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이김 Oct 12. 2020

라떼는 과학이다


아빠의 질문은 가뜩이나 인성이 파탄나있는 김지영의 심기를 몹시 거슬리게 했다. 아빠는 용돈을 어디에다 썼느냐, 총 학점 평균이 얼마냐, 지금 누구를 만나러 가느냐 등의 질문을 잊을만 하면 슬그머니 던져 없어도 될 긴장감을 조성했다.


질문하는 것 자체가 화낼 일이라고 내가 여러번 말해주었지만 질문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아빠 생각엔 변함이 없다. 게다가 본인이 하는 질문은 아주 시시콜콜한 질문으로 부모라면 자식에게 할 만한 것이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아빠의 이런 사고방식은 필연적으로 98년생인 김지영이 ‘라떼’라는 단어를 사용해가며 비난에 가까운 조롱을 하게 만들었다.


아빠의 부서엔 우리집 98년생 김지영과 동갑인 막내 사원이 있다. 마이스터고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바로 취업에 성공한 그는 자식 가진 아빠라면 한번쯤 부러워할 똘똘한 청년이었다. 우리집도 아빠의 거듭된 칭찬으로 그 청년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내 사원과 아빠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가끔은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다. 특히 김지영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인류애를 잃어버린 표정으로 쯧쯧거렸다.



- 막내 고 놈이 우리 지영이랑 동갑이거든. 그래서 내가 궁금해가지고. 니는 돈 관리는 어떻게 하노, 물어봤지.


- 엄마한테 돈을 다 맡긴다고 하데. 그래서 한달에 돈을 얼마정도 쓰냐고 함 물어보니까 —



아빠는 막내 사원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된 사실이 즐거운지 우리에게 재잘재잘 이야기했지만 내가 둘러보니 아빠를 제외한 모두는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지만 차마 말을 못 꺼내고 있을 때 그 말을 해주는 것은 우리 엄마다.



- 그런 걸 왜 물어보노? 그걸 다 대답해주고 갸가 성격이 좋네.


- 안 귀엽나. 우리 지영이랑 동갑인데.



막내 사원과의 대화가 즐거웠던 이유는 월급을 모두 부모님께 맡긴다는 그의 말이 아빠에게 행복한 희망고민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아빠는 나중에 김지영이 취업을 하면 돈 관리를 어떻게 해줄까 하는 상상을 품는 것 같았다. 물론 막내 사원이 그랬으므로 김지영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미신에 가까웠기에 본인만 김칫국을 들이킨 것이다.



- 난 엄마아빠한테 돈 안 줄건데?


- 뭣이.


- 내 돈인데 그걸 왜 주노.


- 아빠한테 선물도 사주고 해야지 인마!



김지영의 이런 냉랭한 반응에 아빠는 섭섭하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지만 김지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 후로도 막내 사원의 성공담은 김지영과 98년생 동갑이라는 이유로 계속 회자되었다. 김지영 입장에서는 질문을 가장한 취업 압박이라고 느낄만 했다.



- 얼마나 좋노. 시간 낭비 없이 바로 취직도 하고. 우리 지영이는 앞으로 어쩔런지.



아빠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별로 표정이 안 좋아지는 김지영을 보고, 아빠를 찰싹 쳐서 입모양으로 '그만하세요'를 벙긋거렸지만 아빠는 '왜?'라고 도리어 묻기도 했다. 아빠는 정말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것일까? 렇게 아빠가 신경을 긁는 발언을 한다고 해서 김지영이 침울하게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김지영은 아빠의 행태를 보고 ‘라떼는 과학’이라는 발언을 했다.   



- 이래서 라떼들은 안된다. 라떼들은 자기가 라떼인지 모른다니까.



아빠는 라떼가 뭔지 잘 모르는 눈치인데 그걸 다행스럽다고 해도 될 진 모르겠다. 내가 한번 설명해준 적이 있으므로 뭔지 모른다기 보다는 본인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해 제대로 듣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 빠르게 달라졌기에 기존에는 그냥 할 수 있었던 질문도 지금은 조심하고 볼 일이다. 하지만 아빠와 조심성은 거리가 많이 멀다.



- 아빠, 나이 어린 사원들한테 사적인 이야기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 일 못하면 혼낼 수도 있지, 인마!



조심은 커녕 가끔 맥락을 전혀 읽지 못해 뜬금없는 곳을 짚고 헤엄치는 아빠다. 여기서 아빠는 내가 말한 '사적인 이야기'를 일을 불성실하게 하는 직원에게 따로 불러서 하는 이야기로 오해했다. 아무리 우리 가족이 각자도생이라고 하지만 문제점을 알고도 아빠를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다. 악의 없는 질문으로 얼마나 젊은 직원들의 속을 긁어댔을지 생각하면 살짝 아찔해진다.



- 그거야 당연하죠. 그거 말고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어본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아빠는 웬일로 당당하게 대답한다.



- 아빠는 아니지.



말없이 듣고 있던 엄마와 지영이는 그 말을 썩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본인이 그렇다니 말을 아꼈다.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아빠는 갑자기 덧붙였다.



- 그런 건 물어보지. 결혼을 왜 아직 안 했노?



김지영은 그 말을 듣더니 해탈한 웃음을 지었다. 김지영의 웃음을 가장 간단하게 글자로 표현하자면 자음 두 개 'ㅋㅋ' 정도인데, 정말 웃기기도 하고 다소 체념한 듯한 톤의 웃음이다.

 


- 답 없다.



김지영은 그 이상 무엇이라고 말할 의지조차도 상실했는지 자기의 소굴로 들어가버렸다. 엄마는 아빠를 가르쳐주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지 김지영과 비슷한 논조의 코웃음을 흘리고 말아버린다.


결국 아빠를 구원해줘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다.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온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경우엔 가르치겠다는 목표보다도 그냥 똑같은 방법으로 당하게 하는 것이 낫다.



- 아빠.


- 왜?


- 어디가서 우리 아빠라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 왜!


- 제발 어디가서 그런 것 좀 물어보고 다니지 마세요. 그런 걸 왜 물어봐요?


- 좀 물어볼 수도 있지.


- 아빠는 연봉이 얼마에요?


- 그런 걸 왜 물어보노?


- 그러니까 그런 걸 왜 물어보죠?



가끔 집에 내려갈 때 아빠와 근황 토크를 해보면 아빠는 본인이 말을 아끼고 있다고 했다. 아빠는 말이 많다기 보다는 질문이 많은 사람이므로 질문을 아끼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정말인지는 98년생 막내 사원 외 젊은 사원들이 대답해줄 수 있을 것인데 아쉽게도 물어볼 수는 없다.


다만 우리집 98년생 김지영 앞에서는 요즘 질문을 가급적 자제하는  같긴 하다. 김지영도 라떼는 과학이니 어쩔  없다며 어느 정도는 자체 필터링을 해서 아빠 말씀을 듣는다. 아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김지영이 취업하면 엄마아빠에게 자산 관리를 맡길 것이라는 믿음보다 라떼는 과학이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차마을 어부 김명실 할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