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역시 숫자에 불과하다
이 나이 먹고도 유치하게 내 친구가 다른 친구랑 친해 보이면 질투가 난다.
질투하는 내 모습이 그렇게 찌질하고 우스울 수가 없다.
어느 날, 친구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친구가 자신의 또 다른 친구의 칭찬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 친구 덕분에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아."
'그렇구나. 그 친구는 정말 좋은 친구네! 네가 그 친구 덕분에 한층 더 성숙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해야 하는 게 찐친이겠지. 하지만 나는 못난 사람이어서
'나는 왜 그런 훌륭한 친구가 되지 못할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고 자격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도 내 친구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친구이고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밀려오는 그 배신감은 어느 막장드라마의 한 씬처럼 다가오는 것이었다. 재벌 3세의 어머니가 며느리감이라며 데리고 온 아들의 여자 친구를 만나는 막장드라마처럼 나의 배신감은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나보다 더 친한 친구가 있을 수 있어. 내가 널 어떻게 키...워ㅆ.. 아니, 얼마나 좋아하는데. 혼자 중얼거리는 나는 초등학생의 감성보다 뭐 하나 나은 것이 없었다.
애써 쿨해지려고 꾸역꾸역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았다.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나만 이렇게 찌질한 거 아니지? 하면서 동병상련의 동지들을 찾아 나섰다. 유튜브의 댓글들은 참 힐링스럽다. 동지들이 많아 안도감을 느꼈다. 다행이었다. 나만 찌질한게 아니라서. 하지만 수많은 동지들의 위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찌질함이 가라앉질 않았다. 서운함이 안 풀렸다. '어떻게… 어떻게 네가 나한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친구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mbti 링크를 보내며 즐거운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했지만 빈정이 상한 나는 유치하게도 안읽씹 공격을 시전했다. 그냥 보통의 친구였으면 그냥 안 읽나 보네 하며 넘어갔을 텐데 친구는 대인배였던가.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싶었던지 나에게 이런 시를 하나 보내줬다.
마주 앉아 말없이 흐르는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은 친구이고 싶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했을 때
유치해하지 않을 친구이고 싶다.
울고 싶다고 했을 때 충분히 거두어 줄 수 있고
네가 기뻐할 때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는 친구이고 싶다.
비록 외모가 초라해도 눈부신 내면을 아껴줄 수 있는 친구이고 싶다.
별이 쏟아지는 밤거리를 걸어도 걸어도 싫증 내지 않을
너의 친구이고 싶다.
´안녕´이란 말 한마디가 너와 나에게는 섭섭하지 않을
그런 친구이고 싶다.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가 눈물겹도록
소중한 친구이고 싶다.
벗에게 / 이해인
다행히도 시간이 좀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찌질함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저녁에 친구는 무슨 일 있냐며 톡을 보냈고 나는 부탁 하나를 했다. 친구는 대충 감이 왔는지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친구는 나에게 사과를 했다.
친구가 사과할 일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속상해하는 나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준 것이었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나는 솔직하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친구가 다른 친구랑 더 친한 것 같으면 질투가 나…
이 나이 먹고도 쿨하지 못하고 참 유치하고 우습지.
아침 댓바람부터 사과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고맙고…'
그랬더니 친구의 둥글둥글한 한마디.
나는 너가 제일 친한데ㅎ
나의 유아기 수준의 감성에 눈높이를 맞춰서 맞장구 쳐주는 친구가 한없이 고마웠다. 이 나이 쳐 먹고도 미성숙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 자신을 반성한다. 처절하게 반성중이다.
좋은연애연구소 김지윤 소장님께서 관계성이란 것은 상대에게서 나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사실 깊은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꽤나 두려운 일이다. 상대를 통해 나의 이기심과 집착, 언제나 갑의 위치가 되려고 하는 욕심을 마주하게 된다. 거기에서 관계를 끊고 혼자 편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성숙한 모습으로 이 사람과 평생을 의지하며 행복하게 지낼 것인가는 나의 몫이다. 나의 밑바닥을 마주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극복한다면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면서 동시에 소중한 친구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한줄요약
질투는 사람을 찌질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