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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Oct 24. 2020

일요일 오후의 오래된 돗자리


화장품 편집샵이 주기적으로 세일을 알리면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화장품을 지르게 된다. 세일할 때 사야한다며 몇 개 집어들면 이벤트 상품을 증정하는 금액 한도를 거뜬하게 넘는다. 그 날 이벤트에선 사은품 여러 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당장 어느 것도 마땅히 필요하지 않았지만 언제 누구와 함께 공원 잔디밭에 갈 때 쓰면 되겠다 싶어서 작게 접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돗자리를 선택했다. 그 후 4년 동안 2번의 이사가 있었고, 돗자리는 이 박스 저 박스에 담겼다가 신발장 안으로 수납되기를 반복하며 기억 저 아래에 동봉되었다.






벌써 집 근처 공원에 책을 들고 간 것이 몇 주째 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가서 보니 매번 일요일 오후였다. 처음엔 완독까지 막판 스퍼트만을 남겨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한 권이 유일한 장비였다. 전염병까지 창궐했으니 이제 세상 망할 일만 남았다고 떠들어도 주어진 오늘은 살아내고 봐야 하는지라, 연이은 실내 생활이 지겨워 일요일 대낮에 공원에 처음 나가 보았다.


중앙 지점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표시한 테이프가 붙여진 낮은 나무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의자 앞을 사람들이 아무리 지나다니건 간에 책이 너무 잘 읽혔다. 언제 다시 올 지 기약은 하지 못하고 기분 좋게 자리를 뜬 후 단 일주일 만에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를 들고 일요일 오후에 이 곳을 찾게 될 이유가 생겼다.


고등학교 친구 1명이 갑작스레 서울에서 일을 하게 됐다. 알게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웃긴 건 그녀는 나와 단 한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다. 학교를 다닐 때 우리는 친구의 친구로서만 연결 고리가 있었다. 친구의 친구로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딱 한번 만난 것을 인연으로 우리는 지금까지도 쭉 연락을 하고 지냈다. 이 친구가 나에게 서울에 오게 됐다며 연락을 하더니 당장 이번 주 주말에 같이 공원에서 노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의 단짝 친구들은 현재 근황도 모른 채 살아가는데 예전엔 '친구'라는 바운더리 너머에 있던 이 친구와 공원에 소풍을 오게 된 것이다. 친구라는 바운더리를 넘긴 했어도 경계의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것은 나도 그 친구에게 있어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포장한 김밥과, 음악을 울리게 할 아이패드와, 안 지 10년이 넘은 고등학교 친구의 친구, 이젠 확실히 나의 친구와 공원에 다시 오게 됐다.


이 쯤 되어서야 잊고 있었던 그 문제의 돗자리가 생각났다. 화장품 편집샵에서 받은 후 3개월 이내에는 사용할 줄 알았던, 그러나 무려 4년 동안 박스 저 아래나 신발장 한 구석에 처박혀 똑딱이 단추 한번을 풀지 못한 돗자리는 중고 신인이라고 불러야 어울린다. 신발장 안 구석에 날 언제든 꺼내달라는 듯 반듯하게 서 있던 돗자리를 꺼내면서 생각했다. 당시로썬 힙한 디자인이었겠지만 지금은 한물 간 디자인처럼 보이는 이 중고 신인 돗자리야말로 그 친구와 나의 관계를 제일 잘 상징하는 것 같다고.


분명 존재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곧 잊어버렸고, 더 알고 싶은 마음도 당시엔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또한 흘러가버린 이후에야 아직도 내게 남아있던 그것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다. 아직 한번도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한 것, 즐겨 보려고 시도조차도 해본 적 없던 그것.



그 날 오래된 돗자리는 그 친구와 함께 활짝 펴졌다. 우린 어쩌다가 친했던 친구들하고도 멀어지기 십상인 이 시기에 공원에서 함께 돗자리 위에 있게 되었을까를 생각했다. 오래된 돗자리의 특징 중 하나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그 인과 관계를 되짚는 것이 어렵다. 시간이 흐르고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친구가 내 옆에서 같은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나와 희박한 연결 고리라도 있다면, 그것이 설령 지금은 '나의 것'의 바운더리에서는 살짝 벗어난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 지나서 나가 떨어진다면 또 그런대로 내버려 두면 된다.


그 중에선 금방 나가 떨어질 것 같아도 의외로 굳건히 버티는 것이 있다.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든, 어쩔 땐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짜증이 나든, 어쨌든 최대한 간직하고 있어보려 한다. 시간이 흐르면 오래된 돗자리를 펼 순간은 반드시 온다.




* 약 한 달 전, 지금만큼 쌀쌀해지기 전에 가을날 돗자리 위에서 메모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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