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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Nov 24. 2015

첫 눈이 두려워졌다.

찬 바람이 떠민 산책길로부터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선 순간, 코 끝을 쨍-하게 하는 겨울바람을 처음 맞이했다.

"와- 정말 겨울이다, 곧 눈 오겠는데?"라 말하면서도 코를 훌쩍이게 하는 차디찬 바람이었다.

조만간 하얀 첫 눈을 데리고 올 것만 같은 이 겨울바람은 기숙사로 돌아온 나를 잠못들게 만들었다.

이상스럽게도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던 것 같다.

널부러져 있는 책상 위에 올려진, 읽다만 책을 허겁지겁 읽어내려갔다.

몇 장 남지 않았던 터라 금새 읽어낸 후, 예전에 봤던 또다른 책을 펼쳐 밑줄 그어두었던 문장들만 다시 읽어나갔다.

그렇게 나는 13시간, 쉴 틈 없이 일했던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감기는 눈꺼풀을 견디지 못할 때까지 책을 읽다 잠들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고, 그렇게 하고 싶었다.


 보통 휴일에는 부족한 잠을 보충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걸고선 늘어지게 늦잠을 자곤 한다.

6시간정도 잠을 자다가 꿈 때문인지 눈이 떠졌고, 쉽사리 다시 잠을 청하지 못하였다.

더이상 내게 잠을 허락하면 안될 것 만 같은 느낌과 더불어

어제 만났던 그 찬 바람을 맞으며 조금 걸어야겠다, 싶었다.

머리를 질끈 묶고, 미리 준비해두지 못한 겨울 패딩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선 밖으로 나섰다.

역시나 쨍-한 겨울 공기였다.

아직은 낯선 이 공기를 맞으며 나는 느리게,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이어폰은 챙겼지만, 음악을 듣고싶지 않았고 필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엔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이 산책이 '나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랬다.

왜 너는 이 차디단 겨울 바람에 놀랐는지,

어느덧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는 신호인 이 겨울 바람으로부터 무엇을 느꼈길래

새벽녘 허겁지겁 책을 읽어 내려갔고, 아침엔 그렇게 좋아하던 잠을 칼같이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는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더이상의 소음이 들리지 않을 만큼 내게 집중하였다.

어쩌면 숨겨두고 싶어 직시하지 않았던 '두려움'이란 감정이 내 발걸음만큼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나 잘 살아가고 있는게 맞을까?'

'이렇게 그냥 저냥 살다가 가버리면 어쩌지?'

'정말 이루고 싶은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와 같이 흩어져있던 물음표들이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두려움'이란 감정 아래로.


 여름 바람이 가을 바람으로 바뀔 때,

푸른 나무들이 저마다의 단풍색을 입혀나갈 때,

눈이 올 것만 같은 찬 겨울바람을 느꼈을 때와 같은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에서 '과연 나도 변화하고 있는가?'란 물음표 아래

'알 수 없는'이라고 표하는 묘하고도 불편한 감정에 잠시간 멎어있곤 했던 것이다.  

일에 쫓겨 살아가던 나는,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고 마주할 시간을 주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또한, 이미 마음 한 구석에 들어와 앉아있는 그 감정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 당연하다.

두시간여의 산책은 내게 '두려움'이란 감정을 인정하게 해주었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져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한결 평온해질 수 있다는 것은 쨍-한 찬 바람이 내게 준 선물이지, 싶다.

마냥 첫 눈에 설레기만 했던 지난 날의 '나'도,

첫 눈이 내려버릴까, 두려워진 스물 넷의 낯선 '나'도

모두 다 '나'임을...


 이제 시작할 겨울날의 문턱에 서서

나는 이제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할지를 고민할 것이다.

어렴풋하게 보이는 '지속성'과 '실행'이라는 해결책의 실마리를

나만의 방식으로 구체화시켜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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