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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an 21. 2018

간호사에게도 애도의 시간은 필요하다.

나를 기억하던 그녀가 눈 앞에서 생을 마감했다.

병실 불이 모두 꺼진, 밤 열한 시 반. 유니폼에 매달아 놓은 플래시 불빛에 의존해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늦은 시간이므로 최대한 목소리를 죽인 채 나이트 정규 라운딩을 돌고 있었다. 40대 초반의 여자 환자분의 혈압을 측정하려던 중, 어스름한 불빛 사이로 그녀가 내게 말을 건넸다.


많이 성숙해지셨네요.


예기치 못한 한마디였다. 잘못 들었나 싶어 “네? 저를 기억하세요?”라고 되물었다. 그녀는 몇 년 전 항암 치료를 받을 당시, 당신을 간호했던 나를 기억한다고 했다. 실은 나도 벌써 그녀의 이름을 보고 오랜만에 입원했단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그녀를 잊을 수 있겠는가.


신입 간호사 시절, 그녀는 항암 치료를 위해 한 달 간격으로 입원했던 환자다. 짧은 커트 머리, 새하얀 피부에 까만 뿔테 안경을 썼던 그녀는 다른 환자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병동 분위기와는 이질적으로 늘 당차고, 씩씩했으며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들에게도 이미 알고 있던 사람처럼 살갑게 다가가곤 했다.


당시 나는 매일 같이 생사가 오가는 병동에 아직 적응하기 전이었다. 모든 것이 서툴렀던, 경직된 모습의 신입 간호사에 불과했다. 그런 나를 바라봐 주는 그녀의 눈빛에는 항상 친근함이 담겨 있었다. 그녀를 보고 있자면 긴장했던 마음이 약간은 누그러들곤 했다. 그 간, 수많은 간호사를 만나왔을 테고 나도 그들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나를 기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예기치 못했던 그녀의 인사에 그녀를 처음 만났던 어느 병실에서의 몇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저렇게 활력이 넘칠 수 있을까.’ 다른 환자들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그녀의 에너지에 나도 처음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와 몇 마디 나누다 보면 꼭 왈가닥 소녀 같단 느낌을 받곤 했다. 톡톡 튀던 그녀는 반복적인 항암 치료 과정으로 힘들거나 아프다는 말을 할 법도 했지만, 설령 그런 이야기를 할 때조차 기운 없이 하는 법이 없었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이니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스

스럼없이 했다. 간호하는 사람으로선 오히려 그게 좋고 편했다. 나 역시도 그런 그녀에게 도리어 씩씩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땡큐, 진짜 고마워요!”

도움을 받고 나면 그녀는 명랑한 목소리로 인사해주었다. 그렇게 그녀의 옆에 머물렀다 떠날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던 기억이 났다. 그녀와 나는 비록 환자와 간호사의 관계였지만, 서로의 기분 좋은 씩씩함으로 알게 모르게 에너지를 주고받았던 것 같다. 그 이후로 한참 동안 볼 수 없었던 그녀가 아주 오랜만에 입원을 한 것이다.


저, 많이 안 좋아졌죠?


기억 속의 씩씩한 에너지가 더는 그녀에게서 느껴지지 않았다. 불빛 아래 어렴풋이 바라본 그녀의 모습은 

무척 차분했고 말투도 담담했다. 커트 머리에 뿔테 안경은 변함없었지만, 얼굴은 훨씬 야위어 있었다. 서로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 순간에만 그녀는 잠시 생긋 웃어 보였다. 예전에 서로에게서 오갔던 미소와 에너지까지 그녀가 기억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나로선, 그저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다행히도 입원 후 며칠 동안은 기력을 유지하는 듯 보였다. 남편에게 직접 사과를 깎아주기도 하고 간병인과 마치 친구처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나를 보면 여전히 반가운 기색으로 맞아주었다. 그렇게 숨길 수 없는 명랑함이 한 번씩,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의 상태는 호전 추세 없이 점점 악화하여 갔다. 더는 그녀에게 투약 가능한 항암제가 없었다. 사실상 이번 입원은 치료를 위한 게 아니었다. 통증과 같은 불편한 증상을 줄여서 삶의 질을 조금이나마 높이기 위해서 한 입원이었다. 종양에 의한 통증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하게 그녀를 괴롭혔다. 마약성 진통제가 투약되는 시간 간격도 점차 짧아져 갔다. 경험적으로 그녀의 상태가 이제는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혈액검사 결과 또한, 체내 전해질의 균형이 완전히 깨져있음을 알려 줬다. 특히나 높은 칼륨 수치를 낮추기 위해 약물을 항문으로 주입하는 배출 관장이 그녀에게 반복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심, 구토 등의 증상 또한 쉴 새 없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며칠 사이에 그녀는 이제 소위 간호사끼리 말하기를 ‘손이 많이 가는 환자’가 되어 있었다.


