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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an 01. 2018

복기(復碁) 해보는어느 날의 나이트 근무 <1>

병동에 들어서면 특유의 냄새가 먼저 코끝을 자극해 온다. 신입 간호사 시절에는 나를 긴장하게 만든 냄새였지만, 이제는 내게 업무가 시작될 것이란 걸 알려주는 신호탄과도 같다. 병원 냄새를 밀어내고 복도를 지나면서 병동 상태를 한 번 쓰윽, 먼저 살펴본다. 병실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진 않는지 어디서 큰소리가 나진 않는지 등 온갖 감각을 내세워 과연 나의 밤 근무가 평온할지를 점쳐본다. 다행히 어떤 날엔 복도에 사람이 거의 없고 눈에 보이는 발걸음들도 빠르지 않다. 하지만 어떤 날엔 휴대폰을 붙잡고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환자의 가족들을 보기도 한다. 물론 이젠 꽤 익숙해진 모습들이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한 갈래로 묶고 나면 어느덧 거울 속엔 간호사가 서 있다. 명찰과 시계를 착용하고 휴대용 플래시, 종이테이프와 삼색 볼펜과 형광펜 그리고 매직까지. 두 주머니 가득히 챙기고 오늘도 근무를 나선다.


나는 오늘 어떤 간호사일까.


PM 08:40, 저녁 여덟 시 사십 분. 이브닝 간호사들이 각자 담당하는 환자들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시간이다. 같은 시간 병동 스테이션에는 한두 명의 간호사가 앉아 있다. 다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몰두해 있는 경우가 많아,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누기도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땐 누군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안녕.” 혹은 “안녕하세요.” 인사한다고 해서 기분 나빠해서는 안 된다. 그냥 자연스럽게 ‘아, 지금 엄청 바쁘구

나.’ 하고 넘길 수 있어야 한다.


출근하자마자 바로 환자를 간호하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나이트 간호사의 업무 시작 전, 병동 내에 물품을 확인하고 인계받는 것으로 그날의 첫 번째 업무를 시작한다. 의료기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혹은 어느 병실에서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기록한다. 그리곤 마약 금고에 있는 약품들의 개수와 상태를 확인하고 장부에 적는다. 간호사에게 있어 정확히 확인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대충 보거나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것이 습관 되다 보면 언젠가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 파악도 마찬가지다. 정규 근무 시간에 맞추어 출근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종양내과의 경우 보통은 수술할 수 없는, 암이 여러 곳에 전이가 된 환자들이 입원하는 병동이다. 이 때문에 전이 부위에 따라 다양한 추가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이것을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는 환자들이 많다. 그래서 환자들은 주로 과거력이 길고 복합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만약 환자가 어떤 과거력을 가졌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언제든 위기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지금 왜 입원을 했고 어떤 치료 과정 중에 있는지,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살피며 간호해야 하는지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환자에게 제공하는 간호의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쉽게 말해, 환자들을 간호하는 간호사로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환자 파악’이 정말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 명의 간호사가 담당하게 되는 약 13명의 환자 파악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정규 근무 시간에 시쳇말로 ‘똥줄’ 타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일찍 출근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그래서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기본 열 시간에서 바쁜 날이면 열두 시간도 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환자 파악을 해보니, 오늘도 환자분들의 상태가 좋지 않다. 언제 출혈이 발생할지 모르고 열이 나면서 혈압이 떨어질지 모르며 산소 요구량이 증가할지 모른다. 다년간 겪은 경험을 통해 예측 가능한 부분들이 생겨나기도 하였지만, 오늘은 이 세 가지 경우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처치해야만 한다. 마음이 무겁다. 이브닝 번인 후배 간호사에게 인계를 받기 때문에 더 부담스럽기도 하다. 혹 다음 날 시술 준비나 퇴원 준비에 미흡한 부분이 있거나,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미처 후배 간호사가 살피지 못한 부분을 내가 보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에게 오늘 어떤 변화가 있었고 이에 따라 어떤 처치가 이루어졌는지, 내가 밤 동안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있는지 등등 단지 인계를 듣는 것만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도리어 질문을 해서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이때 조금 더 신경 쓰는 부분은 감정을 배제하고 말하는 것이다. 혹여나 ‘네 인계가 충분치 못하다.’라는 이유로 감정 섞인 비난을 할 이유가 없다. 후배 역시 그런 비난을 받을 이유 또한 없다. 다행히 오늘은 큰 무리 없이 인계를 받을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39도를 넘는 고체온으로 종일 온몸을 덜덜 심하게 떨며 힘들어했다는 환자가 있다. 오늘 아침 퇴근할 때만 해도 특별한 이상이 없었는데, 그 이후 혈압까지 떨어져 그에게는 승압제가 지속적으로 투약되고 있었다. 고열로 인해 정신까지 혼미해졌다는 인계를 받았지만, 지금은 그나마 평온해 보였다.


오늘 아침에 많이 힘드셨죠. 지금은 많이 나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부디 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라며 한마디 건네 본다. 혈압을 높이기 위한 승압제가 꽤 고용량으로 그에게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혈압은 정상 수치에 겨우 턱걸이하고 있어 걱정스러웠다. 만약 승압제를 사용하는데도 혈압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더는 손쓸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전에 측정했던 혈압 수치보다는 더 높게 나왔다.


“혈압은 더 안정되셨어요. 체온도 정상이고요. 통증은 좀 어떠세요?”

기계를 통해 소량의 진통제가 지속해서 주입되고 있었지만, 그는 간헐적으로 느끼는 강한 통증에 힘들어하곤 했다. 내 질문에 그가 너무도 선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아픈 거 영점이야, 영점.”하고 미소 지었다.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지 자주 확인해야 해서 제가 새벽에 또 올 거예요. 혹시 그전에 불편한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수많은 환자들을 경험하다 보니, 이제 환자의 말하는 태도만 바도 대략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파악이 되곤 한다. 지금 이 분 같은 경우엔 정말 선한 기운을 부드럽게 풍기는 분이었다. “네, 수고하셨어요~” 언제나 고마움을 표현해 주시는 분. 이토록 선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암에 걸려 삶의 끝자락으로 몰리며 고통받아야 한다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부디 남은 생이 덜 고통스러우셨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물론 내 바람대로 되지 않을 것이란 걸 이제껏 많은 환자분의 모습을 보며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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