸다. 나름 글로벌한 서비스의 호떡집 같았다. 같이 칼바람을 맞으며 호떡을 기다렸던 그 외국인 커플은 그렇게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고 잔잔해진 내 마음엔 역시나 영어 실력에 대한 회의감이 다시 폭풍처럼 밀려왔다. 중학교 수준보다 못한 영어 실력을 어찌해야 할까. 왜 꿀호떡이라는데 꿀이 아니라 흑설탕이 들어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없는 걸까.


나는 외국인 청년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꿀호떡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꿀이 아니라 흑설탕과 계핏가루를 섞어놓은 거라고. 설탕이 녹아 흘러내리는 모양이 꼭 꿀 같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달콤하면 꿀에 비유한다고. 그래서 식사할 때 너무 맛있으면 꿀맛 같다고 얘기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한국에 대해서, 한국인 정서에 대해서 얘기해주고 싶었는데 이 하찮은 영어 실력 때문에 기회를 놓쳐 버렸다. 이 중학교 수준보다도 못한 영어 실력 때문에 가까스로 잡은 대기업 면접에서도 떨어졌건만 언제쯤 나는 이 중학교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도 안타까운 마음에 영어 유튜브와 파파고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you should take more thousand won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해, 일단 해, 뭐든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