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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Sep 18. 2015

괜찮아지려 쓰는 글

나를 다독이는 한 가지 방법

" 그리고 나서 자리에 누워 가장 편안한 자세로 오늘 일기를 써보렴. 너무 심각하지 않게.
 가벼이 써나가는 글 속에서 어쩌면 너를 괴롭히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그 일들, 그 단어, 그 눈빛이 떠오를지도 몰라.
 아프겠지만 그것을 잡아라. 오늘이 아니어도 좋아. 너무 아프거든 하지 않아도 괜찮아."

핸드폰의 사진첩에 담긴 한 책장 속의 글귀.
오늘은 이 글귀에 이끌려 글을 쓰고 싶어졌다.
너무 심각하지 않게.
가벼이, 가벼이 써나가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얼굴엔 팩을 한 채로.
홀로 심야영화를 보고 온 덕에 우울했던 오늘의 기분은 정리된 채로.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채로 말이다.


#2.

거울 속의 나는 코 끝이 빨갛고, 눈도 한껏 충혈된 채로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조절할 새 없이 차오른 눈물로 누가봐도 울었구나, 싶은 '나'였다.
손으로 콕콕 찍어내어 흐르기 전에 닦아내었다.
콧물이 나와 훌쩍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참아보려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톡 하고 닿기만 해도, 아니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엉엉-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 순간엔 내가 왜 이러는지 '이유'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많이 힘들구나..' 날 달래볼 뿐이었다.
그것도 조금은 급하게.
들키고 싶지 않은, 눈물이었으니까.
잠시 자리를 피하고도 싶었지만, 그럴 여유도 없단 생각에 꾸-욱 눌렀다.

잘 참아지지 않았다.
몇 번이고 눈물이 고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3.

지금 울고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오늘의 나를 글로 가벼이 기록해볼 뿐이다.

무엇이 새빨간 눈을 지닌 '나'를 거울 앞에 마주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해본다.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그 느낌.
어쩌면 정말 내가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바로 그 느낌이
내 마음을 스치는 순간, 눈물이 고였던 듯 하다.

나도 정말 잘 하고 싶은데 아니, 잘하는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해야할 일들을 깔끔히 마무리 하고픈데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만들고싶지 않아서
아둥바둥 애써보았지만
오늘은 애만 쓴 채로 끝나버렸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순간의 '나'는 과정도 결과도 해내기에, 받아들이기에 벅찼나보다.

마음 편히 한 숨을 내쉬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갈 길이 멀구나, 한 참 멀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것이면서도 자꾸만 잊는다.
겸험이 쌓여 숙달이 되고 지혜가 되는 것임을, 이는 반드시 시간의 세례가 필요함을.
어느 누구도 쉽다 말하지 않았음을.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음을.

알면서도 힘든 것은 사실이다.


#4.

잔잔한 영화가 보고 싶어 끌리는대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 홀로 영화를 보는 것은 또 처음해보는 경험이었다.
오로지 영화에만 집중하고나면 나를 정돈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리곤,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내가 기특했다.
스스로를 달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토닥토닥.


#5.

'뷰티 인사이드'를 예매하고 편의점에서 마실 카페라떼와 오감자를 사들곤
극장 한가운데 자리잡고 앉았다.
커다란 스크린을 마주하고 있자니 난 그저 그 스크린에 몰입할 뿐이었다.
자연스러운 그 과정덕에, 피곤했지만 영화관을 찾은 선택이 옳았구나 싶었다.
혼자 그리고 늦은 시각이란 이유로 잠시 머뭇거렸음에도 말이다.

영화는 내게 '오늘의 나'에게 조금 더 집중해주면 어떠겠냐는 메세지를 전했다.
오늘의 나를 조금 더 예민하게 느껴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란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나와는 분명 다른, 오늘의 나에게 말이다.
지금의 나, 이 순간의 나, 지금 내가 하는 생각과 감정을 담고 있는 나는 다시 오지 않으니깐.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있지 않나 싶다.
잘써야겠다는 부담감은 내려두고, 그저 가벼이 가벼이,..
글로 남겨볼 따름이다.

또한, 영화는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에 살짝쿵 불을 지피기도 했다.
특히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에 결정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매일 모습이 바뀌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음은 무얼 의미할까.
첫 끌림은 외면에서 올지라도 사랑하면 할수록 내면에 끌리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한다는 것,
그 매일 매일은 어쩌면 영화에서처럼
매일 다른 사람이 만나는 것과 같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느껴내고자 하는 노력이 있는 사랑이 진짜일 수 있겠구나.
동시에 서로의 알멩이를 나누고 사랑할 수 있다면.
캬-


#6.

얼굴에 붙인 팩이 다 말랐다.
이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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