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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Apr 22. 2019

생애 첫 유방 초음파 검사를 했다.

 [어쩌면 환자 경험] 가슴에서 '작은 혹'이 만져졌거든요.

네이* 검색창에 '잠실 유방 외과'를 검색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존재감이 없었던 '작은 혹'이 갑자기 만져졌기 때문이다. 위치는 오른쪽 가슴 아래였다. 잠시 현실을 부정하며 내가 잘못(?) 만진 거라고 믿고 싶었다. 분명 없었는데, 볼록한 이 혹이 대체 왜 생긴 걸까. 설마 '암'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최근에 몸이 부쩍 피곤했던 것, (무려) 몇 달 전에 저혈압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등을 떠올리며 '혹시나'라는 두려움이 커졌다(내가 두려움의 씨앗에 물도 주고 비료도 주고 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키워냈다). 괜히 '혹'이 생긴 부위에서 둔-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더 찝찝했다.


이 주관적인 느낌을 의료진에게 전달하고 하루빨리 가슴 '혹'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의사의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들은 후에야 두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조직 검사가 필요한다거나 그 결과가 심각하다고 했을 때 어떻게 대범하게 그 과정을 겪어내야 할 지도 고민했다. 그만큼 생각이 많았고 혼자 산으로 갔다 바다로 갔다 어두운 들판에서 또르륵 눈물을 흘렸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Photo by Pablo Varela on Unsplash


내가 해야 할 일은 '믿고 갈만한 병원'을 찾는 일이었다.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다면, 빠른 시일 내에 진료를 볼 수 있는 병원이어야 했다. 네이* 검색을 하되, 주로 카페 후기를 참조했다. 실제 그 병원을 이용하고 남긴 생생한(광고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 들을 빡빡 긁어 읽었다. 글을 읽으며 '이 모든 게 남 얘기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시무룩했다가도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그래서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지.'에 대한 답을 내리고자 했다. 그렇게, 꽤 오랜 검색 끝에 여의사가 진료하는 유방 외과에 전화를 걸었다. 카페 검색 결과 후기가 가장 좋은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혹시 당일 진료도 가능할까요?"

"5월까지 진료 예약이 다 잡혀있어요."

내게 왜 진료가 필요한지 묻지도 않고 당일 진료 불가, 가능한 진료 예약 날짜는 5월 이후라고 말했다. 대형병원만 예약 잡기 힘든 줄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다니. 대형병원 안 개구리... 유방 외과에서 진료를 받는 환자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 1차로 놀랐고, 2차로 인기 있는(후기가 좋은) 병원은 다 이렇게 예약 잡기 힘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절망했다.


약간의 체념을 한 채로, 플랜 B로 정해둔 유방외과에 전화를 걸었다.

"유방 검진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혹시 당일 진료 가능할까요?"

첫 번째 병원과 마찬가지로 예약이 많이 밀려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신, 내게 "어떤 것 때문에 진료가 필요하세요?"라는 질문을 했다.

불안함을 한껏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가슴에서 혹이 만져져서요. 크기도 꽤 크고 둔하게 불편감이 느껴져요. 빨리 검진을 받아봐야 할 것 같아요(울먹)."

"아, 혹을 언제 발견하셨어요?, 빨리 진료를 보는 게 좋겠네요. 잠시만요. 취소 자리가 며칠 후에 있는데 그 날로 예약 해 드려도 될까요?"


마음이 급했던 나는 오늘 당장 취소 자리가 생겨도 바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병원 측에선 메모를 남겨놓고 만약 시간이 비게 되면 연락을 주기로 했지만 아쉽게도(?) 당일 취소 환자는 생기지 않았다. 대신 운이 좋게도 이틀 후 누군가가 취소한 시간에 진료를 보기로 했다. 그렇게 병원에 가기까지 이틀 밤을, 거울 앞에 서서 혹을 한 번씩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이면 감쪽같이 사라질지도 몰라. 그럼 병원 안 가야지.'라며 김칫국도 마셨다. '별 게 아닐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과 '별 거면 어떻게 하냐.'라는 막연한 절망 사이에서 그렇게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병원 가는 날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홀가분해질 수 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만약 소견서를 받고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머릿속에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수십 번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지금의 이 무거운 발걸음이 가벼운 발걸음이 되어 병원 밖을 나설 수 있으면 좋겠다며(끝까지 희망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네다섯 명 정도의 환자가 진료 대기 중이었고, 나는 예약 시간보다 다소 일찍 도착했기에 간단한 진료 상담 카드를 작성하고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제일 어리네. 다들 무슨 이유로 진료를 받으러 온 걸까.'

'병원 시설이 엄청 깔끔하고 직원들끼리 관계도 좋아 보여.'

