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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Dec 02. 2015

왜 나는 나를 기록하는가.

미완성이어도 괜찮은 '나' 그리고 이 '글'

#1.

2015년 12월, 한 해의 마지막 달.
그 첫 날에 난 어떤 글을 쓰고싶은 건지
높게 묶어낸 머리, 편하게 입은 츄리닝, 얼굴엔 갓 냉장고에서 꺼낸 차디찬 팩을 붙이고선
겨울 감성 가득한 음악을 틀어놓고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걸까.
글을 쓴다는 것, 나는 이 시간을 통해서 나를 '응시'하고자 한다.
그런 날이 있다.
글 안쓰고는 못베기는 날
딱히 무얼 쓰고픈지 잘 모르겠는데도 일단은 앉아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던, 종이 위에 펜을 잡은 채로 이것 저것 끄적여보는 날.
그런 날, 자세히 나를 살펴보면 무언가 하고픈 말이 있다.
마구 엉켜있는 생각 뭉치로부터, 무언가 정돈시키고픈 것들을 찾는 시간이 시작된다.
글쓰기는 내게 그런 시간이다.


#2.

그날의 '나'를 기록해 둔 흔적들을 보다 보면
잊고 있었던 수많은 감정과 생각이 가슴 한 구석에 차오른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
그래서 더 '기록'이라는 행위를 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버릴 하루, 순간이라도 잠시 한 템포 쉬어 기록해두면
그 날, 그 순간의 나에게도, 더하여 그 어느 날의 나에게도 선물이 될 수 있으니깐.
내가 아니면 남기지 못할 이 흔적들이 꼭- 껴안아두고플 만큼 소중하다
이 순간만큼은 내게 솔직해지고 싶다.
찌질한 생각도, 약해진 모습도, 어리벙벙한 채로 있을때도,
그냥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고 싶다.
때로는 마주하기 싫다는 이유로, 글을 쓰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다시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는 이유는
내가 나를 바라봐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더 외로워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외면하는 순간
'알 수 없는' 이라고 표현했던 '묘한 감정'에 괜히 앓곤 했던 그 나날들이
알려주었다.
그 어느 누구도 널 대신해서 아니, 너만큼 너를 잘 알 수 없을 거라고.
그러니 너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평생 지켜나가야 하는 거라고.

#3.

자연스럽게 되돌아 보는 지난 겨울날.
국가고시도 끝났다, 취업도 했다, 어찌보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놀아도 어색하지 않을 그런 시기였다.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유럽 여행을 가기에, 혹 했었다.
다들 가는 유럽 여행, 나도 지금 가야하는게 아닌지.
내게 물었다. 정말로 하고픈게 무엇이냐고.
나는 배우고 싶었고, 도전하고 싶었다.
좋은 경관, 새로운 환경 물론 여행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 또한 많겠지만
그보다도 '내적인 성장'에 대한 열망이 컸고,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서울로 향했고, 때때로 홀로 찜질방에서 잠을 자며 햄버거로 끼니를 때웠다.
인문학 수업과 성장통 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백일 간 꾸준히 책을 읽고 내게 질문하며 '나'를 관찰했다.
'크고 싶은' 여리디 여린 스물 셋의 소녀였다.
'성장통' 면접에서 마지막으로 하고픈 이야기가 있냐는 말에 번쩍 손을 들었다가
하고픈 말을 다 하기도 전에 흐르는 눈물을 참아내지 못했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내 자신에게도 예민하게 굴었다.
건강한 성장이라고 하기엔, 나도 모르게 날카로이 채찍질 했던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 그 어느 것을 배워도 '공허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순수한 질문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이기적인 질문을 던지는 나를 발견했고, 그 순간
'왜 나는 이렇게 무언가를 채워넣으려고 하는가?' 란 물음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4.

어렴풋하게 깨달은 해답은 '사랑'이었다.
2015년, 마음 속 품고 시작한 키워드가 '사랑'이었던 이유는 그 어떤 배움과 성장도 나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결국은 공허해진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은 채로, 부족한 부분만을 바라보며 성장하길 바라는 것은
오히려 생채기를 남길 수 있었다.
이 생채기를 치유해야겠지 싶어 매일 내게 귀기울이는 시간을 가졌고, 기록했다.
언제 설레임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지며, 어떤 느낌에 유독 집중하는지,
또 어떠한 감정에 취약한지 나아가 아주 사소한 것에도 감사해보기로 했었다.
그 매일의 시간이 쌓여 나는 그저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고, 내 존재의 소중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하루의 끝자락 '충만함'으로 가득 찬 상태로 매일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


#5.

하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매일 남기던 나만의 기록이 뜸해지기 시작하며
새로운 환경, 첫 사회생활에 뛰어들며
내게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 남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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