상태는 더욱 악화하여, 원래 하얗던 그녀의 얼굴이 이제 새하얗게 질려갔다. 관장과 피검사, 심전도검사 등 반복되는 처치에 이골이 난 그녀는 힘들어서 미쳐버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이제 제발 그만하라며 점점 더 예민해져 갔다. 결국 진통제와 구토 방지제 투약을 제외하고는 모든 처치와 투약을 거부했다. 개인적으로 더욱 안타까웠던 점은, 내가 그녀에게 좀 더 마음을 써주거나 감정을 살펴 줄 여유가 당시로썬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신입 간호사 시절과 달리 업무는 꽤 능숙해진 상태였지만 하필 위독했던 중환자가 많은 시기였다. 밥 먹을 틈을 내기도 힘들 만큼 바쁜 업무가 몇 날 며칠 지속되어가자 나 또한 점점 지치고 있었다. 자꾸 그녀에게 마음이 쓰였지만 ‘손이 많이 가는 환자’라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웠다.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따라 그녀의 통증이 유독 안 잡히는 듯했다. 그녀에게 진통제를 투약하고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반복해서 간호사를 찾는 콜벨이 울렸다. 그럴 때면 ‘또…’라며 한숨부터 나왔다. 하지만 아파서 너무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고 나올 때면 한숨을 내쉰 나 자신이 또 부끄러웠다. 그녀는 진통제를 맞아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는데, 그래 봐야 고작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몇 년 전 마주한 생기 넘치던 눈빛은 이젠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제발 안 아프게만 해주면 좋겠어요.”라던 그녀의 고통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처방되어있는 진통제를 투

약하는 것뿐이었다. 밤 동안, 수십 번을 그녀에게 오갔다. 다른 중환자를 간호하는 것을 포함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들까지 시간에 쫓기듯이 하다 보니, 어느덧 동이 터 있었다. 정신없이 맞이한 아침이었다. 데이 간호사에게 인계를 주고 나서야 근무가 곧 끝날 것이라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미처 하지 못했던 일을 마무리하고 있던 찰나, 또다시 도움을 청하는 콜벨이 울렸다. 그녀의 자리였다. 때마침 그것을 내가 가장 먼저 발견했고 ‘또 진통제인가.’ 라 생각하며 병실로 향했다.


이번엔 진통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숨을 이상하게 쉬고 있었다. 불과 삼십여 분 전, 좀 편안해졌다며 눈을 감고 누워있었는데 지금은 높여진 침대에 겨우 기대어 있었다. 눈을 뜬 듯 안 뜬 듯 초점이 없었다. 스테이션으로 뛰어가 산소 포화도 측정기를 가져왔다. 객관적인 수치로 환자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그 모습을 본 동료 간호사는 산소를 주입할 수 있는 기기와 마스크를 챙겨 따라왔다. 측정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산소 포화도를 알 수 없었다. 기계 문제인가. 설마 산소 포화도를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말초 혈관까지 순환이 잘 안 되는 걸까. 


조금 전 물을 마셨다는 간병인의 말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어깨를 두드리며 이름을 불러 봐도 반응이 없다. 새하얗게 질린 그녀는 이제 꺽 꺽 이상한 소리를 내며 숨을 쉬었다. 설마 하며 목 옆쪽에 있는 경동맥을 찾아 짚었다. 몇 초를 기다려도 맥이 잡히지 않았다. 심장이 멈춰있는 상태였다. CPR 상황이다. "CPR 방송해주세요!!!"

CPCR Code Blue, 종양내과.