'아까 초음파 검사실로 들어간 분은 언제 나오는 걸까. 내가 다음번 순서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무표정이었다. 유방 초음파를 찍기 위해 상의를 탈의하고 병원에서 제공하는 가운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괜히 환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무장 해제가 되어 이들이 하라는 데로 나는 모든 것을 답하고 행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빨리 결과를 듣고 다시 자유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나저나 내 이름은 언제 불리는 걸까.'


그때, 병원 직원 분(어떤 직군인지 정확히 알 순 없었다)이 텀블러에 마실 차를 준비하며 내게 말을 건넸다.

"일찍 오셔서 많이 기다리고 계시죠."

별 말 아니었지만,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나의 존재를 그녀가 인식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 네...(괜찮아요)"

이 정도 기다리는 건 할 만하다는 걸 옅은 미소로 표현했다. 더 이상의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역시나,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림이 길어지며 멍 때리고 있던 중, 내게 말을 건넸던 그 직원 분이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분께 '시간이 충분히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분은 추가로 잡힌 검사를 꽤 긴 시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직원분은 혹시나 오늘 검사를 받고 갈 충분한 시간이 없다면 내일로 검사 시간을 잡아줄 수 있다고 했다. 그분께서 검사를 다 받고 가도 괜찮다고 말하자 (나와는 다른 가운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아마도 초음파 촬영은 아닌 듯 보였다), 직원분은 내가 할 초음파 검사가 끝나고서야 가능할 것 같다며  대기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양해를 구했다.


'참, 친절하시네.'

그분은 병원에 온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신경을 쓰고 있어 보였다. 내게도, 내 옆에서 대기하던 분에게도.


곧, 내 이름이 호명되었고 초음파 검사를 하러 들어갔다. 내 인생 첫 유방 초음파였다. 처음 보는 의료진 앞에서 가운을 벗고 찰나의 민망함을 느꼈으나, 드디어 혹의 정체를 알 수 있다는 기대감에 씩씩하게 자세를 취했다. 의료진은 건반을 두드리듯, 유방 곳곳을 촉진했고 동시에 내가 발견했던 혹과 함께 여러 곳이 마킹당했다. 분명, 진료 전 환자 문진표를 작성할 때 '유방암 가족력이 없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유방 촉진을 받으며 같은 질문을 또 받았다.

"유방암 가족력 있으세요?"

'아까 문진표에 분명 없다고 체크했는데, 왜 또 물어보는 거지. 암 같다는 건가.'

"아니오."

심장이 쿵쾅거리며 점차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제발 별 게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제발...' 속으로는 애원을 하고 있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왜 내가 발견했다는 혹 말고도 자꾸 체킹을 하는 건지 불안감이 무서운 속도로 증식했다.


그때, 가깝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외과 원장님이 옆에 와 앉아계셨다. 그리곤, 초음파로 유방 곳곳을 확인하며 화면으로 보기에 조금 이상해 보이는 부분들(초음파 화면 상 하얀 조약돌 또는 찰흙 덩어리처럼 보이는)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말이 조금 빠르긴 했으나 누가 들어도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써가며 얘기해주셨다. 다행히도 '물혹'이라 일컫는 것들이 여러 개 보이지만, '조직검사'와 같이 추가 검사가 필요한 것은 전혀 없었다. 내가 가장 떨리는 마음으로 알고자 했던 오른쪽 가슴 하단에 볼록 솟아난 혹의 정체는... 지방종이었다. 지방종은 몸 곳곳 어디 든 지 생길 수 있는 것이고 크기가 점점 더 (신경 쓰일 만큼) 커지는 경우가 아니면 굳이 절개를 해서 제거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이틀간 꽁꽁 둘러매고 있던 불안감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과장을 약간 더해서 다시 태어난 느낌이 들었다.


꽤 긴 시간 동안 속 시원하게 유방 곳곳을 초음파로 검진하고, 유방암 자가 진단법까지 제대로 배우고 나왔다. 역시 글로 보고 배우는 것보단, 전문가에게 직접 배우면서 해보는 게 직방이다. 지금 만져지는 것들은 다 '물혹'이고, 해부학적 위치상 다소 단단하게 만져질 수밖에 없는 어느 '한' 부분은 혼자 검진하다가 놀라지 말라며 위치를 기억해 두라고 하셨다. 어느 것 하나 '걱정할 게 없는' 유방임을 확인하고 그때서야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애매하게 참고 있던 숨을 마음 편히 내려놓은 느낌이랄까.


여전히 내 가슴 아래엔 작은 혹이 자리 잡고 있지만 크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너 안 사라지고 거기에 잘 있구나.' 말을 건넬 만큼 벌써 친해졌다. 이렇게 지방종과 함께 살게 되었다.

     


<가슴에 멍울이 잡혀 유방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영상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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