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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ul 27. 2018

"제발, 죽게 해 줘요."

자정 무렵이었다. 어스름한 불빛에 반사된 한 환자가 눈에 들어왔다. 작고 마른 몸이었지만, 커다란 눈망울은 멀리서도 선명했다. 혈압 측정을 위해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그녀의 누런빛 눈동자가 도드라졌다. 간 기능이 악화되어 생긴 황달 증상이다. 그녀는 40대 중반의 간암 말기 환자다. 사실상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로, 그런 그녀를 아직 포기하지 못한 남편이 상주하고는 있었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특별히 없었다. 


그녀는 이제 막 잠을 청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디 불편하세요?"

혈압측정기를 들고 다가서려는 순간, 그녀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순간적으로 온몸이 굳어버렸다. 손목에서는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제발, 날 좀 죽게 해 줘요.


숱한 환자들을 봐왔지만, 이토록 진심으로 죽음을 바라는 눈빛은 분명,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그녀의 황달 빛 눈이 번뜩였다. 당황한 나는 더 이상 그녀의 눈을 직시할 수가 없었다. 갈 곳 잃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계속해서 애원했다. 편하게 가고 싶다고, 평소에도 그렇게 말해 두었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그녀의 눈동자를 피해 바삐 움직이던 내 시선은, 어느덧 그녀의 남편을 향해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애써 이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 나는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모르겠던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여간 애를 쓴 게 아니었다. 한숨 섞인 침묵만이 그렇게 한참 동안 지속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죽게 해 줄 누군가를, 실제로 기대했고 기다렸던 것 같다. 역설적이지만, 그녀를 보면서 간절함이란 것이 이런 건가 싶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나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들어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영양제와 항생제 그리고 진통제를 투약받으며,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침대에 몸을 누운 채로 지내왔다. 기력은 이미 바닥이 나있었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게다가 갑작스레 찾아드는 극심한 통증은 그녀를 완전히 질리게 만들었다. 그녀에게, 삶에 대한 미련이 남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미숙하기 그지없던 나는, 그녀에게 세 마디의 말을 건넸다.


첫 번째,

정말 힘드시죠. 

과연 그녀의 고통을 반의반이라도 헤아릴 줄이나 알고 저렇게 말했던 걸까.



두 번째,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자신이 힘들다는 걸 알아달라는 말 정도로 여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세 번째,


어떤 게 제일 힘드세요.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물었다. 


돌이켜보니, 그저 의무감에 내뱉은 말들이었다. 부끄럽다. 죽기만을 기다리던 그녀. 단지 그녀가 아프다는 것 때문에 죽고 싶어 했다면, 진통제로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해보려고 했겠지만, 결코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을 한낱 진통제 따위로 지울 수는 없었다. 


그런 그녀는 내게서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물론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그녀를 위해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환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은 나를 힘들게 했다. 을만하면 다시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며칠 지나지 않아 간성 혼수로 의식을 잃은 그녀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임종했다.  내 손목을 꽉 부여잡던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해서였을까. 그녀의 애원하는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순간, 당신의 눈을 피할 것이 아니라, 차분히 옆에 앉아 그녀의 호소를 들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늘 찌푸리기만 하던 표정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려 줄 수 있진 않았을까. 물론 그런다고 해서 내가 그녀의 죽음마저 물려드릴 순 없었겠지만 말이다.


이후에도 차라리 죽고 싶다는 환자들 앞에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나의 모습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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