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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an 10. 2018

안녕히 가세요.

수십 번 환자를 떠나보내 겹겹이 쌓인 경험

8월 14일 저녁 7시 43분, 운명하셨습니다.

심장 리듬에 맞춰 물결치던 한 환자의 심전도 그래프가 이제 일직선으로 고요히 흘렀다. 그렇게 누군가의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아들이던 5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생을 마감했다.


첫 만남서부터 그의 의식은 명료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흘러나오는 앓는 소리와 얼굴 찡그림만이 그의 고통을 표현해주는 듯 보였다. 40도가 넘는 고열이 며칠째 지속하고 있어 그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산소마스크에 의존해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그가 당장 임종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널뛰는 맥박 그리고 빠른 호흡수 때문에 모니터 알람 소리가 빈번히 울려 댔다. 그렇게 알람 소리가 울릴 때면, 그의 가족들은 긴장하기 시작했고 때로는 화들짝 놀라며 간호사를 찾았다. 그때마다 나는 재빨리 뛰어가서 모니터의 수치를 주시하며 환자가 임종 직전의 상태인지를 확인했다. 그렇게 병실로 들어설 때면, 가족들 사이를 둘러싸고 있는 긴장감과 위기감이 느껴졌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을 볼 때면, 나 역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임이 분명하다. 환자에게 곧 죽음이 닥쳐오리란 것을 알면서도, 그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하는 과정과 현실은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를 오랜 기간 간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아내를 포함한 가족들이 그를 얼마나 아끼는지 느껴졌기 때문일까. 나는 부디 환자가 임종하는 과정이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덜 두렵게 느껴지기를 그리고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내려 두고 임종을 함께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랐다. 환자와 이별하는 순간을 잘 간직할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내 눈에는 그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들이 먼저 들어왔다. 최대치로 공급 중인 산소마스크가 너무 조여진 채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고정 끈이 닿아있는 볼과 귀 뒷부분에 빨간 자국이 나 있을 정도였다. 거즈를 가져와서 산소마스크를 고정하고 있는 끈을 돌돌 말아 감쌌다. 이렇게라도 직접적인 자극을 줄인다면, 그가 조금은 덜 불편할 것이다. 펄펄 열이 끓어오르는 몸으로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같은 자세를 하고서 누워 있었다. 환자 몸에 연결된 선들이 너무 많아 가족들이 직접 나서 그의 자세를 바꿔주

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시간에 맞춰 환자 상태를 확인하러 가서 보면, 간혹 몸 아래로 소변 줄과 모니터 연결선이 깔려 있기도 했다. 물론,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것은 아니라서 자세히 보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입장이 되어 불편할 수 있는 것들을 순식간에 스캔했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선부터 하나 둘 정리하고 있었다. 환자가 취하고 있는 자세가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한다면 일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보호자와 힘을 합쳐 그를 옆으로 누이면, 그의 아내는 젖은 물수건으로 남편의 뜨거운 등을 정성스럽게 닦아내었다. “아이, 이렇게나 뜨거워서 어째. 후후-” 그녀는 남편의 등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점차 숨을 쉬는 간격이 짧아지고, 과호흡과 무호흡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맥박수도 40회에서 200회까지 쉴 새 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혈압 또한 정상 미만으로 저하되기 시작했다. 가족들도 이러한 환자의 변화 하나하나를 가까이서 보고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 점점 슬픔과 두려움이 서려갔다. 수치의 의미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지만, 쉬지 않고 울리는 알람 소리와 함께 가족들은 이제 그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이 비정상적인 수치들이 ‘임종’에 가까워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있는 그대로 전했다.


들으실 순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하시겠어요.


가족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가 가장 먼저 그의 얼굴 가까이로 향했다.


여보, 이제껏 정말 고마웠어요.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우리 걱정하지 말고 이제 마음 편히 가세요.


아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의 초점 없는 눈은 그저 허공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잠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가족들의 따뜻한 인사를 들으며, 허공을 바라보던 눈이 채 감기기도 전에 그는 임종했다. 슬프지만 그래도 따뜻함이 함께 했던 임종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곁을 지키고 있었고 ‘고맙다, 사랑한다.’라고 입으로, 마음으로 충분히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분후, 담당 의사가 와서 사망선고를 했다. 뒤이어 환자의 사후 처치를 시작했다. 제대로 감기지 못한 눈을 조심스럽게 감겨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수액, 영양제, 진통제 등 투약되고 있는 모든 것을 제거했다. 몸에 삽입되어있는 배액관 그리고 소변 줄 그리고 모니터 하기 위해 연결해놓은 선까지 모두 정리했다. 그는 그제야 완전히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 아직은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깨끗한 환의로 갈아입히고 벌어져 있는 입을 닫아서 고정한 후 새하얀 천으로 덮어드렸다. 이제 장례식장 안치실로 가는 것만 남았다.


씁쓸함을 안은 채 병실을 나섰다. 동시에 밖에서 사후처치가 끝나길 기다리던 가족들이 병실로 들어갔다. 한창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는데, 다시 병실에서 나온 아내분이 나를 부르며 걸어오셨다. 가까이서 보니 아직도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선생님 덕분에 그이가 편하게 가신 것 같아요.


잔잔히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꼭 안고선 그렇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냈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힘겨울까. 그런데도 고맙다는 마음을 손수 전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그녀를 나는 꼭 안아드렸다. 나를 안아주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도 감사했다. 그렇게 내 눈가엔 또 한 번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분명, 좋은 곳으로 가실 거예요.”


아픈 환자들이 생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죽음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분명 간호사에게도 힘겨운 일이다. 나 또한 처음엔 죽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컸고, 정말이지 피하고 싶은 순간이 바로 담당 환자의 ‘임종’이었다. 특히나 거기에 개인적인 감정이 이입된다면 더욱더 힘들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나의 감정 소진을 방어하기 위해 환자와 나 사이에 미리 선을 긋는 연습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그의 가족들까지 위로해야 한다는 건 부족한 역량으로는 정말 부담스러운 상황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는 이제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다독이며 때로는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환자가 임종하는 순간까지 곁에 있을 수 있는 의료진은 간호사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 또한, 간호사다. 만약 간호사가 환자의 임종과정에 진심을 담아 함께한다면 가족들이 환자와 이별하는 순간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마음으로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나와 함께 했던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를 떠나보낸 마지막 순간을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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