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보니 한국사람인걸
말로만 듣고 호캉스라는걸 몸소 체험해보기 위해 4성급 호텔에 가게 되었다. 보통 호텔이라 함은 무릇 1층에 프론트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만 덜렁 있는것이었다. 호텔을 자주 방문하지 못했던 나는 순간 당황했다. 프론트가 어딨지? 급한 마음에 입구쪽에 서 계시던 중년 여성분께 여쭈었다.
여기 혹시 프론트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저도 여기는 처음이라… 딸이 내려오기로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나만 모르는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무작정 엘리베이터만 기다리고 있는데 아까 그 여성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딸~ 여기 프론트가 몇층이야? 어~ 21층이라구? 알았어~
잠깐의 묘한 적막감만 흘렀다. 누구에게도 들릴만큼 큰 소리로 통화해주시는 그 분을 보며 이래서 한국사람이 좋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일도 내일처럼 생각해주는 그런 공동체의식이 나는 너무 좋다. 우리가 민망할까봐 '알아서 듣고, 알아서 행동해!' 라는 메세지가 담긴 그 분의 센스도 나는 너무 감사했다. 어떤 이는 경우에 따라 오지랖이라며 비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오지랖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오가작통법에서 유래했다 설이 있다. 강력한 연대책임으로 인해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도 비슷한 제도 있었다는 것으로 봐선 그냥 '설'이라고만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뭐 어떤 나라건 전체주의, 사회주의처럼 개인보다는 전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남을 챙기고 이타심이 넘쳐 흐르는 민족이 또 있을까 싶다.
서핑을 하다가 몇가지 적절한 예시들을 가져와봤다.
1. 카페나 도서관에서 소지품 지켜봐주기
-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묘한 친근감을 갖게 된다. 자리를 오래 비우는 것 같으면 괜시리 자리의 주인의 소지품이 걱정이 되기 시작하다. 누군가 흘깃거리기라도 하면 '주인 있어요' 라는 눈빛으로 대응해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가 앉을라치면 "거기 자리 있는데요" 라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2. 비행기 기내식 챙겨주기
- 12시간 장거리 비행이라 계속 잠만 자려고 했는데 옆 사람이 기내식 먹으라고 깨워줬다는 썰을 봤다. 보통 깨우시는 분들은 중년이라는 데이터가 지배적이었다. 유튜브 댓글중엔 어떤 분은 기내식 먹으라고 테이블까지 꺼내주더라는... 그래도 착한 한국인들은 그런 오지랖에 짜증 한 번을 안냈다고.
3. 미국인: 나는 시위하러 간다. 라며 총을 챙긴다.
한국인: 나는 시위하러 간다. 라며 1인 돗자리와 간식을 챙긴다.
- 한국에서 간식은 총만큼 중요하다. 나 먹을 것만 챙기는라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몫까지 챙긴다. 한국인만큼 먹는 것과 나누는 것에 진심인 사람들이 없다.
4. 공항에서 피어나는 오지랖
- 게이트 앞에서 무뚝뚝하게 서로 말 한마디도 안하고 있다가 뭔 일 터지면 달려가서 물어보고, 먼저 알게된 사람은 열심히 전달하고 나중엔 서로 챙겨서 같이 뛰고 있다며. 그러고는 누군가 비행기 온다 하면 제일 앞줄에 여권과 항공권을 들고 줄을 서있다고 한다.
5. 생일 축하는 다같이
- 외국도 이런 문화가 있는지 잘은 모르겠다. 프러포즈는 다같이 축하해주더만. 90년대에서 2000년대 호프가게만 해도 누구 생일이라 하면 빰빠밤빠밤하면서 축하음악이 나오고 대충 분위기 맞춰서 박수치던 때가 있었다. 축하음악이 나오면 누구 생일인가보다 하며 내 생일처럼 흥겨워했었다. 케이크를 각 테이블마다 돌리던 추억돋던 때가 있었는데. 이런 것도 공동체 의식에서 나오는 것 같다.
6. 끼니 챙겨주기. '밥 먹었어'가 인사
- 단순 인사 치레이지만 여기엔 많은 의미가 함축적으로 포함 되어 있다. 밥을 먹었다면 뭘 먹었는지 메뉴를 물어봐주는게 예의이며 밥을 안먹었다고 하면 빨리 먹으라고 종용을 한다. 이 종용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나는 너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끼니를 거르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너는 꼭 끼니를 챙겨야 한다. 너의 끼니를 챙기지 않으면 나는 나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먹었든 안먹었든 물어봐야 하는 것이 한국인의 기본 프로세스이다.
7.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챙겨주기
- 호주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현지인이 코로나 백신 맞으러 병원에 갔는데 한 한국인이 '백신 맞으러 왔어? 너도 팔 걷고 여기 앉아있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걸 보고 감동을 했댄다. 옆자리에는 이미 팔 걷고 있던 한국인들이 나래비로 앉아있었다고.
저번엔 장을 보고 가는데 좌파상 어머님이 '아가씨!' 하고 내 걸음을 멈추게 하셨었다. 아가씨는 아니었지만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무의식적으로 돌아봤다. '저 아가씨 아닌데요' 하면서 쭈뼛쭈뼛 다가갔더니 어머님이 짐을 잔뜩 들고 가는 내가 안쓰럽다며 당신의 비닐봉지를 건네셨다. 버스에서도 당신의 공간에 내 짐을 허락해주신 분들이 계셨다. 무거워 보인다고, 여기에다가 놓으라고. 왈칵 감동이 밀려온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대체로 오지랖이라면 부정적인 의미가 크다. 하지만 나는 오지랖을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나의 오지랖은 긍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참견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손을 내밀었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불편할 수도 있다. 사생활 침해의 문제도 있다. 보통 사회생활에서 이런 경우를 종종 보는 것 같다. 상사가 주말마다 뭐 했는지 물어보는데 직원은 사생활을 침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오지랖은 어떤 경우에서든지조심스러워야 한다. 대책없는 지적은 절대 안된다. 상대방의 입장과 기분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와 존중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래도 일단 내가 챙겨주고 보는 그 열정. 그 열정이 좋다. 나는 이래서 한국 사람이 좋다. 외로우면서도 외롭지 않은 이 분위기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