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부작 인생 Sep 08. 2021

너어, 서운해지려고 한다!

서운한데 서운한 게 아니야

 마 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신부님을 찾아뵙게 되었다.

 신부님께서는 냉동실에서 꽁꽁 얼어버린 맥주를 꺼내 주셨다. 신부님은 맛있게 먹으려고 맥주를 잠깐 넣어놓으셨단다. 그게 그렇게 꽁꽁 얼어버릴 줄 모르셨던 거지. 꺼내보니 터지기 일보직전이었고 어떤 건 살짝 터져있던 것도 있었다. 버리기는 아까워서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었는데 내 표정이 영 아니었나 보다. 맥주만큼은 정말 맛있게 마시는데 그냥 물 마시듯이 무표정으로 마시니깐 말이다.


 신부님께서 "김 다 빠졌어?" 라며 한 모금 마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뭘 이런 걸 마시고 있었어. 너 서운해지려고 한다!"였다. 마치 베프에게 남친이 생겼지만 타이밍을 놓쳐서 다른 친구에게 베프의 남자친구의 존재를 전해 들은 여고생이 할 법한 그런 말투였다.

 그런데 나는 서운하다는 말이 왜 그렇게 다정하게 들렸을까. 정말 나를 아낀다고, 위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어려운 얘기라도 쉽게 꺼낼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넌 아니었나 봐.' 하는 그런 신부님의 생각이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전 직장에서도 랜선 때문에 낑낑거리다가 부장님한테 말씀드려서 해결을 했더니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서운하다는 듯이 얘길 했었다. "나도 있고 김대리도 있는데 왜 얘길 안 했어?" 라며 따져 물으셨었다. 근데 나는 그것마저도 좋았었다. 우리가 이렇게 친한 사인데 왜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청했어? 라고 얘기하고 싶으셨던 거였겠지. 그렇게 서운하게 생각하실 줄 알았으면 그 동료에게 도움을 청할 걸 그랬다.

 '서운하다' 라는 것은 널 좋아해, 라는 뜻인 것 같다. 자주 서운함을 비치면 서로가 피곤하겠지만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더 깊은 관계로 이어지는 과정인 것 같다. 나한테 서운해해 줘서 고마운 사람들이다.


+한줄 요약 : 서운해 = 널 좋아해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와 흰머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