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시장에서 외국인 도와 드린 썰
아랫 지방이라고 무시하지 말라던 남편의 지인 말씀은 매우 그러했다. 무시라기보단 기대를 하고 부산에 내려갔건만 왜 하필 우리 여행 날에 최강 한파가 몰아닥친 걸까. 역시 우리 중에 부정한 자가 있었건 걸까?
해운대 시장에서 그렇게 칼바람을 맞으며 호떡을 기다리고 있었다. 맛이 좋아 유명한 게 아니라, 손이 느려 줄이 길어지는 바람에 맛집이라고 소문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그런 호떡집이었다.
'뭐 시켰어요?', '씨앗호떡 하나랑 꿀호떡 다섯 개요'를 한 여섯 번 정도 되풀이 얘기하면서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이 정도 되면 좀 외우실 법도 된 거 아닌가 하며 속으로 투덜대고 있었다. 이쯤되면 호떡 바이럴이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겠다. 좋은 글은 두괄식이라던데 나는 이제부터가 진짜 본론이다.
아들이 별안간 '저분들은 왜 저렇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냐'며 중얼거렸다. 시선을 돌리니 외국인 관광객으로 추정 중인 분들이 우리 옆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더욱 어쩔 줄 모르는 듯 한 공기였다. 만원 짜리를 들고 있는 외국인 청년의 손이 방황 중이었다.
알고 봤더니 우리나라의 셀프 계산에 대한 시스템이 낯설어서 방황 중이었던 것 같았다. 돈통에 돈을 넣고 잔돈이 필요하면 알아서 챙겨가는 나름 신뢰와 정직을 바탕으로 하는 셀프 계산 시스템이 외국인한테는 낯선 문화일 테지.
나는 손짓으로 돈통에 만원을 넣으라고 가리켰다. 눈치 빠른 외국인 청년은 그제야 방황하던 만원 짜리를 돈통에 넣었다. 그러나 거스름돈이 문제였다. 한국 화폐를 조금 아는 모양이었는지 오천 원을 가져가고 오백 원 짜리도 가져가는 것 까진 성공 했는데 천 원을 더 가져가야 하는 허들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난 사실 그들이 뭘 주문했는지 알고 있던 터였다. 천 원을 더 가져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영어가 나오질 않았다. 원 싸우전드.... 를 속으로 곱씹는 게 나의 한계였다. 그 어색해진 공기를 가르며 아들이 한마디 했다
"what did you ordered?"
갑자기 들리는 영어에 청년은 반가운 손짓으로 메뉴판에 꿀호떡과 씨앗호떡을 가리켰다.
" One honey, one seed"
그리고 다시 또 어색한 침묵... 왜 다들 천 원 더 가져가라는 말을 영어로 못 하는 건지. 다들 정규 교육으로 6년 동안 영어를 배웠는데 이런 간단한 의사소통도 못하다니.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 마침 우리 옆 손님이 '천 원 더 가져가야 하는 거 아니야?' 라는 말이 터져 나왔고 용케 알아들었는지 청년은 가까스로 천 원을 더 가져갔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몸을 가까이 붙이고 엄지척을 올리며 비밀스럽게 한마디 건넸다.
"Thank you"
나는 잘 가라고 Bye로 응답했는데 다시 보니 아직 호떡을 받지 못했다. 다급하게 사장님께 "이분들 아직 못 받으셨다는데요?"라고 하니 "나올 거예요. 기다리세요." 하며 타박하는 어조로 말씀하셨다. 다행히 호떡은 바로 나왔다. '이건 허니예요~'라고 주시는 걸 내가 건네받아 전달했다. 뒤이어 '이건 씨드예요~' 하시는 걸 또 전달해드렸다. 나름 글로벌한 서비스의 호떡집 같았다. 같이 칼바람을 맞으며 호떡을 기다렸던 그 외국인 커플은 그렇게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고 잔잔해진 내 마음엔 역시나 영어 실력에 대한 회의감이 다시 폭풍처럼 밀려왔다. 중학교 수준보다 못한 영어 실력을 어찌해야 할까. 왜 꿀호떡이라는데 꿀이 아니라 흑설탕이 들어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없는 걸까.
나는 외국인 청년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꿀호떡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꿀이 아니라 흑설탕과 계핏가루를 섞어놓은 거라고. 설탕이 녹아 흘러내리는 모양이 꼭 꿀 같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달콤하면 꿀에 비유한다고. 그래서 식사할 때 너무 맛있으면 꿀맛 같다고 얘기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한국에 대해서, 한국인 정서에 대해서 얘기해주고 싶었는데 이 하찮은 영어 실력 때문에 기회를 놓쳐 버렸다. 이 중학교 수준보다도 못한 영어 실력 때문에 가까스로 잡은 대기업 면접에서도 떨어졌건만 언제쯤 나는 이 중학교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도 안타까운 마음에 영어 유튜브와 파파고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you should take more thousand 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