장 마사지를 하며 그녀는 급히 치료실로 이동되었다. 순식간에 그녀는 열 명이 넘는 의료진으로 둘러싸

였다. 십여 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CPR 종료해주세요.”라는 담당 의사의 말에 모든 처치가 중단되었다. 파도처럼 밀려들었던 의료진들은 “CPCR 상황 종료.”라는 방송과 함께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애초에 그녀는 적극적인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엔 응급 상황이 생겨도 심폐소생술을 받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이 되어있지 않았다. 담당 의사는 출장 중이던 남편에게 전화로 지금 발생한 일에 관해 설명했다. 이 모든 행위가 단지 그녀를 연명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핸드폰 건너로 간략한 상황을 전달받은 남편은, 아내에게 이루어지고 있는 심폐소생술을 더는 하지 말아 달라는 결정을 했다. 그렇게 모든 처치를 중단토록 한 것이다.


치료실에 덩그러니 남은 그녀는 이제 시신이 되어 있었다. 나를 기억한다며 생긋 웃어 보이던 분이 한순간에 생을 떠났다. 내 눈앞에서. 허망했다. 예측하지 못한 그녀의 죽음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고개를 몇 번이나 쳐들며 꾹꾹 눌러 담았다.


제발 흐르지 마라.


혹시나 남들에게 들킬까 봐 마스크를 최대한 올려서 착용했다. 그리곤 용기 내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자, 흐르지 못하고 있는 눈물 같았다. 이렇게 갑자기 생을 떠나게 되리라는 걸 당신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미간이 더는 찌푸려져 있지 않았다. 살아서 고통스러워했던 모습보다는 그래도 훨씬 나아 보였다. 부디, 이생을 떠나선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의 환자복을 새것으로 갈아입혔다. 그리고 새하얀 천으로 고이 덮어드렸다. 미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가족들이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치료실에 홀로 있어야 했다. 나는 몇 번이고 코를 훌쩍이며 겨우 눈물을 참았다. 허탈한 마음을 털어내지 못한 채 나도 그녀의 곁을 떠났다. 퇴근 시간은 이미 훌쩍 넘어선 지 오래였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동을 떠나는 내내, 그녀의 모습이 잔상으로 남아 스쳐 지나갔다.


주눅이 들어있던 내게 괜스레 힘이 되던 그녀의 모습. 씩씩하게 투병 생활을 하던 그녀의 모습. 성숙해졌다며 나를 기억해주던 그녀의 모습. 몇 년 만에 만났지만, 고통 속에 힘들어하던 모습. 그녀의 심장이 멎는 그 순간까지 아른거렸다. 아지랑이처럼 한참 동안 떠나질 않았다.


아무렇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그래 봐야 일하면서 만난 환자에 지나지 않은데 내가 이렇게까지 아파해서야 되겠나, 괜히 강하게 마음을 먹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난 그런 면에서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유독 내 마음이 단단하지 못한 것도 분명 문제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강한 척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3일간의 밤 근무 후, 녹초가 된 몸 상태였음에도 나는 도저히 깊은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진통제를 요구했던 그녀에게 느낀 일말의 귀찮음 같은 것이 그녀의 죽음 앞에 더욱 미안해졌다.


말 한마디 따뜻하게 건넬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녀의 마음을 살피고 다독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저 바쁜 간호사로만 보였을 내 모습이 한참이고 부끄러웠다. 차라리 서로를 기억하지 못했더라면, 그래서 그녀가 내게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큰 충격은 없었을 텐데. 괜한 생각마저 들었다.


앞으로는 환자를 쉬이 마음에 담아서도,
너무 마음을 주지도 말아야 하는 건가.


혼자 담아두기엔 그녀의 죽음의 무게가 내게는 너무 컸던 모양이다. 가을날, 파랗고도 높은 하늘 아래에서 눈물은 기어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슬펐다. 너무 슬펐다. 분명 슬픈 게 맞았다. 실은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올려 쓰고 아직은 따뜻한 그녀의 몸을 만지며 옷을 갈아입힐 때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 싶었던 게 맞았다. 겨우 참았던 눈물이 가슴속에 남아 있다가 뒤늦게 터져 나왔다.


누구도 간호사인 내게 임종한 환자를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누군가는 새빨간 토끼 눈이었던 나를 보고 ‘왜 저렇게 오버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간호사에게도 환자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 때론 꽤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간호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환자와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환자와 누구보다 깊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환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차라리 잊어버리고 싶었던, 무뎌지기를 바랐던 그녀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꺼내 놓았다. 뒤늦게나마 그녀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기 위해서다. 이 글을 쓰며 또 한 번 눈물이 고이는 걸 보면, 아직도 그녀의 죽음이 슬프다.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전해본다.


“부디 하늘에서는 평안하세요.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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